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자는 오늘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민이다. 소극적인 정책으로 오늘의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면, 내일은 감당할 수 없는 스노우볼(초반의 작은 행동이 추후 큰 문제로 번지는 현상)이 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

국내 희귀질환자들의 낮은 의료 접근성과 경제적 부담, 사회적 고립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총괄 컨트롤 타워 신설과 별도 기금 마련 등 체계적인 제도 설계·수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환자와 가족들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제도적·법률적 기반 마련이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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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권영대 정책위원이 지난 25일 서울성모병원 성의회관 마리아홀에서 열린 ‘희귀‧중증 질환 치료방향과 사회윤리’ 심포지엄에서 발표하고 있다. / 사진 = 전종보 기자
◇“진료 가이드라인 필요… 체계적으로 제도 설계해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지난 25일 한국의료윤리학회·한국생명윤리학회와 함께 서울성모병원 성의회관 마리아홀에서 ‘희귀‧중증 질환 치료방향과 사회윤리’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최근 고비용 혁신 치료제의 등장으로 대두된 희귀‧중증질환 치료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와 관련된 형평성, 재정 지속 가능성 등 주요 쟁점을 사회·윤리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합리적인 건강보험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날 첫 번째 세션에서는 분당차여성병원 유한욱 교수가 ‘혁신적 희귀질환 치료의 명과 암’을 주제로 발표했다. 유 교수는 구체적인 질환·환자 사례를 소개하며 희귀의약품의 특수성과 희귀질환에 대한 체계적 진료 가이드라인, 치료 중단 기준 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희귀유전질환의 혁신적 치료법들은 환자의 삶의 질 향상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지만, 경제적 접근성과 치료 지속성 측면에서 여전히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며 “예를 들어 효소대체요법은 안정적이고 검증된 치료법이지만, 근본적 치료의 한계가 있으며, 유전자치료제는 혁신적 효과를 제공하지만 1회성 투여, 극도로 높은 비용이 장벽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명확한 치료 중단 기준의 설정과 지속적인 모니터링 체계 구축이 시급하다”며 “희귀질환에 대한 체계적인 진료 가이드라인 개발이 필요하다”고 했다.

두 번째 발표를 맡은 심평원 이소영 약제성과평가실장은 ‘치료제의 건강보험 급여 현황과 과제’를 주제로 ▲국내외 희귀의약품 신약 개발·허가 동향 ▲희귀·중증질환 치료제 급여 현황 ▲ 희귀·중증질환 치료제의 특성 ▲희귀·중증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개선과제 등에 대해 설명했다. 이 실장은 “환자는 지속적으로 치료가 보장돼야 하고, 진료 현장과 급여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치료가 계속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재정은 치료가 부족하지 않게 기초적으로 재원을 안정하게 보충·관리하고, 제약사는 좋은 신약을 계속 개발할 수 있는 동기부여와 수익 창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네 가지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희귀·중증질환 치료제의 급여 결정이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만큼 체계적인 제도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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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지난 25일 한국의료윤리학회·한국생명윤리학회와 함께 서울성모병원 성의회관 마리아홀에서 ‘희귀‧중증 질환 치료방향과 사회윤리’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왼쪽부터 분당차여성병원 유한욱 교수, 심평원 이소영 약제성과평가실장,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이일학 교수와 서울시립대 목광수 미래철학연구센터장, 울산대 인문사회의학교실 이경도 교수 ) / 사진 = 전종보 기자
◇“희귀질환자도 대한민국 시민… 제도적·법률적 기반 절실”
두 번째 세션에서는 환자단체, 의료윤리학자, 정책전문가 등이 참여해 희귀·중증질환 치료와 자원 분배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실제 희귀질환을 앓는 자녀를 키우고 있는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권영대 정책위원은 국내 희귀질환 환자·가족들이 겪는 문제로 낮은 의료 접근성과 경제적 부담, 사회적 고립, 국가의 부재 등을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보건복지부 내 희귀질환 전담 총괄 컨트롤 타워 신설 ▲현장 목소리를 반영한 환자 주의 정책 수립 ▲사회적 협의를 통한 기금 마련 또는 재정 투입 ▲돌봄·교육·심리·복지까지 포괄하는 다층적 지원 ▲희귀질환자복지법 제정 등을 제시했다.

권 위원은 “희귀질환자는 오늘을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시민”이라며 “제도적·법률적 기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소극적인 정책으로 오늘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내일은 감당할 수 없는 스노우볼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며 “희귀 질환자에 대한 적극적 복지 정책으로 희귀 질환자를 동등한 시민으로 바로 세울 때, 비로소 미래 지향적 투자가 가능해져 건강한 대한민국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진 발표에서는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이일학 교수와 서울시립대 목광수 미래철학연구센터장, 울산대 인문사회의학교실 이경도 교수가 ▲분배 우선순위 ▲절차적 정의 ▲외국 사례에 대해 발표했다. 이일학 교수는 “희귀질환 치료제는 환자들에게 치료 가능성을 열어줬지만 여전히 비용과 효과 측면에서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며 “별도 재원을 마련한 뒤, 그 안에서 우선순위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목광수 센터장 또한 “희귀질환 치료비의 공적 지원 논의는 시급성과 중요성으로 인해 제도 윤리 층위에서 다뤄야 한다”며 “자원의 희소성 아래의 제도 층위 논의는 자원을 증대하거나 절감하는 개인 층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이번 심포지엄에는 강중구 심평원장, 장양수 심평원 진료심사평가위원장을 비롯해, 환우회, 의료윤리학회, 보건의료 전문가 등 300여명이 참여했다. 강중구 원장은 “이번 심포지엄은 치료제의 효과성과 합리적인 지출이라는 두 가지 의사결정 체계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하고 제도 개선 방향을 고민하는 뜻깊은 자리였다”며 “앞으로도 정부와 협력해 국민적 공감과 신뢰를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보건의료 체계를 만들어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