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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클립아트코리아
정부가 추진 중인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지원사업’이 지역의료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적합 질환군’이 불러온 지역 진료 축소
상급종합병원 구조 전환 지원 사업은 상급종합병원을 본래 역할에 맞게 중증도와 난도가 높은 환자 치료에 집중하는 ‘중환자 중심 병원’으로 탈바꿈시키는 게 목표다. 경증 환자는 지역 병의원과 협력해 효율적으로 진료할 수 있도록 의료 전달 체계의 전반적인 구조를 바꾸는 것이다. 그런데 해당 사업이 오히려 지역의료를 붕괴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의료계에서 나오고 있다. 영남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신경철 교수는 최근 대한의학회 기고문을 통해 “구조 전환 사업의 핵심 기준인 ‘적합 질환군’ 비율이 지방 대학병원의 공동화를 부추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적합 질환군이란 상급종합병원의 진료 역량을 평가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해당 병원에서 중점적으로 진료해야 하는 질환들을 의미한다. DRG A(전문진료질병군) 환자, 권역외상센터 입원 환자, 희귀질환자 등 중증·응급 질환이 포함된다.

신경철 교수는 “앞으로 상급종합병원은 전체 환자 중 적합 질병군 비율을 70%까지 올려야 유지될 수 있는데, 이 기준을 맞추기 위해서는 중증이나 응급이 아닌 분야나 수익성 낮은 비적합 질환군 분야는 축소해야 한다”며 “비적합 질환군 분야는 입원 없이 외래진료만 보는 형태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앞으로 호흡기내과의 만성기도질환이나 이비인후과의 일부 전공 영역은 비적합 질환군으로 분류돼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신 교수는 “지금처럼 동일한 학문 분야에 다양한 전공 분야의 교수를 유지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이미 진료의 공백 사태가 발생하고 있는 지방의 대학병원은 진료 능력 저하뿐 아니라 전문 인력 양성도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상급종합병원서 밀려난 환자 공백 불가피
지방의 경우, 구조 전환 사업의 영향으로 상급종합병원에서 밀려난 환자들을 담당할 의료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다는 게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은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하면 대부분 전문병원 위주로 구성돼 있다”며 “이러한 형태는 단순화되고 분절적 형태의 병원으로, 구조 전환 사업의 결과로 대학병원에서 밀려난 환자들을 감당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예컨대 척추 분야나 정형외과의 경우 다양한 만성질환이 있거나 단일 질병명으로 묶을 수 없는 복잡성을 띤 수술은 지금까지 거의 상급종합병원이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구조 전환 사업이 본격적으로 적용되면 이들 환자는 상급종합병원이 담당할 수 없게 된다.


신 교수는 “보건당국은 ‘포괄 2차 병원 지원사업’을 통해 상급종합병원이 담당하는 환자 중 ‘적합 질환군’을 제외한 환자들을 담당할 수 있는 병원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지역 내 이러한 의료기관은 절대 부족”이라며 “능력 있는 의사를 확보할 수 어려워 결국 대학병원의 젊은 교수들이 이직하여 이 자리를 메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지역의 의료 상황이 수도권과 차이가 큰데 일률적으로 2차 진료와 3차 진료를 기계적으로 구분하면 지역의 환자들이 적절한 진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고 했다.

◇재정 압박에 병상 총량제 이중고
인구가 감소하는 지역의 상급종합병원은 재정 상태가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신경철 교수는 “상급종합병원이 중증, 희귀, 응급질환의 진료만 담당한다면 인구가 증가하지 않고, 경제력이 점차 약해지고 있는 지방의 상급종합병원은 재정적 압박에 직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대부분 희귀질환은 수익성이 없으며, 응급질환의 경우 인력과 장비, 공간이 많이 필요하여 유지 비용이 높아 상급종합병원 기준은 충족하더라도 재정적 적자가 지속되면 견딜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의 병상수급관리계획 역시 지역 의료기관에게게 이중고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다. 신 교수는 “지방 대부분 지역은 일반 병상 ‘공급 조정·제한’으로 실제 병원 신설이나 기존 병원의 병상 증설은 할 수 없게 되었다”며 “지역의료 강화라는 절대적 과제를 고려한다면 어울리기 어려운 정책”이라고 말했다. 이어 “병상 규제를 하기 전 실제 기능을 하는 병상에 관한 확인이 필요하다”라며 “기존 병의원은 병상을 보유하고 있지만 전혀 기능하지 않는 병상은 실제 병상수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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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의대 호흡기·알레르기내과 신경철 교수./사진=대한의학회
끝으로 신 교수는 전문가들의 우려를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에서 오랫동안 의학교육과 중증 의료에 종사한 전문가들은 구조 전환 사업의 보이지 않는 면을 걱정하고 있다”라며 “오늘 우리나라 지역에서 실제 작동할 수 있는 정책인지, 도입하는 각 정책은 서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 여전히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