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조선은 인터엠디(InterMD)와 함께 매월 정기적으로 주제를 선정해 ‘의사들의 생각’을 알아보는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그 결과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인터엠디는 4만 9000여 명의 의사들이 회원으로 있는 ‘의사만을 위한 지식·정보 공유 플랫폼(Web, App)’입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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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항생제 내성 인식 주간(매년 11월 18~24일)에 맞춰, 약을 처방하고 있는 의사 1000명에게 항생제 처방률을 물어봤다. 절반에 가까운 의사가 꼭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도 항생제를 처방한다고 답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혹시 약을 먹어도 이전과 달리 빨리 낫지 않는 경험을 해 보신 적이 있나요? 항생제 내성이 생긴 탓일 수 있습니다. 몸속 세균이 반복적으로 항생제에 노출되면, 약에 적응해 더 이상 죽지 않는데요. 이걸 항생제 내성이라고 합니다. 내성이 생긴 사람이 늘어날수록, 여러 번 다른 치료제를 처방해야 하다 보니 의료비가 많이 들고요. 합병증에 시달리는 사람, 심하면 사망에 이르는 사람 수도 늘어납니다. 한 연구에서는 항생제를 지금처럼 오남용하면, 2050년에는 매년 전 세계 822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항생제 내성으로 사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현 항생제 오남용 실태는 심각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 조사 결과, 2020년 1월부터 2023년 5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항생제가 필요한 상황은 8%였는데요. 실제 항생제를 처방한 비율은 75%나 됐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심각합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우리나라 항생제 사용량은 인구 1000명당 31.8 DID(성인 하루 평균 유지 용량)였는데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두 번째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수치입니다. OECD 평균은 18.3 DID 정도입니다.

세계 항생제 내성 인식 주간(매년 11월 18~24일)에 맞춰, 약을 처방하고 있는 의사 1000명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항생제, 얼마나 처방하세요?


◇의사 49.8%가 꼭 필요하지 않아도 항생제 처방하는 이유는?
항생제가 '꼭'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처방한 경험이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절반에 달하는 49.8%가 “있다”고 답했습니다. 처방한 주된 이유로는 ▲환자 보호자의 강한 요구(24.9%) ▲혹시 모를 합병증 우려(22.2%) ▲빠른 효과를 위해(14.3%) ▲진단검사 비용·시간 부담(6.1%) ▲항생제 투여가 관행적으로 이루어짐(5.1%) ▲병원 내 지침 부재(1.2%) 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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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터엠디 제공
한편, 답변한 의사 중 34.7%가 전체 환자 중 항생제 처방 환자 비율이 10% 미만이었고, 28.5%는 10~30%였습니다. 의사 9.3%는 처방률이 30~50%, 4.0%는 50% 이상이라고 답했습니다. 22.0%는 관련 진료과가 아니어서 항생제를 진료 중 처방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의사 74.1% "항생제 내성은 심각한 공중보건의 위기"
항생제 처방은 실제 많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현장에서 항생제 내성 문제가 느껴지기도 할까요? 의사 63.7%(매우 그렇다 17.0%, 약간 그렇다 46.7%)가 실제로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33.8%는 변화 없다, 2.5%는 줄었다고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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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터엠디 제공
절반 이상의 의사가 현장에서 체감하는 항생제 내성 증상 중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치료 효과 감소(51.2%)였습니다. 이 외에도 항생제 설사 호소(35.2%), 재발(25.3%), 반복적 피부 상처 감염(8.3%) 순이었습니다. 항생제 설사는 항생제를 복용해 장내 미생물 균형이 깨지면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항생제 내성과 별개의 증상이지만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항생제 설사로 장내 미생물이 대폭 사라지면, 생존한 일부 균이 폭발적으로 증식합니다. 이때 살아남은 균은 항생제에 내성을 가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내성균이 많아질수록 장내 미생물 전체에 내성 유전자가 전달·확산하고, 항생제 내성이 생길 확률은 점점 더 커집니다.

현장에서 항생제 내성을 체감했든, 체감하지 못했든 무려 74.1%의 의사는 “항생제 내성이 심각한 공중보건의 위기”라고 했습니다. 보통이라고 답한 의사는 21.1%, 심각하지 않다고 본 의사는 4.8%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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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터엠디 제공
◇해결하려면, 환자 인식 개선 필요
항생제 내성 문제를 해결하려면, 원인부터 알아야 합니다. 의사 43.3%가 '외래 과다 처방'이 내성 증가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의사 A씨는 "병원을 많이 다녀야 하는 고령 환자가 증가해 처방량이 전반적으로 늘었다"며 "환자가 빨리 낫기를 바라며 대다수 질환 유발 원인을 해소할 수 있는 항생제를 처방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의사 B씨는 과다 처방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지적했습니다. B씨는 "증상 호전이 없으면, 환자 민원이 들어온다"며 "항생제가 들지 않는 바이러스 질환에도 항생제를 요구하는 환자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본다"고 했습니다. 이외 또 다른 요인으로는 ▲환자의 복약순응도 부족(28.6%) ▲농축산물·환경 내 항생제 사용(20.6%) ▲병원 내 감염 관리 미흡(6.9%) 등이 꼽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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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터엠디 제공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도 물었습니다. ‘환자 교육 강화’가 54.2%로 가장 응답률이 높았습니다. 적정 기간 항생제를 먹으면 내성이 생길 가능성은 줄어듭니다. 처방받은 양보다 너무 일찍 항생제 복용을 끊으면, 살아남은 감염균이 내성 위험을 높입니다. 또 환자 중 일부에서는 항생제 복용이 무조건 증상 완화에 좋을 것으로 생각해, 타인이 처방받은 약을 먹기도 하는데요. 이건 절대 금물입니다. 항생제 복용은 반드시 의사와 상의해 적정 기간, 본인에게 처방된 만큼만 먹어야 내성균이 생기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외 개선 방법으로는 ▲진료 수가 개선(검사비, 진단비 지원)(35.5%) ▲항생제 적정사용 관리 프로그램 확산(28.3%) ▲지역 내 항생제 가이드라인 표준화(16.1%) ▲항생제 사용 실적 공개(7.9%) 순으로 필요하다고 답했습니다.

◇정부도 노력하고 있지만… 대다수 의사 몰라
정부에서도 항생제 내성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질병관리청은 지난해 11월부터 항생제 적정사용 관리 프로그램(ASP) 시범사업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78개 병원을 대상으로 병원 내 전담팀이 항생제 처방을 모니터링하고, 최적의 약제, 용량, 기간으로만 처방되도록 관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알고 있는 의사는 34.1%뿐이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상급종합병원 위주로 운영되고 있어서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중소·요양 병원, 의원급 의료기관으로 확장하는 걸 목표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더 힘써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알고 있는 의사들의 52.2%는 이 정책이 효과적(매우 효과적 23.8%, 다소 효과적 28.4%)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일부 의사는 "의료진 업무 부담이 가중되고, 성과 평가 기준이 불명확하거나 현실과 맞지 않아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