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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현학교에서 한 학생이 푸드 스캐너로 식판을 찍고 있다./사진=이슬비 기자
11시 50분. 명현학교 점심시간이 시작되기 20분 전이다. 몇몇 선생님은 미리 급식실을 찾아, 식판에 음식을 담고 가위를 찾았다. 그리곤 음식을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기 시작했다. 곧 아이들이 급식실을 찾았고, '삡'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아이들이 스스로 음식을 담은 식판을 스캐너에 찍는 소리였다.

명현학교는 사회복지법인 중앙사회복지회 산하기관 특수학교로,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교육기관이다. 발달장애 아동은 새로운 감각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거나 구강 운동이 미숙해 섭식장애를 겪을 가능성이 크다. 그만큼 무엇을 얼마나 먹는지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

이제는 기술 발전이 그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국내 스타트업 누비랩이 식판을 자동으로 촬영하고, 어떤 음식을 얼마나 먹었는지 인공지능으로 분석하는 'AI 푸드스캐너'를 개발한 것. 이미 일반학교에는 수년 전 도입됐지만, 특수학교에는 최근까지 활용된 적이 없었다. 국내 최초로 푸드 스캐너를 도입한 특수학교인 명현학교를 찾아갔다.


◇발달 장애 아동, 편식은 어쩌면 당연한 모습
김치볶음밥은 다양한 채소를 맛있게 먹을 수 있어, 대다수 학교의 급식 단골 메뉴다. 하지만 자율선택급식을 운영하는 명현학교에서는 밥 종류가 세 가지로 늘어난다. 김치볶음밥(1), 매운 음식을 어려워하는 학생을 위한 햄계란볶음밥(2) 그리고 여러 재료가 섞인 음식을 부담스러워하는 학생을 위한 흰밥과 김(3)이다. 명현학교 이승민 영양교사는 "우리 학교 학생들의 30%는 볶음밥처럼 여러 재료가 섞인 요리를 어려워한다"며 "볶음밥뿐 아니라 햄버거 특식일 때도 빵을 먹지 못하는 학생이 있어, 이를 고려해 밥과 국을 포함한 대체 식단을 함께 준비한다”고 했다.

발달장애 아이들은 예측하기 어렵고 새로운 감각에 스트레스받기 쉬워, 질감과 색이 다양한 재료가 섞여 있는 볶음밥은 감각이 예민한 아이들에게 부담이 큰 음식이 될 수 있다. 음식 섭취가 까다로워 편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양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인향 교수는 "발달장애 아이 중에 후·미각이 예민한 비중이 높아 특정 음식만 먹는 경우가 있고, 위장계가 예민한 아이도 있어 변비와 소화불량을 겪는 비율이 비장애인보다 높다"고 했다. 강릉대에서 보건의료기술개발사업으로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1640명과 일반학교 학생 3240명의 성장 발달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영양섭취가 부족해 특수학교 학생의 키가 상대적으로 더 작았다. 반면 지방이 많은 음식 섭취율은 높아 비만률은 더 높았다.

