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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규모의 의약품 시장을 보유한 미국의 평균 약가는 우리나라의 약 3배다./그래픽=최우연
내년 국내 제약 산업에 성장과 압박 요인이 공존하는 가운데, 해외 수출을 비롯한 연구개발(R&D) 성과가 실적 차별화를 결정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김수민 수석 애널리스트는 16일 발간한 '제약: 연구개발 성과, 제약사 실적의 Key'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내년 제약 산업 전망에 대해 중립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내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을 앞둔 가운데 의약품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가능성이 크나, 약가 규제로 인해 수익성에는 제한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초고령사회 진입, 의약품 수요 성장 기회
통계청이 지난 9월 발표한 '2024 고령자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자 인구는 약 993만8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19.2%를 차지한다. 또 10월 말 기준 고령자의 비율은 19.8%까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내년 중 20%를 돌파해 초고령사회로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신용평가는 이러한 인구 고령화가 제약 산업 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노인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1인당 연간 진료비와 고령자 인구 진료비의 증가가 예상돼서다. 특히 작년 고령자의 1인당 연간 진료비는 약 500만원으로, 최근 5년간 평균 8.1%의 증가율을 기록했다. ▲고혈압 ▲관절염 ▲정신·행동장애 ▲당뇨병 ▲신경계 질환 등 주요 만성질환의 진료 인원 또한 2022년 기준 2000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나타났다.

김수민 애널리스트는 "주요 만성질환의 진료 인원과 진료비용도 증가세에 있다"며 "노인 인구 증가와 1인당 진료비 상승 추세, 만성질환 진료 인원 증가는 의약품 수요 성장 지지 요인"이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고령화 추세와 만성질환자 증가 등을 고려할 때, 2025년에도 의약품 수요 성장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약가 규제, 수익성 장애물 될 가능성
반면, 약가 규제 기조는 제약사들의 수익성에 제약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초고령사회 진입을 앞둔 가운데 건강보험 재정의 부담이 증가할 위험이 있기 때문. 실제로 건강보험 재정은 연간 11조원 규모의 국고지원금을 제외하면 적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으며, 내년 초고령사회 진입으로 인해 재정 부담이 증가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에 정부는 건강보험 약품비 부담을 덜기 위해 약가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특히 제네릭(복제약)의 난립을 막기 위한 규제 제도들의 시행은 제네릭 개발에 주력하는 중소 제약기업의 수익성과 성장성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고 짚었다. 1+3 공동생동 제도와 기등제 약제 요건 충족 여부 재평가 제도가 대표적이다. 1+3 공동생동이란 생동성시험을 진행한 제약 회사 한 곳당 3개의 위탁 제약사까지만 등록을 할 수 있는 제도로, 제네릭 개발 전문 중소 제약기업들을 주요 규제 대상으로 삼는다. 기등재 약제 요건 충족 여부 재평가 제도 또한 제네릭 전문 제약사가 주요 규제 대상이며, 2020년 7월 이전 급여 등재된 제네릭에 대해 생동성시험 수행, 등록된 원료의약품 사용 등 조건 충족 여부에 따라 각각 약가를 15%·27.75% 인하하는 것이 골자다.

제네릭 전문 중소기업의 위축은 실제 데이터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올해 국내 70% 이상의 대형 제약사가 영업이익이 증가한 반면, 중소 제약사의 경우 54%가 영업이익 감소 또는 적자 전환·지속을 경험했다.

◇"제약사 사업경쟁력, 해외시장 진출·R&D가 좌우“
이처럼 의약품 수요 증가의 기회가 엿보이면서도 약가 인하로 인한 압박이 예상되는 가운데, 한국신용평가는 국내 제약사들이 사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함께 제시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이오시밀러 개발을 통한 해외 시장 진출이다. 미국·유럽을 비롯한 해외 제약시장은 높은 약가와 큰 규모를 갖추고 있어 매력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예를 들어 세계 1위 규모의 의약품 시장을 보유한 미국의 평균 약가는 우리나라의 약 3배다. 오리지널 의약품(최초로 개발돼 특허를 보유한 의약품)에 한정할 경우 약가는 5배 정도에 달한다. 제약시장 규모로 넓혀 살펴봐도 유사한 경향을 보인다. 미국의 제약시장 규모는 4000억달러(한화 약 575조원) 이상이며, 2위인 중국과 비교하더라도 두 배 이상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제약시장 규모는 일본과 영국, 캐나다뿐만 아니라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등 유럽연합 국가들의 뒤를 이은 전 세계 12위다.

그동안은 임상시험 비용 부담과 신약 개발의 불확실성 등의 위험이 공존하고 있어 해외 진출이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금력이 풍부한 대기업 계열사를 중심으로 허가 실패 위험이 다소 낮은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해 해외 시장에 직접 진출 사례가 증가했다. 예를 들어 SK바이오팜은 2020년 뇌전증 치료제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를 미국 시장에 출시했으며, 미국에서 올해 3분기 기준 3000억원 이상의 누적 매출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삼성바이오에피스와 셀트리온은 미국·유럽에서 여러 바이오시밀러의 승인을 획득하며 수출 성과를 올렸다. 이외에도 대웅제약은 보툴리눔 톡신 '나보타'가 올 3분기 미국에서 약 26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의 판매 호조 성과를 거뒀다.

김수민 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국내 제약사의 해외 진출 성공사례가 증가하고 있고, 미국 약가 인하 등 바이오시밀러에 우호적인 여건이 조성되면서 해외 진출 시도 또한 증가할 전망"이라며 "해외 진출 등 연구개발 성과는 실적 차별화 요인에 해당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