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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대원들./사진=연합뉴스
최근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이 다쳐 119 구급차가 출동하는 일이 발생했다. 구급대원은 담임교사에게 보호자로서 동승을 요청했다. 해당 교사는 수업도 있고 다른 학생들도 책임지고 있어 어렵다고 설명했지만 병원 접수 절차 등을 이유로 병원 수용이 어려울 수 있다는 구급대원의 말에 결국 구급차에 함께 탑승했다. 이처럼 구급차 보호자 동승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어 현장에선 혼선이 반복되고 있다.

◇보호자 동승 요구하는 구급대원들, 왜?
과거에는 보호자가 구급차에 동승하려고 해도 구급대원이 허용하지 않아 자차로 구급차를 뒤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오히려 구급대원이 보호자에게 동승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병원에서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환자 수용을 거부하는 일이 증가하면서 구급대원들이 ‘동승이 없으면 병원에서 환자를 받지 않을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미성년자, 치매 노인, 장애인 등 의사소통이 어려운 환자의 경우 이러한 요구가 특히 많다.

현재 소방청의 ‘구급대원 업무지침’에는 구급차에는 구급대원 외 불필요한 인원이 탑승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를 구체적으로 규정한 법령은 없다. ‘119 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도 환자가 자해 위험이 있거나 타인에게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을 경우 동승을 요청할 수 있다는 내용만 포함돼 있을 뿐이다.

병원 입장에서도 보호자 부재는 부담이 된다. 보호자가 없으면 진료 동의나 귀가 조치, 수납 절차 등을 처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앙응급의료센터 한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보호자가 없으면 환자 등록이나 동의 절차가 지연될 수 있어 의료진이 보호자 동행을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며 “결국 구급대원 입장에서는 보호자가 없으면 병원이 환자를 안 받는 경우가 있으니 동승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구급대원이 보호자 동승을 요구하는 게 일종의 ‘방어 행위’라는 의견도 있다. 환자 이송 중 문제가 발생했을 때 보호자가 없으면 모든 책임이 구급대원에게 집중되므로 보호자가 이송 상황을 직접 확인하게 만들어 민원이나 법적 분쟁 가능성을 줄인다는 것이다.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이영주 교수는 “구급차 내 CCTV나 바디캠 등이 있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가서 소명해야 되는 상황들이 발생하기도 한다”며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일했는데 소명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서, 방어적인 차원에서 보호자 동승을 선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구급대원 민원 부담 줄이는 정책 필요”
이처럼 의료 인력이 민원과 법적 리스크에 대한 부담 때문에 방어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위급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처치가 지연될 수 있다는 게 큰 문제다. 이영주 교수는 “책임 부담이 커지면 구급대원들이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되고,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돌아간다”며 “적극적인 의료행위가 사람을 살리는 경우도 있는데 과도한 민원 부담이 그런 융통성이 발휘될 기회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구급대원이 법적·행정적 책임 부담 없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강조한다. 이 교수는 “구급대원이 정상적인 절차와 판단에 따라 조치했다면 법적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면책 제도가 시급하다”며 “특히 조직 차원에서 민원 부담이 대원 개인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비응급 환자의 구급차 이용을 줄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주취자, 단순 감기, 타박상, 외래 진료 등 자가 이동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구급차를 요청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 중앙응급의료센터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응급의료기관을 찾는 전체 환자 769만 명 중에서 비응급 및 경증환자 비율이 53.4%이었고 중증환자 비율은 6.1%에 불과했다. 구급대원들이 보호자 동승을 요구하는 건 대부분 경증 환자다. 의식이 없는 중증 환자라면 보호자 동승 여부를 따질 겨를이 없다.   

중앙응급의료센터 전문의는 “구급차 이용이 무상으로 이뤄지다 보니 경증 환자들도 쉽게 이용하는 경향이 있다”며 “경증 환자 이용률이 높아지면 실제 구급차의 도움이 필요한 중증환자들의 구급차 이용 기회는 자연스럽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어 “경증 환자들이 구급차 이용을 자제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캠페인이 필요하고 안 된다면 유료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응급실 과밀화와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 중 하나로 구급차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환경으로 보고 있다. 이에 중증환자나 입원이 필요한 경우에만 구급차 사용료를 경감하거나 무료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일본의 경우 일부 지자체에서 구급차를 이용했지만 입원을 하지 않으면 약 7만원의 사용료를 부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