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난청 문제가 심각한 수준으로 번지고 있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은 최근 학부모와 학생에게 학교 소식을 전하는 ‘e알리미’를 통해, 이어폰 사용 증가로 청력 손상 학생이 빠르게 늘고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난청이 더 이상 노년층만의 질환이 아니라는 경고다.
◇10대 난청 환자, 4년 새 40% 이상 증가
청소년 난청 환자 수는 최근 4년간 가파르게 늘었다. 남녀 구분 없이 전 연령대에서 초고령층을 제외하고 가장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29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10~19세 남자 청소년 난청 환자는 2020년 1만1302명에서 지난해 1만6433명으로 45.4% 증가했다. 같은 기간 20~49세 증가율을 크게 웃돌았고, 초고령층을 제외하면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여자 청소년도 비슷한 양상이다. 10~19세 여자 난청 환자는 2020년 1만2568명에서 지난해 1만7670명으로 4년 새 40.6% 늘었다. 이는 80세 이상을 제외하면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갑작스럽게 청력이 떨어지는 돌발성 난청으로 범위를 좁혀도, 청소년 환자 증가율은 전 연령대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난청이 노화의 결과라는 통념과 달리, 청소년기부터 청력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갑자기 청력이 떨어지는 '돌발성 난청'으로 범위를 좁혀도 청소년의 난청 환자 증가율이 전 연령 구간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85㏈ 이상 소음, 청력 손상 유발
전문가들은 청소년 난청 증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소음 노출’을 꼽는다.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으로 음악이나 영상을 큰 소리로 장시간 듣는 습관이 대표적이다. 서울시교육청도 “큰 소리로 오랜 시간 콘텐츠를 청취하면 귀의 청각세포가 손상돼 난청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림대 성심병원 이비인후과 이효정 교수는 "10대는 이어폰 사용 외에도 콘서트 관람 등 소음에 스스로를 노출하는 일이 많은데 이런 행동이 '음향 외상'을 일으켜 난청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버스나 지하철 같은 시끄러운 공간에서 이어폰을 사용할 경우 주변 소음으로 스스로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게 듣는 경우가 많다"면서 "휴대용 음향기기의 볼륨을 최대치로 해두면 소음성 난청을 유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이비인후과학회도 홈페이지에서 소음성 난청과 관련해 '젊은 사람 중 청력 이상이나 이명을 호소하며 외래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면서 '매일 8시간씩 85데시벨(㏈)의 소음에 노출되는 것은 충분히 청력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안내했다.
의료계에서는 일상적인 대화 소리의 강도는 50~60㏈ 정도이며 일반적으로 75㏈ 이하의 소리는 난청을 유발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나 85㏈ 이상이면 청력에 해로우며 소리 강도가 높아질수록 난청의 정도가 심해진다. 휴대용 음향기기에서 볼륨을 최대로 올릴 때 이어폰에서 나오는 소리는 100㏈이 넘는다.
비디오게임도 청력 손상의 원인 중 하나로 지적된다. 고려대 이비인후과 장지원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비디오 게임과 비가역적 난청' 보고서를 인용해, 전 세계 게이머가 난청 및 이명 위험성이 증가했다는 점을 언급하며 비디오게임과 청력 손상 위험의 연관성을 지적했다. 게임 소리는 모바일기기에선 43㏈, PC방이나 게임센터에선 80~89㏈에 이른다. 또 순간 충격음은 최대 119㏈까지 보고됐는데 이는 아동은 물론 성인의 안전 노출 기준을 초과한다.
◇학습 능력·자존감에도 영향… '60%-60분' 규칙 지켜야
난청은 성인에게도 문제지만, 발달기에 있는 아동과 청소년에게는 더 큰 영향을 미친다. 20㏈ 이상의 청력 손실은 낮은 의사소통 수준, 자존감 저하, 스트레스 증가 등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 교수는 "청력 손실은 단순히 듣기 어려움이 아니라 학업, 취업, 정신건강, 사회적 고립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의대 연구팀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도 난청과 낮은 학업 성적 사이에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확인됐다.
문제는 청각세포는 한번 손상되면 회복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청소년은 난청을 스스로 잘 인지하지 못하고, 적극적인 치료를 피하는 문제도 있다. 이효정 교수는 "중등도 난청은 보청기를 사용해야 하는데 외부로 보이는 문제도 있고, 낙인이 찍히니까 보청기를 쓰지 않고 견디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노인성 난청은 평생 귀에 준 스트레스의 총합"이라면서 "보통 성인은 30세부터 청력이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더 이른 청소년기부터 난청이 시작되면 나중에 노인성 난청이 더 심해진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난청 예방 수칙으로 ‘60%-60분’ 원칙을 강조한다. WHO가 제시한 이 원칙은 '최대 음량의 60% 이하로, 사용 시간은 하루 60분 이내로' 제한하라는 내용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옆 사람이 내 이어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볼륨이 과도한 것”이라며, 이어폰을 낀 상태에서도 다른 사람의 말소리가 들리는 수준이 적당하다고 설명했다. 귓속형(인이어)보다는 헤드폰형이 낫고, 청결 관리와 귀마개 활용도 도움이 된다.
아울러 의료계에서는 청소년 난청을 조기에 발견할 수 있도록 학교 건강검진 체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현재 일부 검진은 20㏈이나 40㏈ 등 제한된 주파수만 확인하는 수준에 그쳐,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정밀 검사 장비 도입이 요구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