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약史] 훼스탈

1995년 9월 29일자 조선일보 <백두산 호랑이 “위궤양 투병 중”> 기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썼다.

‘강택민 중국총서기가 김영삼 대통령에게 선물한 백두산 호랑이 암수 한 쌍 중 수컷(5)이 5개월째 심한 위궤양을 앓고 있다. (중략) “서식지가 바뀌면서 스트레스를 받아 위가 상했으니 4~5달 정도 소화제와 영양제를 집중 투입하라”고 권고했다. 이날 이후 매일 6kg씩 한꺼번에 먹던 식사를 3회에 나누는 엄격한 식이요법이 실시됐다. 고기에는 기계로 빻은 훼스탈 1백50정, 게브랄티 1정, 항생제 1정씩이 들어갔다.’


기사 말미에 호랑이를 치료하기 위해 ‘기계로 빻은 훼스탈 1백50정을 고기에 넣어 먹였다’는 대목이 눈에 띈다. 맞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그 약이다. 요즘은 ‘편의점 소화제’라고도 불리는 훼스탈이다.


훼스탈 덕분인지, 극진한 간호 덕분인지(백두산 호랑이가 죽어간다는 소문이 돌자 청와대에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고, 최양부 당시 농수산수석이 직접 수목원을 방문해 백두산 호랑이 건강관리팀을 구성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백두산 호랑이 ‘백두’는 건강을 되찾았다. 그 후로 21세까지 장수하며 국내 최장수 호랑이로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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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9월 29일자 조선일보 기사 <백두산 호랑이 “위궤양 투병 중”>. 빨간색 표시한 부분에서 백두산 호랑이에게 훼스탈을 먹였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 한독 제공
◇소화제 훼스탈, ‘만리장성 관련주’로 주목 받은 사연
훼스탈은 1957년 한독이 독일 훽스트(現 사노피)와 기술제휴 협정을 맺고 들여온 약이다. 국내에 처음 출시된 건 이듬해인 1958년으로, 당시만 해도 정제형(알약) 소화제는 훼스탈이 유일했다. 한독은 1959년에 훼스탈 제조기술을 이전받아 지금까지 자체 생산하고 있다.

긴 역사만큼이나 약과 관련된 일화도 많다. 앞서 소개한 백두산 호랑이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1970년대 국내 이민 붐 당시엔 훼스탈이 이민 필수품으로 여겨졌고, 2000년대 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에게 ‘시험문제를 잘 소화해라’란 의미로 훼스탈을 선물하기도 했다.


1988년에는 뜬금없이 ‘만리장성 테마주’로 관심을 모았다. 당시 중국 정부가 만리장성에 바람막이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투자자들 사이에서 관련주 찾기 열풍이 불었는데, 이때 훼스탈도 관련주로 묶였다. 식품회사에서 공사에 투입될 인력들에게 호빵을 제공하고, 호빵을 먹다가 체할 경우에 대비해 훼스탈을 공급할 것이란 소문이 돌면서다.

1967년 뤼브케 전 독일 대통령이 한국을 국빈 방문하던 중 자국 기업인 ‘훽스트’의 로고가 들어 있는 한독 간판을 보고 갑작스럽게 훼스탈 제조공장을 방문한 일화도 있다. 이는 외국 원수(元首)가 한국 기업을 방문한 첫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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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뤼브케 전 독일 대통령의 훼스탈 공장 방문을 소개한 독일 신문 기사. 이는 외국 원수(元首)가 한국 기업을 방문한 첫 사례였다. / 한독 제공
◇지난해 매출 160억… 국내 소화효소제 시장 1위
한국인의 식문화는 끊임없이 바뀌어 왔고, 지금도 바뀌고 있다. 과거와 비교하면 소화불량의 원인도 다양해졌다. 이전엔 과식이 주된 원인이었다면, 지금은 스트레스나 불규칙한 식습관 때문에 소화제를 찾는 이들도 많다.

한독은 이 같은 변화에 맞춰 신제품을 선보여 왔다. 현재 훼스탈은 ▲훼스탈 슈퍼자임 ▲훼스탈 플러스 ▲훼스탈 골드 3종으로 구성됐다. 제품마다 성분과 효과가 조금씩 다르다.

훼스탈 슈퍼자임은 소화효소제·건위제·제산제·점막수복제·가스제거제를 함유한 5중 복합 소화제로, 위산과다, 속쓰림, 위부불쾌감, 구역, 구토, 위통, 신트림 등을 개선하는 데 효과적이다. 훼스탈 플러스는 췌장 효소 성분인 판크레아틴을 함유해, 과도한 탄수화물이나 육식 섭취 등에 따른 소화불량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훼스탈 골드는 시메티콘이 함유돼 가스제거에 특화됐다.


훼스탈 플러스와 훼스탈 골드의 경우 안전상비의약품으로 편의점에서도 구입할 수 있다. 약국 훼스탈과 편의점 훼스탈은 효능·효과가 동일하며 포장단위에만 차이가 있다.

훼스탈은 지난해 기준 연 매출 약 160억원(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기록했다. 출시한지 6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한독의 대표 제품이다. 국내 소화효소제 시장 1위 자리 역시 훼스탈이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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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스탈 플러스 / 한독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