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장애를 예술로 풀어낸 전시, ‘당신의 잠’ 함정민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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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잠’ 함정민 작가가 전시를 준비하게 된 계기를 말하고 있다​./사진=국립정신건강센터 제공
'잠은 최고의 보약'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수면은 우리의 신체 건강은 물론, 정신과 인지 기능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현재 국내 불면증 환자는 약 70만 명에 이른다(건강보험심사원 통계). 밤에 남들처럼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고통과 불안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많다는 뜻이다. 그중 한 명이었던 한 작가가 '잠'이라는 주제로 작품을 선보인 전시가 있다. 국립정신건강센터가 주최한 '당신의 잠' 전시에는 수면장애를 극복한 당사자이자 예술가인 함정민 작가(23)의 경험과 내면이 담긴 작품들이 놓여있다. "잠들지 못하는 모든 이들이 편안한 잠을 자면 좋겠다"는 함 작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시를 준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과거 불면증으로 잠을 거의 이루지 못해 힘든 시기가 있었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했고, 인간관계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 머릿속을 가득 채워 밤을 지새우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잠을 잘 잔다. 하루에 8시간은 잔다. 그래서 저와 같이 수면 문제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자 전시를 시작하게 됐다."

-‘당신의 잠’이라는 전시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 
"주변에는 여전히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이들에게 ‘당신도 잘 잘 수 있다. 당신의 잠을 응원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어떤 과정이 있을지는 는 모르지만, 결국은 편안한 잠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을 담아 ‘당신의 잠’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됐다."


-수면과 정신건강이라는 주제를 예술로 표현한 이유는 무엇인가?
"수면장애를 겪는 동안 ‘내가 이상한 건 아닐까’라는 자책을 반복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잠을 못 자는 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이런 감정의 과정을 억누르기보다는, 그대로 작품에 담아내는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게 되었고, 그런 과정을 작품으로 남기니 헛된 시간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볼 때 잠을 못 자는 것이 잘못된 게 아니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이런 생각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왔는데, 큰 작품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아 조금씩 준비해온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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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민 작가가 그린 '감정의 케렌시아'. 케렌시아란 투우소가 투우 경기 중 잠시 쉬어가는 장소를 일컫는다./사진=신소영 기자
-경험을 토대로 작품을 구성했다던데. 개인적으로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이 있다면 소개 부탁한다.
"‘감정의 케렌시아’라는 작품에 가장 애착이 간다. 수면장애가 가장 심했던 2019년에 그린 그림으로, 제일 오랫동안 공들여 그리기도 했다. 그 당시에 꿈이랑 현실이랑 분간이 안 될 정도로 몽롱하게 지냈었다. 작품에서도 꿈과 현실의 경계를 흐리게 하고 강렬한 색감을 사용해 이를 표현하고자 했다. 그리는 과정이 스스로 감정을 정리하고 되돌아보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그림 한가운데에는 아주 작게 자신을 그려 넣었는데, 이는 ‘언젠가는 편안히 잠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담아 새로운 미래를 향해 걸어나가는 모습이다."

-수면장애 극복에 도움이 된 방법이 있다면?
"6년 정도 병원에서 수면장애 치료를 받았다. 그중에서도 호흡법이 큰 도움이 됐다. ‘해파리’와 ‘민들레’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있는데, 이는 치료 중에 배운 호흡 기법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해파리는 침대에 누워 온몸에 힘을 빼고 '나는 잔잔한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해파리다'하면서 깊은 호흡을 하는 방식이다. 걱정을 하나씩 바다에 흘려보낸다는 상상을 통해 마음을 가라앉혔다. 생각이 많거나 더 감정적일 땐 민들레를 생각했다. 민들레 한 송이마다 고민을 담아, 크게 숨을 들이마시면서 배가 볼록해질 때까지 공기를 채우고, 내쉴 때는 모든 걸 다 뱉어낸다는 느낌으로 부는 거다. 고민을 함께 흘려보내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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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정민 작가의 경험이 담긴 작품. (좌)'해파리도 잠을 잘까', (우)'민들레 후후'​./사진=신소영 기자
-‘편안한 잠’이란 어떤 의미인가?
"알람 없이 밖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자연스럽게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창밖의 아침 햇살을 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럴 때 '내가 잘 잤구나'하는 확신이 들고, 개운하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최근 실천하고 있는 루틴이 있다면 소개해달라.
"바로 불을 끄면 잠들기 어려워서, 먼저 무드등을 켜놓고 책을 읽는다. 보통 책을 한 번 펼치면 끝까지 보고 싶어서, 단편집을 자주 보는 편이다. 한 챕터를 읽고 나면 그림일기를 그린다. 매일 하루를 그림으로 요약하며 감정을 정리한 뒤, 천천히 호흡하며 조명을 끄고 잠에 든다. 이 루틴이 편안한 수면을 돕는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 중인 작업이나 관심 있는 주제가 있나?
"‘감정의 케렌시아’처럼, 다른 사람들의 케렌시아도 그려보고 싶다. 다양한 색깔을 통해 많은 사람의 감정과 생각들, 안식처를 기록하는 것이다. 또한 ‘먹는 입’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준비 중이다. 입을 통해 음식을 먹기도 하지만, 말로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위로를 건네는 역할도 한다. 이러한 ‘입’의 의미와 무게감을 중심으로 작업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수면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과 전시 관람객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과거에는 아침을 싫어했다. 밤새 뒤척이다가 해가 뜨면 겨우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침을 좋아한다. 맑은 공기, 새소리, 출근하거나 러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내가 해냈구나’하면서 스스로 자랑스러운 마음도 든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는 이들의 아픔의 크기를 감히 다 알 수는 없지만, 진심으로 전하고 싶다. 좋은 꿈 꾸시고, 좋은 잠 주무시길 바란다. 당신의 잠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