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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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가 급성장하는 지금, 한국 의료 혁신을 위해 제도 개혁과 투자가 필요하다. /클립아트코리아
"시간이 곧 생명이다." 급성심근경색 환자를 치료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뒤 90분 안에 치료를 끝내야 생존율이 높아지고 심장 손상도 최소화된다. 의학에서 이 결정적 시간을 '골든타임'이라고 부른다.

이 골든타임의 개념은 환자 치료뿐 아니라 지금 한국 의료가 맞이하고 있는 기술 혁신에도 적용된다.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헬스케어가 빠르게 발전하는 지금이 바로 골든타임이다.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한국 의료의 미래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예가 관상동맥(심장 근육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 질환 진단이다. 관상동맥 질환은 전 세계 사망 원인 1위를 차지하는 치명적인 질환이다. 과거에는 혈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환자의 심장혈관에 고가의 기구를 직접 삽입해야 했지만, 이제는 CT(컴퓨터 단층촬영)나 혈관 조영술 영상을 AI 소프트웨어가 분석해 비침습적으로 혈류와 심근 허혈 여부를 평가할 수 있다. 주요 생체 신호를 연속 측정하는 웨어러블 기기도 발전하고 있다. 환자 부담은 줄고 의료진은 안전한 진단법을 선택할 수 있으며, 불필요한 검사까지 줄여 경제적 이득을 얻는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AI는 빠르게 발전하지만, 제도는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현행 인허가 기준은 기계 장비나 의약품에 맞춰져 있어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중심의 AI 기술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그 결과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기술조차 인허가 과정에서 오랜 시간 발이 묶인다. 업데이트될 때마다 복잡한 절차를 반복해야 하는 것도 걸림돌이다.


인허가를 통과하더라도 또 다른 벽이 있다. 바로 의료수가 심사다. 혁신 기술이 의료 현장에 자리 잡으려면 합리적 보상이 필요하지만, 현 심사 기준은 불명확해 그 가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수년간 막대한 비용을 들여 개발한 기업이 정당한 수익을 내지 못하면 시장에서 사라지고, 국내에서 뿌리내리지 못한 기업은 해외 진출도 어렵다.

변화는 불가피하다. 임상적 효과를 올바르게 평가하고 그에 맞는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업데이트된 기능은 전면 심사 대신 보완 심사로 신속히 반영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기업의 투자와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아야 지속적 혁신이 가능하다. 의료진이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활용할 수 있도록 데이터 인프라와 교육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 무엇보다 의료 혁신의 중심에 선 AI 기반 소프트웨어는 기존 틀로 담기 어려운 만큼, 새로운 평가와 보상 시스템이 절실하다.

세계는 이미 디지털 헬스케어를 의료 표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이 이 흐름을 놓치면 의료 선진국으로서의 경쟁력을 잃게 된다. 최근 필자가 초기 개발에 참여했던 미국의 CT 기반 혈류 검사 소프트웨어 회사는 약 3조5000억 원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미국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혁신 기술이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도 이 같은 기업이 속속 등장해야 한다. 국민 건강을 지키는 동시에 의료 산업이 국가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골든타임은 환자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국가와 의료 혁신에도 있다. 지금 이 시간을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과감한 제도 개혁과 투자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민이 더 안전한 의료를 누리고, 한국 의료가 세계 무대에서 도약할 수 있을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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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권 서울대병원 순환기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