발달장애 학생에게 섭식장애 비율이 높다는 것을 알고 학교를 찾았기에, 편식하는 학생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생각보다 식판을 싹싹 비우며 모든 음식을 골고루 잘 먹는 아이들이 대다수였다. 저작활동이 어려운 학생은 음식을 작게 자르거나 다진 개별화된 식사가 제공됐고, 특수교사와 지도사가 함께 식습관 지도를 지원했다. 이승민 영양교사는 “학생마다 편식 정도와 식습관 편차가 크지만, 이를 다양한 식단 제공과 꾸준한 식습관 지도로 서서히 넓혀가는 게 특수학교 급식의 역할”이라며 “편식이 심한 학생은 ‘골고루 먹기’같은 큰 목표보다, 먼저 먹을 수 있는 식재료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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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현학교에서 한 학생이 식판에 스스로 음식을 뜨고 있다./사진=이슬비 기자
◇맞춤형 식습관 파악 위해, 특수학교에서 푸드 스캐너 도입 시도
이승민 영양교사는 경기도교육청이 개최한 AI미래교육급식 활성화 연구포럼에서 누비랩 활용 사례를 듣고는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식판을 스캐너 위에 올리면, 내부 카메라가 사진을 촬영한다. 모델은 이미지 속 음식 종류를 자동으로 분류하고, 음식 종류·섭취율·잔반율을 정밀하게 계산한다. 사진은 먹기 전과 후 두 번 찍는다. 이승민 영양교사는 "학생 개별로 얼마나 다양한 음식을 잘 먹게 되는지 기록하고, 어떤 영양소 섭취가 부족한지 파악하고 싶다는 생각에 도입을 시도하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처음 들여온 기기는 설치를 보류해야만 했다. 일반 초등학교에 주로 사용하는 기기는 직접 학년·반·번호를 순서대로 터치해야 하는 방식이어서, 특수학교 학생이 활용하기는 어려웠다. 이후 영양교사와 누비랩은 면밀한 협의를 거쳐, 유치원에서 사용하는 '냠냠키즈' 시스템을 올해 5월부터 도입하게 됐다. 번호 대신 본인의 얼굴(사진)을 누르면 스캐너가 작동되는 제품이다. 이승민 영양교사는 "우리 아이들은 자기 얼굴이 나오면 무척 신기해하고, 그걸 선택해보는 과정을 재밌어한다"며 "올해 안에 학생들이 스스로 스캔할 수 있도록 습관을 들이는 게 목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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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슬비 기자
현장에서 본 아이들의 모습은 이미 목표에 많이 가까워져 보였다. 초등부 아이들도, 중·고등부 아이들도 식판에 음식을 받은 후 자연스럽게 자기 얼굴을 찾아 누르고 식판을 스캔했다. 간혹 다른 반 화면이라 본인 얼굴이 없을 땐, 옆에 있는 선생님이 반만 바꿔주면 수월하게 자기 얼굴을 눌러 스캐너를 사용했다. 어렵거나 번거롭지 않냐고 기자가 물어보자, 박선우(14)양은 "안 어렵고 재밌다"며 "더 남는 거 없이 먹게 된다"고 했다. 옆에 있던 유승권(19)군은 "신기하다"고 했다.

◇영양 지도 효율성 높여줄 것으로 기대
명현학교는 교사 한 명이 학생 두 명을 지도하는 방식으로 식사 지도를 진행해,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인력이 부족한 대다수 학교들은 영양지도 자체가 매우 어렵다. 한 특수학교 영양 교사는 "섭식 회피로 아예 식사를 어려워하는 학생도 현장에서 빈번히 볼 수 있다"며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길 바라지만, 현실적으로 인력·시간·공간이 부족해 학생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섭식 지도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푸드 스캐너 등 푸드 테크가 앞으로 이런 영양 지도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누비랩 관계자는 "푸드 스캐너가 자동으로 학생의 식사량·남긴 음식·먹는 패턴을 기록해, 돌봄 부담을 줄이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했다.


얼마 전 또 다른 특수학교인 오산 성심학교에서도 푸드 스캐너를 도입했다. 오산 성심학교 나수아 영양교사는 "학생들의 식습관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도입하게 됐다"며 "또 이 기회로 학생들의 일상 속 기술 활용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환경도 조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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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슬비 기자
◇특수학교 맞춤형 서비스 필요… “서비스 개선 예정”
물론 아직은 푸드 스캐너도 부족한 점이 있다. 이승민 영양교사는 “푸드 스캐너로 식습관 분석이나 식품군별 섭취율 등 유용한 기능이 개발돼 있지만, 현재 사용하는 기기는 결과를 개인 휴대폰으로 전송하는 시스템이라 학교 현장에서 활용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기관에서 학생 개인의 영양섭취량을 분석한 리포트를 컴퓨터로 한눈에 확인하고, 필요할 때 출력할 수 있다면 영양 지도와 상담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누비랩에서는 특수학교 대상 서비스의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누비랩 관계자는 "현재 특수학교에서 겪는 한계를 인지하고 있다"며 "건강 변화나 위험 신호를 파악해 실질적인 건강 관리를 도울 수 있도록 개선해 갈 것"이라고 했다. 이어 "특수학교뿐 아니라 장애인복지기관, 지역아동센터, 노인요양시설 등으로도 서비스 제공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편, 가정에서는 발달장애 아동의 섭식 장애를 예방하기 위해 함께 건강하고 다양한 음식을 먹는 걸 시도하길 권장한다. 김인향 교수는 "억지로 골고루 먹는 습관은 강요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며 "단계적으로 조금씩 익숙해지도록 하고, 작은 성공에도 칭찬과 보상을 주고, 숙제보다는 놀이처럼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나수아 영양교사는 "편안한 환경에서 두 가지 반찬 중 하나 선택하기 등과 같은 제한적 선택권 제공이 식사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