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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초가공식품'을 '담배'처럼 대응하고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다. 지난달 독일의 한 매체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초가공식품'에 세금을 매기는 정책 초안을 짜고 있다는 내용을 입수해 보도했다. 마치 담뱃세와 그 모양새가 비슷하다. 미국 보건복지부 장관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취임과 동시에 초가공식품에 전쟁을 선포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나타났다. 불필요한 식품첨가물 사용을 줄이기 위해 '클린라벨' 인증 제도가 도입될 예정이다. 현재 단체표준 예비 고시 중으로, 오는 4일까지 이의신청이 없으면 행정 처리 후 공시될 예정이다.

◇초가공식품, 세계보건기구 4대 건강 위험 요인 중 하나
초가공식품은 말 그대로 첨가물, 색소, 향료, 감미료 등이 포함되고 여러 공정을 거치는 등 '고도로 가공된' 식품을 말한다. 브라질 연구팀이 가공 정도로 식품을 분류하는 방법인 'Nova 분류'법을 제안하면서, 이 단어가 알려지게 됐다. 전형적인 초가공식품으로는 탄산음료, 아이스크림, 인스턴트 음식, 에너지드링크 등이 있다.

전 세계에서 초가공식품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초가공식품의 위험성을 알리는 광범위한 규모의 연구들이 지속해서 발표됐기 때문이다. 전 세계 전문가 43명이 한국을 포함한 36개국의 초가공식품 섭취량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권위 있는 의학분야 국제 학술지인 랜싯에 논문들을 발표했다. 연구팀은 2016~2024년 발표된 104개의 연구를 검토했고, 초가공식품이 식단의 질을 저하해 비만, 당뇨병, 심혈관질환, 우울증 등 12가지 건강 상태를 악화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각 국가가 초가공식품을 얼마나 섭취하고 있는지도 확인했는데, 그 수치가 어마했다. 미국은 초가공식품 평균 점유율이 60%에 달했고, 영국·캐나다 등도 40~50%로 높았다. 우리나라도 1998년에서 2018년 사이 초가공식품 비중이 12.9%에서 32.6%로 크게 증가했다. 연구팀은 "공중 보건을 위협할 정도로 현재 초가공식품 섭취량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므로, 전 세계적인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고 했다.

담배처럼 규제해야 한다는 강력한 주장까지 제기된 근거는, 더 있다. 초가공식품이 강력한 중독을 유발하는 것으로 드러난 것. 세계 36개국의 연구 논문 약 300건을 종합 분석했더니, 초가공식품이 뇌의 보상시스템에 영향을 미쳐 마약과 비슷할 정도로 중독적이었다. 이 연구에는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알코올남용중독연구소(NIAAA)  등도 참여했다. 이후 미국 식품의약국(FDA)과 NIH는 담배 규제 과학 프로그램을 모델로 삼아 초가공식품을 규제하는 공동 이니셔티브를 출범시켰다.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지역사무소는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전 세계 사망자 위험을 높이는 '4대 건강 위험 요인'으로 담배·화석연료·알코올과 함께 '초가공식품'을 꼽았다. 특히 초가공식품은 아동과 청소년에게 끼치는 악영향이 크다.


◇전 세계 트렌드는… '무첨가', '자연식품' 라벨 표시 
초가공식품 시장 개편을 선도하는 국가들은 소비자가 확인해야 하는 사항을 전면에 문구로 강조하는 방식으로 우선 변화를 주고 있다.

미국은 2010년대 중반 이후 '인공 색소 없음(No artificial colors)', '보존제 없음(No preservatives)', '천연 성분 사용(Made with natural ingredients)' 등의 문구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아예 열량 표시를 확대하고 가당 표기를 의무화한 새로운 영양 성분 라벨을 도입했다. 이후 홀푸드마켓은 자사 매장에서 판매되는 모든 제품에서 인공 감미료, 인공색소, 일부 합성 보존제를 전면 배제했고, 타이슨푸드는 일부 가공육 제품에서 아질산염을 천연 발효 셀러리 추출물로 대체했다. 유럽에서도 식품첨가물 재평가 프로그램으로 안전성 검증을 강화하고 있고, 라벨 관련해 유럽연합에서 여러 규정을 두고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포장된 모든 식품에 영양 레벨을 색상 코드로 분류해 표기하도록 했다.

라벨링에 신경 쓰기 시작한 이유는 모든 초가공식품이 극악의 식품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도가 다 다르다. 단적으로 미시간대 연구팀이 미국에서 판매되는 식품 5853개를 1회 먹을 때마다 수명이 얼마나 주는지 확인한 연구 결과를 근거로 들 수 있다. 그 결과 핫도그는 36분, 절인 가공육은 24분, 탄산음료는 12분, 치즈버거는 9분, 베이컨은 6분의 수명을 단축했다.

고대구로병원 가정의학과 박효진 교수는 "첨가제를 넣는 산업적 가공 과정을 거치면서 대다수 열량·당류·포화지방·나트륨 함량이 올라가므로, 학계에서는 전반적인 초가공식품을 몸에 안 좋다고 본다"면서도 "건강하게 열량, 당류, 포화지방 등을 줄인 가공식품은 때론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는데, 그만큼 꼼꼼하고 자세하게 영양 성분을 따질 수 있는 소비자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표준화된 라벨 표시 위해, 우리나라 '클린라벨' 도입
우리나라도 무첨가와 천연 표시를 강화하는 추세지만, 아직 표준화된 인증 체계는 없다. 지금은 똑같이 '무첨가'라고 표기했어도, 구체적으로 어떤 첨가물이 들어가고 빠졌는지가 회사마다 다를 수 있는 상태인 셈이다. 올해에서야 한국식품연구원과 사단법인 한국로하스협회가 '클린라벨 식품 및 가공소재 단체표준'을 발의했다. 클린라벨은 영국에서 1990년 처음 도입된 개념으로, 자연 유래 원료 사용을 늘리고 인공 첨가물 사용을 줄이고, 정보 제공을 투명화하는 것을 지향하는 제조 전략을 의미한다.

이번 클린라벨 인증이 실행되면, 이제 모든 회사가 같은 기준으로 모든 심사와 검증을 완료한 후 해당 마크를 부착할 수 있게 된다. ▲합성첨가물 미사용 ▲유전자변형생물(GMO) 원료·방사선 조사 성분 배제 ▲위생적인 제조공정 확보 등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다. 인증 유효기간은 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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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라벨 마크./사진=한국식품연구원 제공
한국식품연구원 최윤상 박사는 "이렇게 민간 기관만 참여하는 게 아닌, 국가 기관에서 관리하는 인증제는 아직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드물다"며 "현재 대기업 등 다양한 유통업계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이 인증제가 식품 안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클린라벨은 모든 기업에 의무화하지 않고,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자율적으로 참여가 가능한 '단체표준'이다.

박효진 교수는 "클린라벨이 붙은 식품인지 아닌지 따지는 습관은 평소 초가공식품 섭취량이 많은 사람에게 식습관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건강에 가장 좋은 음식은 집에서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간 음식을 직접 해 먹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클린마크가 없는 제품을 고를 때는 원재료명을 살펴보는 게 좋다. 초가공식품에는 증점제, 유화제, 설탕 대체물, 합성 식용 색소, 일반향료 등 다양한 첨가제가 들어간다. 그 종류와 개수가 적은 제품일수록 가공이 덜 됐을 확률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