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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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단풍이 절정이라는 소식에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남이섬으로 향했다. 모터보트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강을 가르자, 머릿속을 짓누르던 피로가 한순간 흩날렸다. 섬에 도착하자 눈앞에는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갯빛 숲이 펼쳐졌다. 잔디밭에는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젊은이들, 노란 은행잎 사이로 유모차를 미는 젊은 부부들, 자전거를 타며 웃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보통의 청춘’,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 남이섬에 있었다.

그런데 문득, 그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는 또래들이 떠올랐다. 바로 청소년 및 젊은 성인 암 생존자, AYA(Adolescents and Young Adults with Cancer)다. AYA 환자는 15세에서 39세 사이에 암 진단을 받은 사람들을 말한다.

소아암과 성인암의 경계에 선 이 연령대는, 인생의 가장 역동적인 시기를 살아가고 있다. 학업, 취업, 사랑, 결혼, 출산…. 누군가는 꿈을 이루고, 누군가는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그 시기에 ‘암’이라는 단어는 이들의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사건이 된다.

2025년 미국 기준으로 약 8만5000명이 이 연령대에서 암을 진단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체 암 진단의 4.2%, 암 생존자의 10% 미만이다. 숫자로는 적어 보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결코 작은 세상이 아니다.

AYA 환자들은 치료의 불확실성, 장단기적 부작용, 생식 기능 보존의 어려움, 경제적 불안정, 사회적 고립,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매일 싸운다. 암으로 인해 학업이나 일을 멈춰야 하고, 친구들과의 관계가 멀어지기도 한다. 이로 인한 우울, 불안, 불면,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는 일반 청년층보다 훨씬 높게 보고된다. 그들의 고민은 또한 매우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이 일이 여전히 내 인생에 의미가 있을까?”
“앞으로의 삶을 경제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그들의 마음을 흔든다.


AYA 환자들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건 역시 ‘함께하는 경험’이다.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며 몸과 마음을 다잡는 자조 모임에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또래들과 나누는 대화는 큰 위로가 된다. 선배 환우들이 강사나 멘토로 참여하는 프로그램에서는 “나도 그랬어요”라는 한마디가 새로운 희망으로 다가온다.

모임이 부담스럽다면 온라인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요즘 젊은 세대답게, 이들은 디지털에 익숙하다. SNS,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서로 정보를 나누고 응원하며, 치료 이후의 인생을 함께 설계한다.

병이 삶을 바꿔놓았지만, 그 덕분에 더 단단해지고 사람 사이의 관계가 더 깊어졌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다. 그들의 여정은 단지 ‘생존’이 아니라, 다시 삶을 ‘회복’하는 이야기다.

청년기에 암 진단을 받는다는 것은 성장의 길이 잠시 멈춘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바라보면, 그것은 자기 인식과 회복력을 키우는 시간이기도 하다. 남들과는 다른 길이지만, 분명 또 다른 형태의 성숙이다. 이 여정에서 의료진 또한 질병의 치료만이 아니라 마음의 돌봄, 이들의 진로와 사회 복귀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이 과정을 힘껏 도와야 한다. 이런 다학제적 이해와 사회적 지원이 함께할 때 AYA 환자들은 비로소 ‘환자’가 아닌 ‘청춘’으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남이섬의 단풍잎은 어느새 바람에 흩날려 강물 위로 떨어진다. 가지를 떠난 잎은 잠시 물 위에 머물며 마지막 빛을 발한다. 우리의 삶도 그러하지 않을까.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든, 그 자리에서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그리고 내 곁의 누군가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어쩌면 가을 단풍처럼 아름다운 삶으로 나아가는 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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