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화된 식생활이 바꾼 아이들 체형 변화의 명암

'건강이 최고'라고들 말하지만, 정작 건강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바쁘고 지친 일상 속에서 제대로 건강을 챙기지 못하고, 설령 챙기려 해도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는 경우도 흔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현대인들의 건강 행태를 돌아보고, 그 속에 감춰진 위험 신호를 짚어봅니다. 전문가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건강한 방향'을 제시합니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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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10년대생 멤버들로 구성된 SM 걸그룹 하츠투하트.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요즘 애들은 다리도 길고 얼굴은 주먹만 해."

요즘 아이들을 바라보며 어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실제로 거리에서 마주치는 청소년들만 봐도 키는 크고 얼굴은 작아졌다. 과거에 비해 한층 서구화된 체형을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얼핏 보면 더 건강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그 이면에 우려할 점도 적지 않다고 말한다. 턱뼈의 퇴화, 비정상적인 치아 배열, 서구형 질환의 증가 등 다양한 신체적 부담이 함께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턱은 작아지고 치아는 삐뚤삐뚤… 원인은 무른 음식
최근 소아치과 현장에서는 아이들 사이에 턱뼈가 작아지는 현상이 뚜렷하다고 말한다. 이는 서구화된 식습관, 즉 너무 부드러운 음식 위주의 식습관 영향이 크다. 드림분당예치과병원(소아치과) 전승준 원장은 "햄버거나 가공식품처럼 씹지 않아도 삼킬 수 있는 음식을 어릴 때부터 자주 먹다 보니 턱뼈가 제대로 자라지 않는다"며 "턱이 작아지면 치아가 날 공간이 부족해 울퉁불퉁하게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식단에 포함된 나물이나 잡곡밥처럼 잘 씹어야 하는 음식은 턱 성장에 자극을 주지만, 요즘 식사는 턱의 기능을 거의 쓰지 않도록 변화했다는 것이다.

턱은 단순히 얼굴의 외형을 결정하는 부위가 아니다. 치아 배열과 저작 기능, 심지어 비강 구조와 호흡 패턴에도 영향을 준다. 전 원장은 "턱이 작아지면 치아가 가지런히 자리 잡지 못해 칫솔질이 어려워지고, 그럼 충치나 치주 질환 가능성도 커진다"며 "성인이 됐을 때 잇몸이 망가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또, 위턱이 좁은 아이들은 코가 막혀 입으로 호흡하는 습관이 생기기 쉽고, 이는 얼굴 변형까지 유발할 수 있다.


◇영양 상태는 개선됐지만, 면역 질환과 비만이 걱정
아이들의 체형 변화는 실제 통계로도 확인된다. 지난 2022년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발표한 ‘제8차 한국인 인체치수 조사’에 따르면, 키 대비 다리 길이 비율이 2004년보다 증가했다. 남성은 43.7%에서 45.3%, 여성은 44.4%에서 45.8%로 늘어났다. 가천대길병원 소아청소년과 류일 교수는 “이는 전반적인 영양 상태 개선의 결과”라고 말한다. 과거에 비해 먹을 것이 풍부해지고, 쌀 대신 육류와 유제품 위주의 서양식 식습관이 자리 잡은 영향이라는 것이다.

다만, 체형이 좋아졌다고 해서 건강까지 보장되는 건 아니다. 류 교수는 "동시에 자가면역질환, 성조숙증, 비만 같은 서양에서 자주 나타나는 질환도 확연히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같은 만성 장질환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는 과거 한국에서 드물게 보였던 질환들이며, 서구식 식습관과 관련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잘 씹고 움직이는 습관 들여야
서구화된 외모 뒤에 가려진 건강 문제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아이들의 체형 변화는 단순히 ‘외형의 발전’으로만 볼 수 없다. 겉모습은 달라졌지만, 그에 따른 건강 문제를 예방하려면 생활습관부터 점검해야 한다. 전 원장은 “평소 많이 씹는 식습관을 들이는 것이 턱 성장과 얼굴 균형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에 따라 치과에서 턱 확장 장치를 이용한 조기 교정이 필요한 경우도 있는데, 특히 비염이나 입으로 호흡하는 아이들에겐 코 기도를 넓혀주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일 교수 역시 "지금 아이들의 환경은 신체 활동이 부족하다"며 “인스턴트 섭취를 줄이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이고 운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