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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12세의 알리비아(오른쪽)은 소아 알츠하이머라고도 불리는 산필리포증후군을, (우)스텔라와 로만은 희귀 유전질환 ASMD 진단을 받았다./사진=데일리메일 캡처
‘소아 치매’는 산필리포증후군, 바텐병, 알퍼스증후군 등 100여 개가 넘는 희귀 유전질환을 아우르는 질환군이다. 개별 질환은 매우 드물지만, 미국에서만 약 1만2000명의 아이가 겪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평균 기대수명은 16세에 불과하고, 일부는 2~3세를 넘기기 어렵다.

실제 사례도 잇따른다. 텍사스주의 12세 소녀 알리비아는 산필리포증후군을 앓으며 인지 수준이 유아기에 머물러 있고, 걷기와 말하기 능력을 거의 잃었다. 초기에는 ADHD나 자폐 증상으로 오진돼 진단이 늦어졌다. 산필리포증후군은 소아 약 7만 명당 1명꼴로 발생하는 매우 희귀한 질환으로, 2~5세 무렵부터 언어 발달 지연이 나타나고 점차 인지 기능 저하·운동 기능 약화 등이 진행된다고 알려져 있다.

오하이오주의 한 가정에서도 형제 두 명(4세·5세)이 ‘유아 알츠하이머’로 불리는 희귀 유전질환 ASMD(산성스핑고미엘리나아제 결핍) 진단을 받았다. 결핍된 효소 탓에 지방 물질이 뇌·간·비장에 쌓이며 세포를 파괴하는 병이다. 일반적인 기대수명은 2~3년으로, 현재 두 아이는 임상시험 약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독일·벨기에·미국 공동 연구팀이 소아 치매의 발병 원인을 새롭게 규명했다. 연구팀은 어린아이에게 급속한 퇴행을 일으키는 소아 치매가 뇌세포가 ‘녹슬듯’ 파괴되는 독특한 세포 사멸 과정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이 과정은 성인 치매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핵심은 뇌세포막을 보호하는 효소 ‘GPX4’를 만드는 유전자다. 이 유전자에 작은 오류가 생기면 세포가 ‘페롭토시스(ferroptosis)’라 불리는 금속 산화 유사 작용으로 파괴된다. GPX4 효소는 원래 세포막을 따라 이동하며 독성 지질을 제거하는 역할을 하지만, 돌연변이가 생기면 이 기능을 수행하지 못해 뉴런이 내부부터 서서히 ‘녹슬듯’ 손상된다.

연구팀이 조사한 미국의 소아 환자 3명은 모두 GPX4 유전자에 동일한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었다. 이 결함으로 인해 효소의 핵심 구조가 변형되면서, 원래 세포막을 따라 ‘독성 지질’을 제거하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된다.


연구 저자인 마커스 콘라드 교수는 GPX4를 “세포막 위를 타고 이동하며 유독 물질을 제거하는 미세한 서핑보드 같다”고 비유했다. 하지만 돌연변이가 생기면 이 ‘서핑’이 불가능해지고, 세포막이 공격받으며 퇴행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소아 환자의 피부세포를 채취해 줄기세포로 재프로그래밍한 뒤, 이를 기반으로 수백만 개의 뇌세포를 배양해 변화를 관찰했다. 더불어 같은 유전자 변이를 가진 생쥐를 제작해 실제 뇌에서 질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추적했다.

그 결과, 돌연변이 생쥐와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서 동일한 과도한 세포 사멸 경로가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소아 치매와 성인 치매가 같은 분자적 약점을 공유할 수 있다는 의미다.

연구 공동 저자인 스벤야 로렌츠 박사는 “그동안 치매 연구는 뇌 속 단백질 침착(베타아밀로이드)에 집중돼 있었다”며 “이번 연구는 세포막 손상이 질환을 촉발하는 초기 사건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아담 와히다 연구원은 “장기적으로는 유전자나 분자 단위에서 이 보호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치료 전략이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아직은 기초 연구 단계”라고 말했다.

콘라드 교수는 “단일 효소의 작은 구조 변화가 치명적 질환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밝히기까지 14년이 걸렸다”며 “치매와 같은 복잡한 질환을 이해하려면 장기적 연구 지원과 국제적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셀(Cell)’에 최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