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자살 생각은 '무시무시한 문지기'… 내면엔 긍정의 힘 가득할 수도 ​

송유진 강원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조교수

[당신의 오늘이 안녕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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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22년 개봉했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보셨나요? 저는 이 영화가 우울과 불안을 새로운 희망으로 바꾸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느꼈습니다. 영화 제목을 직역하면 "모든 것, 모든 곳, 한꺼번에"인데, 영화 제목으로서는 길고 난해해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주인공이 일상을 잠시 멈추고 떠난 모험에서 모든 곳에 존재하는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최악의 상황을 한꺼번에 반전시켜버리는 통쾌한 '영웅 드라마'로서 이 만큼 훌륭한 제목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도입부에 주인공 에블린은 완전히 지친 상태로 기계처럼 일만 하며 삽니다. 빨래방을 찾는 손님들과의 사사로운 마찰과 복잡한 세무조사로 신경쓸 게 너무 많습니다. 기한 내에 처리해야 하는 서류들, 매일 반복되는 정신 없는 일상…. 에블린은 점점 예민해지고 치매 아버지와 사춘기 딸, 무능한 남편에게 매일 잔소리와 화만 냅니다.

그러다 우연히 수많은 우주, 멀티버스 안에서 선택의 순간마다 다른 선택을 했던 수천, 수만의 자신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자신은 그중 가장 잘못된 선택만을 반복해서 가장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영화는 오히려 그런 에블린의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비춰줍니다. 더 이상 실패할 것도 없기 때문에 오히려 새로운 도전을 해볼 수 있고, '버스 점프'를 통해 만나는 모든 자신으로부터 좋은 능력을 빌려 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역설적이게도 가장 실패했다고 생각한 에블린은 스스로가 세상을 구할 유일한 희망이 됩니다.

영화에서 '버스 점프'란 위기의 순간에 가장 엉뚱하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씹던 껌을 책상에 붙였다가 떼서 다시 씹기, 립밤을 바르지 않고 삼키기, 신발을 그대로 신지 않고 양쪽을 바꿔 신기 등…. 에블린은 적이 공격해오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오히려 버스 점프를 해야만 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위기에 대처해도 모자를 시간에 엉뚱한 행동에 집중을 하라니! 이것 역시도 굉장히 역설적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흰곰 효과(White bear effect)'라고 하는 아주 중요한 무의식적 현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무의식은 우리의 의식적인 사고와 인식에 드러나지 않지만 행동과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정신적 활동을 말합니다. 그 정확한 실체는 아무도 알 수 없겠지만, 분명한 무의식의 특성 중 하나는 '역설적이고 모순적'이라는 것입니다. 왜 모순적인 특성을 갖는지는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아마도 의식적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범주의 바깥에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과학자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미지의 것, 우주적이고 초월적인 어떤 대상을 경험하면 과학의 눈으로 정밀하게 파헤치다가도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신앙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지요. 과학과 종교라니, 평행선을 걸을 것만 같은 두 개의 주제가 한 사람의 마음 속에는 똑같은 비중으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비단 과학과 종교만이 아닙니다. 모든 양립 불가능해 보이는 대립적인 생각은 사람 마음 안에서 어떤 시기에, 어떤 이유에서 정확하게 반으로 배열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때로 반으로 나뉜 그 사람을 심적으로 괴롭고 우울하게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자살 생각도 비슷합니다. 일반적으로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을 때 자살에 대한 생각도 따라옵니다. 따라서 한 번도 자살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도 우울증이 심각한 수준일 때는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할 수가 있고, 이런 경우 약물치료가 매우 효과적으로 자살 생각을 없애줍니다. 하지만 어떤 종류의 자살 생각은 증상과 무관하게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오랜 기간 지속되고 약물 치료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런 종류의 자살 생각은 우울증에서 비롯된 증상과는 조금 다르지요. 제 생각에는 어떤 두 개의 생각이 정확히 반으로 나뉘어져 있는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있는데, 그 생각이 뭐인지는 무의식 속에 있어 전혀 알 수가 없고, 의식적으로는 '자살 생각으로만 표현되는 상태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자살 생각은, 조심스럽지만, 더 깊은 자기 안의 무의식적인 갈등을 품고 있는 '겉보기 생각'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어떤 이유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음 속 갈등이 바깥으로 새나가지 못하도록 꽁꽁 감싼 가시갑옷, 혹은 무시무시한 저승의 케르베로스 같은 문지기가 그 앞을 지키고 있는 것이지요. 자살 생각은 다루기 매우 어렵습니다. '자살 생각은 나쁘다.


절대 생각조차 하면 안 된다'고 여기면 흰곰 효과의 역설 때문에 생각이 더 나게 되고, 그렇다고 해서 자살 생각을 계속 가지고 살아 가자니 삶이 괴롭고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은 죄책감에 빠지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자살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는 더 모순적이고 해결 불가능인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자살 생각이 완전히 사라지거나, 아니면 내가 사라지거나, 두 가지 선택지 말고는 답이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살 생각은 다른 더 깊은 내면으로 향하는 것을 방해하는 일종의 '무시무시한' 문지기입니다. 그 생각 너머에는 자신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내면의 풍경이 펼쳐져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오히려 생명과 삶에 대한 다른 생각들이 들어있을지도요. 어쩌면 또 다른 괴로운 관문이 그 뒤에 또 있을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든 한 번은 통과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전보다는 좀더 쉬운 관문이 될지도요. 중요한 것은 자살 생각은 진짜 자기가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기를 방해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면 이 문지기는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요?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상황의 전환은 예상하지 못한 순간 엉뚱한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진료실 안에서도 가끔은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이분법적이고 명료해 보이는 선택지에 대해 이야기하던 분들이 세션이 진행되면서 문득 제3의 길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한 번의 상담으로 그렇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지요. 그러나 극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분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주 치열한 진심으로 자기를 돌아보고 자살 생각에 대해서도 치열하게 맞서 고민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정말 '우연히' 상황이 반전됩니다. 진료실에 방문해서 마음의 재료들을 꺼내 놓고 치료자와 함께 치열하게 자신에 대해 고민하다보면 문득 스스로 안에서 '버스 점프'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융학파 분석가이자 미국 정신과 의사인 데이비드 로젠(David Rosen)은 자살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자아 죽이기를 제안합니다. 자아(ego) 죽이기란 이전에 가지고 있던 자신과 인생에 대한 관점을 죽이는 대신, 자기(self)를 살리는 것입니다. 즉, 상징적인 방식으로 자신이 고수했던 태도, 생각, 가치관 등이 죽고 나면, 죽음으로 향했던 에너지가 창조적인 힘으로 변환돼 다시 삶으로 흘러들어 온다는 것입니다. 즉, 그러한 종류의 자살은 '죽음'이 아니라 '부활'인 셈입니다.

가끔, 아주 오랫동안 자살에 대해 생각하며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환자들이 저에게 "상담을 계속 받고 나서도 죽고 싶다는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죠?"라고 묻습니다. 저는 그분들께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 치료자와 '함께' 그 생각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고 부딪쳐 간다면, 반드시 전환점을 찾게 될 것이라고요.

[본 자살 예방 캠페인은 보건복지부 및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대한정신건강재단·헬스조선이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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