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화된 가이드라인, 1대1 맞춤 처방 아냐
타일러라? 부모와 감정 충돌이 심리 회복력 길러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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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 조언 방송에 나오는 전문가 조언은 '보편적으로 맞는 조언'이므로, 시도 후 차도가 없다해서 절망할 필요가 없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금쪽같은 내 새끼' '금쪽상담소' 등…. 요즘 '핫한'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등장해 정신건강과 관련한 조언을 해주는 '심리 조언 예능'이 인기다. 그런데 TV에 나온 조언을 따라 해봐도 효과가 미미하거나 도리어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TV 속 상황과 우리 가족의 상황, 엄연히 달라
우선 방송 속 상황과 우리의 상황이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전문가는 TV에 보여지는 내담자의 행동만 보고 조언하는 것이 아니다. 행동 이면에 있는 심리 상태는 물론이고, 개인 삶의 내력이나 가족의 역사까지 파고든다. 이런 내막을 프로그램이 다 담을 수는 없다. 그것을 알지 못한 채 프로그램 속 상황을 자기 가족의 상황과 완전히 동일시하는 건 섣부른 판단이다. 명지대 아동학과 한유진 교수는 “전문가는 내담자의 삶을 다양한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검토한 후에야 조언하지만, 방송에 이 과정이 다 담기진 않는다”며 “조언에 밑거름된 전체 맥락을 알지 못한 채, 결과물로서의 조언만 모방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말했다.

ADHD나 우울증 등 정신질환에 대한 조언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적합한 해법이 나에겐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겉보기엔 같은 증상이라도 개인의 성향 및 인생 경험에 따라 해결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대 심리학부 허지원 교수는 “방송에 나오는 전문가 조언은 ‘표준화된 가이드라인’이지, 시청자 개개인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1대1 맞춤 처방이 아니다”라며 “일반적으로 맞는 조언이라도, 상황의 개인차 때문에 나에겐 맞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방송에 나온 조언을 따라 해서 효과가 없다고 낙담하는 것은 금물이다. 허지원 교수는 “방송에 나오는 조언으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 해서 다른 대책을 찾아보길 단념해선 안 된다”며 “나 자신, 또는 우리 가족에게 또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완벽한 부모' 돼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아이가 커가며 자연스럽게 흘러갔을 사건도 육아 조언 예능의 프레임을 거치며 문제시되는 경향도 있다. 허지원 교수는 “방송이 특정 행동을 하는 아동을 ‘문제 아동’으로 조명하는 순간,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비슷한 행동을 하면 아이를 교정해야 한다는 편견에 빠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송에 나오는 전문가들도 강조하듯, 아이들의 모난 부분은 대부분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둥글게 다듬어진다.

육아 조언 프로그램이 만들어낸 ‘바람직한 부모상’을 꼭 따라야 할 필요도 없다. 부모가 자신을 방송 속 전문가와 과도하게 동일시하면 안 된다는 뜻이다. 방송에 나오는 전문가는 상황을 제3자로서 관찰하고 객관적 진단을 내려야 한다. 시종일관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는 게 당연하다. 반면 부모는 아이와 직접 소통하며 화를 내고 싸우는 입장이다. 애초에 제3자가 아닐뿐더러 갈등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도 어렵다.

허지원 교수는 “요즘은 양육자들이 아이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걸 터부시하고, 화가 나도 조곤조곤 타일러야 한다는 강박을 느낀다”며 “그러나 부모와 싸웠다가 잘 화해하기만 하면, 감정적 충돌은 오히려 아이의 심리적 회복력을 길러준다”고 강조했다. 육아는 장기전이다. 부모 역시 감정이 있는 인간임을 인정하고, 아이와의 갈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지치지 않을 수 있다.

◇전문가 도움 찾는 부모 많아져… 분명한 순기능
한편, 육아 조언 프로그램엔 분명 순기능이 있다. 부모 교육을 받을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TV 속 전문가를 통해 기본적 이론 수준의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서다. 부모의 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길 꺼리지 않게 됐다는 장점도 있다. 허지원 교수는 “전문가가 육아 예능에 등장한 뒤부터 부모들이 소아정신과나 심리상담소를 찾는 데에 거부감을 덜 느끼게 됐다”며 “자신이 찾아간 곳이 정말 전문성 있는 기관인지 판별하는 안목을 기르는 데도 육아 조언 방송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