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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혈 받는 고양이/사진=게티이미지뱅크
고양이는 백혈병, 신부전 등 다양한 질병으로 인해 수혈이 필요한 경우가 적지 않다. 혈액 수혈만으로 목숨을 구하거나 치료를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수요에 비해 혈액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실제로 고양이 보호자 온라인 커뮤니티와 카페에는 "B형 혈액 구합니다"와 같은 수혈 요청 글이 자주 올라온다.

다행히 최근 들어 고양이 헌혈을 통한 혈액 공급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고양이 특성상 헌혈이 꺼려질 수 있지만, 안전하고 체계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고양이 건강 검진과 펫 보험 혜택도 제공되는 만큼 보다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1회 채혈량 적은 고양이, 혈액 공급 난항
수혈만 제때 해도 고양이의 회복 속도가 빨라지고, 생존율이 높아진다. 베를린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빈혈을 앓는 고양이 91마리 중 수혈을 받은 88마리의 1일 후 생존율은 84.1%, 10일 후 생존율은 63.7%에 달했다. 질환 유형별로는 급성 혈액 손실로 수혈받은 고양이는 1일 생존율이 90%, 10일 생존율은 75%였다. 용혈성 빈혈을 앓은 고양이의 경우에는 1·5·10일 생존율 모두 76.9%로 비교적 안정적인 회복 양상을 보였고, 골수 기능 저하로 인한 빈혈에서는 1일 생존율이 80%, 10일 생존율은 48.6%이었다.

문제는 수혈용 혈액 공급이 개보다 고양이에서 까다롭다는 것이다. 한국고양이혈액센터 관계자는 "강아지는 리트리버나 사모예드처럼 체중 40kg이 넘는 대형견이 많아, 한 번의 헌혈로 소형견 서너 마리에게 수혈을 할 수 있다"며 "반면 고양이는 대형 품종이 없고 일반적으로 체중이 10kg을 넘기 어렵기 때문에 1회 채혈량이 매우 제한적이다"고 말했다.

고양이 혈액의 특성상 보관 가능 기간도 강아지 혈액의 절반 수준에 불과해, 미리 헌혈해 혈액을 보관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앞서 언급한 연구에서도 채혈 후 15일 이내의 혈액만 사용했다. 고양이 혈액은 15일을 넘기면 품질이 떨어지고 부작용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에, 미리 비축해 두는 방식보다는 필요할 때 신선한 혈액을 빠르게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헌혈하려면 체중·건강 상태·성격 중요
고양이 헌혈은 현재 한국고양이혈액센터와 VIP동물의료센터, 서울대 수의과대학 동물병원에서 가능하다. '한국고양이혈액센터'는 국내 최초의 ​고양이 전용 수혈·헌혈 전문 기관으로, 2015년부터 백산동물병원에서 이어온 '고양이 헌혈 프로그램'을 기반 삼아 별도 기관으로 분사했다.

다만, 헌혈 의사가 있대서 무조건 실제 헌혈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국고양이혈액센터를 기준으로 살펴보면, ▲체중 5kg 이상 ▲예방접종 완료 ▲수혈 이력 없음 ▲느긋하고 온화한 성격 등의 기준을 충족할 때만 헌혈이 가능하다. 다양한 건강 검진 후 '헌혈이 가능할 만큼 매우 건강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약한 마취하에 목 부위 혈관을 통한 헌혈을 진행한다.

보호자가 반나절만 시간을 내면 헌혈에 동참할 수 있다. 헌혈 자체는 10분 내외로 끝난다. 회복을 위한 수액 처치와 건강검진, 귀가 전 관찰 시간을 포함해 병원 체류 시간은 서너 시간이다. 헌혈 후 다음 날에는 상태 확인을 위한 해피콜 서비스가 진행된다. 한국고양이혈액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보호자 대부분은 "고양이 상태가 평소와 다르지 않다"는 반응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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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양이혈액센터는 수혈이 필요한 고양이를 위한 헌혈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사진=한국고양이혈액센터 제공
◇헌혈하며 건강 검진까지… 펫보험도 가입
헌혈에 성공하든 성공하지 못하든, 헌혈 시도 고양이에겐 다양한 건강 혜택이 제공된다. 한국고양이혈액센터의 경우, 헌혈 적합성을 판단하기 위한 혈구·혈청·Pro‑BNP 키트·엑스레이(X-ray) 등 총 36개 항목의 건강 검진을 무료로 시행한다. 검사 결과 이상이 발견되면 헌혈은 진행하지 않고, 보호자에게 현재 건강 상태와 관리법을 안내한다.

건강 검진 후 실제 헌혈에 참여한 고양이에겐 더 많은 혜택이 있다. 채혈을 위한 마취 도중 치아 상태를 확인하고, 구강 내 사진을 촬영한다. 추후 구강 건강 관리 자료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헌혈이 끝난 후엔 1년간 유효한 반려동물 보험에 가입된다. 비용은 보호자가 아닌 센터가 전액 부담한다. 센터 측은 "개원 후 지금까지 헌혈한 고양이가 다른 질병으로 보험금을 청구한 사례는 아직까지 단 한 건도 없다"며 "그만큼 건강을 보장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고양이의 수혈은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확보하는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혈액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치료 기회를 놓치는 고양이들이 많다. 한국고양이혈액센터는 "고양이 헌혈이 생소하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 역시 반려동물 보호 문화의 한 축으로 인식되어야 할 때"라며, "보다 많은 고양이 보호자들이 헌혈캠페인에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