[난청 명의] 박홍주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교수

사라진 청력, 인공와우 수술로 회복
청각 자극 사라지면 뇌 전체 위축

난청 치료로 치매 예방 효과까지
수술·재활하면 일상 대화 거뜬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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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주 교수가 난청이 뇌에 미치는 악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김지아 헬스조선 객원기자
귀가 하나도 안 들리던 사람이라도, 이제는 수술만 받으면 들을 수 있다. 이런 극적인 변화가 좋아 이비인후과 전공의를 하던 1995년부터 인공와우(Cochlear implant, 코클리어 임플란트)를 이용한 난청 치료에 매진해온 의사가 있다. 바로 서울아산병원 이비인후과 박홍주 교수다.

인공와우는 청신경이 아직 살아있으나 달팽이관(와우)에 문제가 생겨 청력이 완전히 소실된 경우, 소리를 전기 자극으로 변환해 청신경을 직접 자극함으로써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전기 장치다. 소리를 증폭시키는 보청기를 써도 외부 소리를 듣기 어려운 환자의 귀 뒤쪽에 수술로 삽입한다. 박홍주 교수는 "청력이 '뇌'를 넘어 '삶'까지도 바꾼다"며 "난청 치료만 잘 해도 치매의 상당 부분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귀 안 들리면 치매 위험 커져

박홍주 교수가 청력과 뇌 인지 기능 사이의 연관성에 주목하게 된 것은 2002~2003년에 다녀온 미국 존스홉킨스 의대 연수가 계기였다. 당시 같은 병원 레지던트가 난청이 인지 기능 저하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밝혔다. 그 이후로 박홍주 교수는 이 연관성을 눈여겨보다가 난청 인공와우 수술을 한 후에 실제로 뇌 청각 중추의 부피가 개선됨을 세계 최초로 확인해 발표했다. 박 교수는 "정상인 사람과 난청이 오래 지속된 사람의 뇌 이미지를 비교해 보면, 청력 중추 이외에 말하기와 관련된 운동 중추, 감각 중추, 판단 중추, 기억 판단력 중추 등 뇌 다른 영역도 퇴화해 있다"며 "청각을 잃으면 외부 감각 자극의 양이 대폭 줄어 뇌 전체가 활성화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난청 치료를 통해 전체 치매 발생의 8%는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학술지 란셋에 실린 적 있다. 박홍주 교수는 "이미 경도 치매나 인지기능장애가 생긴 사람도, 난청 치료를 받아서 중증 치매로 넘어가거나 치매가 발생하기 전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벌 수 있다"고 말했다.

청력 회복 80%는 수술, 20%는 재활

청력 회복에 인공와우 수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이라면, 나머지 20%는 재활의 몫이다. 인공와우는 서로 다른 주파수를 감지하는 22개의 채널을 통해 소리를 전기 자극으로 변환한다. 사람의 뇌에는 주파수를 감지하는 내유모세포가 3500~4000개 존재한다. 이에 환자가 재활로 계속 뇌를 자극해야 22개의 채널로 들어오는 소리도 정상적 귀로 받아들인 소리처럼 뇌가 보정해 들을 수 있다.


박홍주 교수가 몸담고 있는 서울아산병원은 환자용 청력 재활 어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환자들은 그가 이끄는 인공와우 팀의 청각사와 언어 치료사도 주기적으로 만난다. 청각사는 환자의 청각 상태에 맞춰 인공와우 채널들의 전기 자극 세기를 미세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 언어치료사는 인공와우 착용 후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기 등의 훈련을 돕는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박 교수의 인공와우 환자 중 한 명은 얼마 전 청력 검사에서 100점 만점에 100점을 맞았다. 평균적으로는 70점을 받는다. 박 교수는 이 환자처럼 인공와우 수술 후에 청력이 굉장히 향상된 사람들과 비교적 덜 향상된 사람들의 차이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각자가 뇌의 어느 영역을 잘 쓰지 못하거나 잘 써서 청력의 차이가 벌어졌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다. 박홍주 교수는 "잘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덜 활성화된 뇌 영역을 계속 쓰도록 유도하는 재활 훈련을 하면, 뇌 기능이 개선되며 청력도 더 회복될지를 연구해서 환자들에게 적용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인공와우 수술로, 정상과 다름없는 삶 가능

박 교수는 청력 회복 극대화 방안을 인공와우 수술 전, 중, 후 등 모든 단계에 걸쳐 연구하고 있다. 수술이 끝난 후에도 환자와 1년에 한 번은 꼭 만나고, MRI(자기공명영상) 사진이나 인지 기능 검사 결과 등 데이터를 누적한다. 환자 역시 그의 감독에 따라 청력을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다. 그는 "관련 데이터를 이미 6~7년간 누적해왔다"며 "몇 년만 더 모으면 인공와우 수술을 통한 난청 치료가 뇌 부피 회복을 넘어 인지 기능 향상에 영향을 미친다는 논문을 작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환자도 있다. 인공와우 수술을 한 다음 음악에 맞춰 춤을 출 수 있게 된 어린이 환자다. 서울아산병원에서 어릴 적 인공와우 수술을 받은 환자들을 20년 후에 확인하니, 원래부터 청력이 정상이었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이 대학에 진학하거나 사회생활을 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도 그의 연구 동력이다.

박 교수는 "사람들의 삶의 질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수술인 만큼, 내 연구를 통해 인공와우 수술의 전 세계적 수준을 향상하는 것이 앞으로의 목표"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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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동경
[난청치료 명의가 말하는 '인공와우 수술' 골든 타임]

박홍주 교수는 청력을 완전히 소실한 후, 인공와우 수술을 해야 청력 회복이 원활한지를 연구한 적 있다. 성인보다는 소아에서 인공와우 수술의 '골든 타임'이 현저히 짧다고 확인됐다.


성인=성인은 난청이 발생하고 곧바로 수술을 했을 때 결과가 가장 좋지만, 발생한 지 10~20년이 지난 다음에 수술해도 나쁘지 않다. 귀가 들리는 동안 말도 이미 배웠고 청신경도 형성됐기 때문이다. 한 번 형성된 신경이 퇴화하는 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빨리 수술할수록 청력이 잘 회복되는 것은 맞지만, 언제가 됐든지 간에 '수술하면 귀가 잘 들린다'가 기본 전제다. 예컨대, 청력을 잃고 곧바로 수술하면 청력 검사에서 80점을, 10년 이내에 하면 70점을, 20년 이내에 하면 60점을, 20년 후에 하면 20~60점을 받는 식이다.

소아=수술이 늦어지면 발달에 손해를 볼 수 있다. 2~3세까지가 뇌 발달이 활발한 시기이기 때문에 귀가 들리지 않는 소아는 '최대한 빨리' 인공와우 수술을 하는 게 좋다. 요즘은 생후 검사에서 귀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판명 나면 생후 6개월 때에 수술을 한다. 그러면 아이는 2~3세까지 소리를 충분히 들으며 발달 기회를 누릴 수 있으므로 청력이 원래부터 정상이었던 아이와 발달 수준이 비슷해진다. 5~6세 즈음에도 수술은 가능하지만, 발달 지연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