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 환자들의 중증·희귀 합병증인 '이식편대숙주질환'의 치료 환경이 개선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차 치료까지 받아도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가 많지만, 3차 치료부터는 월 1000만원 이상의 고가 신약을 전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한, 이식편대숙주질환 환자들은 산정특례가 끊길 경우 치료 접근성이 더 나빠진다는 지적도 등장했다.
◇"3차 치료 필요한 환자 많지만… 접근성 낮다"
더불어민주당 서미화 의원은 20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중증·희귀 합병증 치료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식편대숙주질환이란 조혈모세포 이식술 이후, 세포를 공여한 건강한 사람의 면역세포가 환자의 몸을 이물질로 인식해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다. 이식술 이후 약 100일 후에 병이 급성에서 만성으로 이어질 경우, 전신 염증 외에도 장기가 굳는 섬유화 현상이 동반된다. 암의 재발 없이 합병증으로 사망한 사례의 원인 1위를 차지했으며, 특히 50%의 환자에서 나타나는 간·폐 관련 숙주 반응은 사망 위험이 60%로 알려졌다.
그러나 의료진들에 따르면, 현재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 환자들은 치료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1·2차 치료제로 쓰이는 약제들은 건강보험 급여가 가능하지만 치료 효과를 보지 못하는 환자가 많고, 3차 치료제의 경우 환자가 비용의 전액을 부담해야 해서다. 1차 치료로는 주로 스테로이드·면역조절제를 병용하나, 환자 중 70%는 효과가 없어 2차 치료를 진행한다. 2차 치료로는 경구제 '자카비'를 투여하나, 이를 사용해도 3차 이상 치료가 필요한 환자 비율이 47%다.
3차 치료로는 섬유화 개선 기전을 가진 '레주록'이라는 경구제를 사용한다. 다만, 효과가 높은 만큼 약가가 높아 쉽게 급여권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현재 3차 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월 1000만원 이상의 약제비를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 의료진의 입장이다.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곽대훈 교수는 "레주록은 국내에서 2차 치료 실패 후 3차 약제로서 허가를 받았지만, 치료한 알 당 40만원 이상의 비용을 환자 본인이 직접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며 "단기적으로는 섬유화를 개선할 수 있는 3차 약제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정특례 연장 어려워… 부담 6배 높아진다"
중·장기적으로 산정특례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혈액암 환자들은 진단 후 산정특례 지원 기간(5년)에는 전체 의료비의 5%만 부담하면 되며, 5년 후에도 완치가 되지 않는다면 산정특례 적용기간을 연장받을 수 있다.
그러나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은 암이 아니라, 조혈모세포 이식술 이후 발생하는 부작용으로 분류돼 산정특례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조혈모세포 이식술을 받은 후에는 혈액암 자체에 대해서는 완치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혈액암에 대해 완치 판정을 받아 산정특례가 종료되면, 환자들은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이 발생하더라도 기존 대비 약 6배 높은 치료비를 부담해야 한다.
이날 토론회 좌장을 맡은 대한조혈모세포이식학회 박성규 이사장은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은 조혈모세포 이식 후 동반된 2차성 질환으로 분류돼 특례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며 "산정특례 종료 시점에 환자 본인부담률은 5%에서 30% 이상으로 올라가고, 그 부담은 환자와 가족의 몫이 된다"고 말했다.
환자 또한 목소리를 냈다. 토론에 참여한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 환자 A씨는 "치료비 부담이 매우 크고, 그나마 희망이 되는 3차 치료제마저 비급여인 현실에서 환자와 가족은 절망할 수밖에 없다"며 "환자들이 치료비 부담으로 고통받지 않을 수 있도록 산정특례 제도가 항암치료 후에 발생하는 중증 희귀합병증에도 적용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 또한 신약 급여 절차 개선을 검토하겠다고 전했다. 약이 필요한 환자들이 우선 급여로 사용한 후, 추후 제약사가 장기간 치료 시 효능 데이터를 정부에 제출하는 '선등재 후평가' 제도가 대표적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김국희 약제관리실장은 "장기간 치료 효과가 불확실한데 먼저 급여를 적용하는 대신, 제약사가 추후 임상 근거를 제출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해보겠다"며 "전문가들의 목소리 또한 충분히 들을 수 있도록 더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