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준철의 약·잘·알(약 잘 알고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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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치료제 '위고비' / 노보 노디스크 제공
비만 치료제 ‘삭센다’, ‘위고비’, ‘마운자로’ 등의 GLP-1 유사체 주사는 기존 비만 치료제보다 체중 감량 효과가 좋고 정신과적 부작용이나 심혈관계 부작용이 적어서 전 세계적으로 많이 판매되고 있다. 이 약들은 위장에서 포만감을 늘리고 배고픔을 덜 느끼게 해 식욕이 억제되는 효과가 우수하고 음식에 대한 갈망감도 줄여준다.

최근에는 이 같은 GLP-1 유사체 비만 치료제의 다른 효과도 밝혀지고 있다. 식사량뿐 아니라 음주량을 줄여주는 효과다. 실제 비만 치료제를 투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음주와 야식 섭취가 줄어들어 체중이 감소했다는 경험담이 퍼지기 시작했다. ‘단순히 음식을 안 먹는 것을 넘어서 술 생각 자체가 줄어들고 술을 먹어도 훨씬 적게 먹더라’라는 이야기들이 많이 들린다.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는 경험담이 실제 효과가 있는 것인지 팩트 체크를 하기 위해 미국·캐나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교수들이 2022년 9월부터 2024년 2월까지 미국의 대형병원에서 체계적인 임상실험을 실시했다. 평균 40세 정도인 남녀 참가자들에게 9주 동안 저용량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 1~2단계를 투여하고 알코올 섭취량 변화를 측정하는 방식이었다.

임상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가 알코올중독 치료제로서 인정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음주량이 줄어드는 효과가 유의미하게 있었다. 위고비를 투여하면 술을 먹는 날의 하루 총 음주량이 줄어들고, 과음(여성 4잔 이상, 남성 5잔 이상)하는 일수 자체도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가 느끼는 술에 대한 갈망감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술 소비가 줄어든 만큼 혈중 알코올 농도나 호흡기에서 나오는 알코올 농도도 감소했다.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승인하고 시중에 유통 중인 알코올중독 치료제는 ‘날트렉손’과 ‘아캄프로세이트’ 두 가지 약물밖에 없다. 이 중 날트렉손은 매일 먹어야 하는 데다, 초기 알코올중독이 아닌 어느 정도 진행된 단계에서 쓰는 약이라는 한계점이 있다. 아캄프로세이트 또한 급성 금단증상에는 효과가 없고 장기적인 금단증상에 효과가 있다는 약효의 한계점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위고비는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고 알코올중독 초기 단계나 중독자가 아니더라도 술을 줄이고 싶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약으로 각광받을 수 있다. 매일 복용할 필요 없이 일주일에 한 번 본인 배에 스스로 주사해, 일주일 동안 술에 대한 갈망이 줄어들고 실제 음주량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 같은 이점으로 인해 알코올중독 클리닉을 운영하는 미국 신경정신과병원과 전문의들 사이에서 위고비의 효과를 주목하기 시작했으며, 알코올중독 치료제 선택사항 중 하나로 고려하고 있다. 물론 알코올중독 치료는 식약처 정식 승인 약물인 날트렉손과 아캄프로세이트를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위고비는 차선책일 뿐이다. 그러나 정형외과 진통제 등으로 많이 쓰는 ‘트라마돌’ 같은 마약류 수용체에 작용하는 통증 약의 진통효과를 날트렉손이 막기 때문에 날트렉손을 쓸 수 없는 환자의 경우 차선책이 매우 유용할 수 있다. 아캄프로세이트 또한 금주 효과 자체가 약한 약이라서 차선책의 유용성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위고비는 고용량을 주사 할 필요 없이 최저 용량인 1단계(0.25mg)나 2단계(0.5mg)만으로도 음주 억제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부작용이 상대적으로 경미할 수 있다. 구역·구토 같은 위장 부작용이나, 설사·복부팽만 등의 부작용이 용량에 비례해 증가하기 때문에 저용량 위고비에서는 부작용이 매우 경미하게 나타나는 편이다. 위고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췌장염이나 망막손상 등의 부작용 역시 투여 용량에 비례해서 발생 위험이 증가하는데. 저용량에서는 거의 걱정이 없다.

다만, 위고비는 본래 비만 치료 주사제이기 때문에 금주 목적으로 저용량 위고비를 투여하는 사람은 평균 5kg 정도의 체중감소가 나타날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과체중인 애주가에겐 이득이 될 수 있지만, 마른 애주가에게는 투약할 수 없는 약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