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도인지장애 명의_분당차병원 이강수 교수

국내 경도인지장애 환자 300만명 육박
조기 진단 중요… 적극적인 검사 권장
환자 상태 종합적으로 고려해 맞춤 치료

인지개선제, 치매 진행 늦추는 데 도움
콜린 제제 선별급여로 치료 공백 우려
효과 입증 연구 多… 급여 기준 논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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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수 교수가 경도인지장애 조기 치료 중요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사진=김지아 헬스조선 객원기자
경도인지장애는 아직 치매는 아니지만 치매를 향해가는 상태인 소위 ‘알츠하이머 전 단계’다. 보건복지부 치매역학조사에 따르면, 올해 국내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298만명에 이르렀으며 2033년에는 400만명에 도달할 전망이다. 많은 이들이 경도인지장애를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단계’로 여기지만, 실제로는 ‘치매로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마지막 단계’다.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검사·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노인정신의학을 오랜 기간 연구해온 분당차병원 이강수 정신건강의학과장을 만나 경도인지장애 조기 치료 필요성과 치료 전략에 대해 들었다.

-경도인지장애도 치료가 필요한가?
치매로 진행되는 걸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 이 단계에서 치료를 시작하면 매년 10~15%에 이르는 치매 전환 위험을 낮추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치매 진단 후 평균 생존기간 동안 1인당 약 2억원 이상의 돌봄·의료비용이 든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적절한 치료를 통해 개인·사회적 부담을 덜 필요가 있다. 치료는 크게 ▲인지 기능 개선 ▲우울·불안 등 심리 증상 관리 ▲운동기능 저하 교정 ▲일상생활 기능 유지 네 축으로 이뤄진다. 약물 치료와 생활습관 교정, 인지 자극 활동, 사회적 교류 등 비약물적 개입을 함께 적용하는 방식이다. 같은 치료를 적용하더라도 환자마다 효과가 다를 수 있어서, 약물·비약물 치료를 어떻게 조합할지를 면밀히 따져야 한다. 진단 직후 환자의 전반적인 인지 기능을 세밀하게 평가하고, 어떤 치료 조합이 실질적인 도움을 줄지 판단하는 과정을 거친다. 환자의 심리 상태, 수면 습관, 스트레스 정도, 만성질환 조절 상태, 활동 능력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 치료법을 결정한다. 조직학적인 확진이 아닌 증상, 영상, 인지 검사, 동반질환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치료 전략을 세우는 질환인 것이다. 고령 환자가 많은 특성상 임상시험에서 얻는 근거만으로는 실제 환자군을 설명하기 어렵다. 전문가 가이드라인, 다년간의 임상 경험, 대규모 후향 연구를 함께 해석해야 실제 환자에게 최적의 치료 전략을 찾아줄 수 있다.

-인지 개선을 위해서는 어떤 약을 쓰나?
뇌혈류를 개선하고 신경전달물질 분비를 촉진하는 인지 개선제를 쓴다.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인지 기능 저하 속도를 늦추고 치매 진행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크게 ▲아세틸콜린분해효소 억제제 ▲항체치료제 ▲NMDA수용체길항제 ▲콜린알포세레이트 네 가지가 있다. 어떤 치료가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지 종합적으로 판단해 질환 진행 상태에 따라 치료를 조합해 나가는 방식이다. 초기에는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를 많이 사용한다. 체내에서 콜린으로 대사돼 아세틸콜린 합성을 돕는 약제다. 초기 뇌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유지해 인지 기능 저하를 최대한 늦추는 효과가 있다. 아세틸콜린계 약제와 병용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경도 뇌 위축이나 소혈관질환이 동반된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 보통 1년 단위 신경인지검사를 통해 효과와 유지 여부를 판단하며,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아도 대부분 치료를 유지한다. 뇌 위축 진행을 늦출 가능성과 혈관성 치매 위험 감소 등의 근거가 꾸준히 확인되고 있어서다. 원주세브란스병원 50만명 코호트 분석에서는 콜린알포세레이트 복용군의 혈관성 치매 전환 위험이 약 10%, 알츠하이머 치매 전환 위험이 약 7% 감소했다. 세계신경과학회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진행의 핵심 지표인 해마 위축 속도 또한 유의하게 지연됐다.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는 ‘선별급여’로 전환됐는데?
선별급여로 전환됐지만 비용 부담이 여전히 월 2만4000원대로 경제적이어서, 대부분 환자가 처방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는 건강기능식품으로 대체하기도 하는데, 전문의약품과 건강기능식품은 근거 수준과 효과가 전혀 다르다. 전문의약품은 임상시험과 실제 진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처방하지만, 건강기능식품은 근거가 부족해 동일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경도인지장애 환자는 초기 개입 시점이 예후를 좌우하는데, 비용 부담으로 인해 약 복용을 임의로 중단하면 치료 개입 시기를 놓칠 위험이 있다. 현재 급여 기준 논의는 어떤 환자에게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가 적합한지 다시 정리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인지 기능 저하로 내원한 환자는 MRI(자기공명영상)나 신경심리검사에서 뇌 위축이나 소혈관질환 소견이 가장 흔하게 확인된다. 이러한 환자에게는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가 확실히 도움이 된다. 향후 대규모 연구 결과가 축적되면 어떤 환자에게 콜린알포세레이트 제제를 적용할지에 대한 판단 근거가 더 명확해질 것이다.

-약제 반응을 예측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라고?
초기 인지기능 저하 환자 중 2~3년 내 치매로 진행될 위험이 높은 환자와 약물 치료에 반응이 좋은 환자를 예측·분석하는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뇌 연결망 기능 변화와 인지 기능 저하 속도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이 같은 연구들을 토대로 환자별 맞춤 치료 전략을 세우는 데 필요한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향후에는 유전자형, MRI 결과, 혈관 상태 등을 기반으로 하는 치료 전략이 세분화될 것이다. 최근 AI(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연구도 늘고 있어, 향후 알츠하이머 가능성이나 혈관성 치매, 변성질환 복합 여부 등을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병리 단백질을 직접 줄여 진행 속도를 늦추는 항체 치료제 또한 활용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경도인지장애 의심될 때 찾아야 할 곳은?
경도인지장애가 있으면 일상생활은 가능하지만 기억력, 주의력, 언어능력 등에서 인지 기능 저하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분당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강수 교수는 “가장 흔한 증상은 기억력 저하로, 어제 한 일을 잊거나 물건을 반복해 잃어버리는 기본적인 건망증에서 시작된다”며 “계산이 잘 안되거나,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거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도 모두 초기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인지 기능 외에도 우울·불안·초조·무감동 같은 심리 증상, 걸음 속도 저하 등 운동기능 변화, 후각·미각 저하도 뇌 기능 변화로 볼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경도인지장애가 의심된다면 각 지역의 보건소나 치매안심센터를 찾자. 간이정신상태검사(MMSE), 치매인지선별검사(CIST) 등 10분 내외의 간단한 인지 기능 검사를 시행해 조기 발견할 수 있다. ▲80세 이상 고령자나 독거노인처럼 사회적 고립이 큰 집단 ▲APOE 유전자 양성자 ▲가족력이 있는 사람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 등 혈관 위험요인을 가진 사람은 증상이 없더라도 정기 검사를 받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