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질환
내 손인데 왜 제멋대로 움직이지? 양손 따로 노는 병…
임민영 기자
입력 2024/07/26 07:15
[세상에 이런 병이?]
우리 몸은 우리가 의식하기도 전에 행동을 조절한다. 단추를 잠그거나 문을 닫는 등의 단순한 행위부터, 바느질 같은 복잡한 행위까지 모든 행동에는 ‘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외계인 손 증후군(Alien Hand Syndrome)’을 가진 사람들은 한쪽 손이 제멋대로 움직여서 고민이다. 외계인 손 증후군이 무엇인지 알아봤다.
외계인 손 증후군은 한쪽 손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여 조절·통제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 증후군은 드문 신경학적 증상 증후군으로, 뇌경색이나 뇌출혈 등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에 병변이 발생해 양쪽 뇌를 연결해주는 기능이 떨어지면 외계인 손 증후군이 나타난다고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이 부위에 보조 운동 영역이 있어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추정한다. 같은 이유로 뇌전증 환자가 수술 과정에서 뇌량을 절제하게 되면 좌뇌와 우뇌가 분할돼 외계인 손 증후군을 겪을 수 있다. 이외에도 행동, 운동 등을 담당하는 전두엽에 이상이 생겼을 때 외계인 손 증후군이 발생하기도 한다.
외계인 손 증후군은 한쪽 손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움직이려 할 때 움직이지 않거나 다른 행동을 하게 된다. 대부분 무의미한 동작을 반복하기보다 마치 목적성을 지닌 것 같은 움직임을 보일 때가 많다. 심지어 정상적인 손의 움직임을 방해하거나 자신의 몸을 꼬집는 등 공격적인 행동을 보일 수도 있다. 이런 모습 때문에 마치 외계인의 손 같다고 여겨 ‘외계인 손 증후군’으로 불리게 됐다.
외계인 손 증후군 환자들은 양손이 모두 필요한 행동을 할 때 증상이 나타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오른손으로 단추를 잠그면 왼손이 단추를 풀거나, 오른손이 옷장에서 옷을 꺼내면 왼손이 옷을 다시 옷장에 걸어놓는 식이다. 증상이 발생하는 손도 다를 수 있다. 좌뇌가 더 발달한 오른손잡이는 왼손이, 왼손잡이는 오른손이 주로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인다. 전두엽 이상에 의해 증상이 생긴 경우에는 손의 움직임이 억제되지 않고, 영유아처럼 한 번 잡은 물건을 놓지 않으려 한다. 드물게 한쪽 손이 자신의 목을 조르거나 남을 공격하는 등의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외계인 손 증후군은 뚜렷한 치료법이 없다. 뇌졸중으로 인해 한쪽 손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경우 급성기를 지나면 증상이 완화되기도 한다. 좌뇌와 우뇌 연결이 끊어졌지만, 다른 경로로 각 뇌에 정보가 전달되면 증상을 보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외계인 손 증후군은 발병 원인 질환에 따라 증상이 악화하거나 인지기능장애가 동반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증상을 완화하려면 원인 질환을 치료하는 게 우선이다. 외계인 손 증후군은 정확한 완치법이 없지만, 전문가 상담과 꾸준한 관리를 진행하면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지장이 없다.
외계인 손 증후군은 독일 출생의 미국 신경학자 쿠르트 골드슈타인이 1908년에 처음 보고했다. 골드슈타인의 보고에 따르면 한 57세 여성은 뇌출혈을 겪은 뒤, 왼손이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계인 손 증후군은 1964년에 개봉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속 등장인물이 앓고 있는 질환으로 소개돼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외계인 손 증후군은 매우 희귀해 구체적인 발병률이나 환자 수가 집계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