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신장암 신약, 급여 문턱 낮춰야"… 의료진·환우회 한목소리

정준엽 기자

입센코리아 '세계 신장암의 날 기념 미디어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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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박인근 교수/사진=정준엽 기자
"신장암 치료법은 이전에 비하면 천지개벽 정도로 많이 좋아졌지만, 여건상 약제 선택에 아직 많은 제한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치료법의 발전에 맞춰 최선의 치료를 할 수 있는 의료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박인근 교수는 17일 서울 중구 모임공간 상연재에서 열린 '세계 신장암의 날 기념 미디어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여러 좋은 신장암 치료제가 등장하고 이에 맞춰 국제 치료 지침도 변화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의약품 급여 제도가 국제 권고안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날 행사에서는 박인근 교수가 신장암 치료의 최신 동향·미충족 수요에 대해 발표했으며, 한국신장암환우회 백진영 대표가 실제 환자들과 가족들이 느끼는 어려움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국내 급여 기준, 국제 치료 지침 반영 못해"
흔히 '신장암'이라고 부르는 암은 신세포암을 의미한다. 신세포암은 2022년 우리나라 전체 신장암 발생건수(6963건) 중 92.4%(6434건)를 차지한다. 초기 환자들은 대부분 증상이 없으며, 옆구리 통증·혈뇨·만져지는 종괴 등 증상이 뚜렷할 때는 이미 중증 단계일 가능성이 크다. 신세포암의 일종인 '폰히펠-린다우병(VHL)'처럼 가족력 등 유전적 요인으로 발생하는 사례도 전체의 4~5%를 차지한다.

이날 박인근 교수가 강조한 신세포암 치료 환경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나라 급여 제도가 국제 규제기관의 치료 권고안을 적절하게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전체 신세포암의 80~85%를 차지하는 '투명세포암'을 예로 들면, 미국암종합네트워크(NCCN), 유럽종양학회(ESMO) 등 주요 국제기관에서는 1차 치료로 면역항암제 2종 병용요법 또는 면역항암제·표적항암제 병용요법을 권고하고 있다. 2차 치료로는 1차 치료에 사용하지 않은 약 중 효과가 입증된 약을 적절히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에서 투명세포암 환자가 1차 치료에 고려할 수 있는 병용요법은 '옵디보(성분명 니볼루맙)'·'여보이(성분명 이필리무맙)' 병용요법이 전부다. '아바스틴(성분명 베바시주맙)'과 인터페론 알파 계열 약물을 병용하는 방법도 있으나, 이 경우 아바스틴은 약값 전액을 환자가 부담해야 한다. 그 외 선택지로는 '수텐(성분명 수니티닙)', '보트리엔트(성분명 파조파닙)', '프로류킨(성분명 알데스류킨)' 등 표적항암제가 있다.

그나마 가장 효과가 확실한 옵디보·여보이 병용요법을 사용 후 치료에 실패하면 2차 치료로 표적항암제 '카보메틱스(성분명 카보잔타닙)'를 사용해볼 수 있으나, 이 경우 급여의 장벽에 또다시 걸린다. 급여 대상에 '표적항암제 치료에 실패한 경우'라고 조건을 결어놨기 때문이다. 1차 치료로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을 선택한 환자가 2차 치료로 카보메틱스를 쓰기 위해서는 약값 전액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이는 급여를 심사할 때 임상시험 데이터를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 점과 관련이 있다. 카보메틱스가 최초 허가·급여를 받을 당시 면역항암제는 아직 도입되지 않아 임상시험에서 사용할 수 없었다. 당시 임상시험에서는 1차 치료로 표적항암제 단독요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급여를 심사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면역항암제를 1차 치료로 사용한 데이터가 없으니 쉽게 급여 조건을 바꾸지 못하는 것이다.

이론상 제약사가 면역항암제를 1차 치료로 사용한 임상시험을 다시 실시해 데이터를 확보해야 하나, 임상시험을 한 번 진행하는 데 수백억원 규모의 비용이 드는 것을 감안하면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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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한국신장암환우회 백진영 대표, 입센코리아 심정환 전무/사진=정준엽 기자
전체 신세포암의 10~15%에 불과한 비투명세포암 환자들은 더 열악하다. 이들이 급여로 고려할 수 있는 약제는 수텐, 보트리엔트, 프로류킨, 토리셀(성분명 템시롤리무스)이 전부다. 이 중 토리셀은 미국·유럽 규제기관 가이드라인 중 어느 곳에서도 더 이상 권고하지 않는 약이다.

박인근 교수는 "약물을 쓰는 의사 입장에서, 신세포암은 약이 아무리 개발됐더라도 아쉬운 게 많은 암종"이라며 "특히나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약을 못 쓰는 환자가 많아 상황을 설명하기도 참 미안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환우회 "환자 선택지 더 넓어져야"
환우회도 치료 환경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백진영 대표는 "신약이 많이 나오고, 암 치료에 많은 변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급여 조건이 예전 기준에만 머물러 있다"며 "특히 카보메틱스는 최근 비투명 신세포암에 대해 중증암질환심의위원회(암질심)에서 탈락했다"고 말했다.


이어 백 대표는 "치료제 선택권이 더 넓어야 주치의가 환자에게 더 효과적인 약을 쓸 수 있다"며 "환자의 선택지를 넓히기 위해 정부와 제약사가 좀 더 유연하게 협의해 좋은 약을 빨리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입센코리아 또한 카보메틱스의 급여 확대 상황을 공유했다. 카보메틱스는 면역항암제 병용요법 이후 2차 치료로 작년 5월 암질심을 통과했고, 지난 2월에는 약제급여평가위원회(약평위)의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지난 4월부터 시작된 국민건강보험공단과의 약가 협상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협상이 결렬된 상태다.

입센코리아 항암제·희귀질환 사업부 심정환 전무는 "협상이 한 차례 결렬된 상황에서 최대한 빨리 다시 급여 절차를 밟고 있다"며 "보험 재정 영향을 최소화하면서도 많은 환자들이 급여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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