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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다이어트라고? ‘섭식장애’일 수도" [헬스조선 명의]
신은진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21/08/30 08:00
'헬스조선 명의톡톡' 명의 인터뷰
'섭식장애 명의'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율리 교수
코로나19 팬데믹 가운데서도 각종 다이어트, 보디 프로필 촬영이 유행하고 있다. 마르고 날씬한 몸을 자랑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동시에 비정상적인 식습관을 가진 사람도 늘었다. 날씬해야 한다며 음식을 먹고 나면 구토를 하고, 몸이 아파도 운동은 어떻게든 하며, 일상생활이 어려운 정도의 저체중인데도 '프로아나'라며 자랑을 한다. 이는 절대 정상적이지 않은 섭식장애의 모습이지만, 주변에서 드물지 않게 보인다. 섭식장애를 심한 다이어트 정도로 생각할 수가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섭식장애는 몸과 마음에 큰 영향을 주는 질환이다. 섭식장애와 섭식장애의 극복 방법을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율리 교수에게 들어봤다.
-섭식장애는 어떤 질환인가?
섭식장애란 체중에 대한 집착이 특징인 질환이다. 섭식장애는 스펙트럼이 넓은데, 전반적으로 체중조절을 위한 부정적인 행동이 나타나고, 신체적·정신적 건강훼손이 나타나는 게 이 질환의 특징이다. 크게는 일명 '거식증'이라 불리는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식욕 통제를 하지 못하는 '신경성 폭식장애'로 구분한다. 신경성 식욕부진증에 가까울수록 식욕을 극단적으로 억제하고, 신경성 폭식장애에 가까울수록 식욕을 통제하지 못한다. 폭식과 구토, 하제남용 등 보상행동을 반복하는 폭식장애, 보상행동은 없지만, 폭식을 반복하는 폭식장애, 섭식문제가 두드러지는 비만, 회피제한적 섭식장애, 이식증 등도 모두 섭식장애에 속한다.
거식증부터 폭식증까지 섭식장애 환자는 공통으로 신체에 대한 불만족, 신체상 왜곡 증상이 있다. 이 때문에 이상 식습관과 체중조절에 대한 강박감이 생긴다.
-엄격한 다이어트와 섭식장애가 다른가?
섭식장애의 대표격인 거식증과 폭식증 모두 다이어트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지만, 다이어트와는 다른 질환이다. 이들은 정상적인 생활과 체중을 거부한다. 심각한 수준으로 체중을 감량해도 섭식장애, 특히 거식증은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하고 체중을 더 줄여야 한다고만 생각한다. 이로 인해 대인관계, 사회적 적응, 정서문제 등 삶 전반이 영향을 받는 게 섭식장애와 다이어트와 가장 큰 차이다.
사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섭식장애를 숨기는 경우가 많다. 지나치게 건강한 식사에 집착하는 '오소렉시아', 특이한 식습관, 운동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운동 강박 등도 섭식장애에 포함된다.
-겉모습만으로 섭식장애 환자를 구별할 수 있나?
음식 앞에서의 태도로 알 수 있다. 섭식장애가 있으면 음식 앞에서 굉장히 불안정해지고 긴장한다. 신체에 대한 인식으로도 파악할 수 있다. 섭식장애 환자는 같은 외모도 다르게 인지하는 신체상 왜곡 증상이 있기 때문이다.
신경성 식욕부진이 있는 환자는 전반적으로 강박적인 성향을 보이고 불안정도가 높으며, 신경성 폭식이 있는 환자는 충동조절이 안 되고 중독에 취약한 경향을 보인다는 특징도 있다.
-섭식장애 환자가 다른 정신과 질환도 있는 경우가 많은지?
많다. 섭식장애 환자 대부분은 우울증, 불안계통 장애를 동반하고 있다. 신경성 식욕부진, 즉 거식증 환자들은 강박장애, 회피성 성격장애를, 신경성 폭식증환자들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계통 정신질환을 동반한 경우가 많다. 특히 신경성 폭식증은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성장과정에서 방임되거나 트라우마가 있는 경우가 많다.
-섭식장애는 재발이 쉬운 질환으로도 알려졌다. 정신질환 때문인가?
저영양과 영양 불균형으로 인해 뇌 기능 저하가 생겨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거식증 환자의 경우, 필연적으로 저체중이 동반되는데 이는 영양이 극단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신경전달물질을 생성하기 위해선 아미노산(amino acid)과 지방산(fatty acid)이 필요한데, 필수아미노산과 필수지방산은 반드시 음식을 통해서만 섭취해야 한다.
그런데 거식증 환자는 음식을 극단적으로 제한해 비타민, 미네랄 등 필수 영양소조차 섭취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뇌 성장과 활동을 위한 신경전달물질을 만들어낼 수 없어,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못한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정상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뇌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상황을 조망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기능인데 극단적 기아상태일 때는 이러한 기능이 정상적으로 발휘되지 않는다.
뇌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기에 거식증 환자는 어떤 상황에서 스트레스에 직면하면, 자신을 확인하는 수단으로 굶기를 선택한다. 이렇게 되면 기아상태가 되어 방어능력과 뇌기능이 떨어지고 또다시 굶기를 선택하는 일이 반복된다.
폭식증의 경우, 폭식을 하고 나서 굶기, 구토 등 폭식을 상쇄하는 행동을 하는데 이렇게 되면 영양상태는 널뛰기한다. 영양 불균형이 심해지면 우리 몸은 굉장히 음식에 중독되기 쉬운 상태가 된다. 이 상태에서 음식을 보면 뇌의 식욕 중추가 굉장히 폭발적으로 반응해 폭식하게 된다. 폭식을 하고 나면 또 폭식 상쇄하는 보상행동을 하니 점점 음식중독 상태는 심해지고 악순환이 된다.
-거식과 폭식의 관계가 밀접해 보인다. 공존할 수 있나?
상당수의 섭식장애 환자가 거식증과 폭식증을 같이 갖고 있다. 섭식장애 초기에는 거식증이다가 병이 진행되면서 폭식증으로 진단명이 바뀌는 경우도 30% 정도이다. 다만, 두 질환을 구분하는 기준이BMI(체중)이라 동시에 두 개의 진단명을 다 받는 경우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두 질환의 특징이 동시에 나타나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것이다.
-거식증과 폭식증을 구분하는 BMI 지수는 몇인가?
BMI 19를 기준으로 거식증과 폭식증을 나누기는 하지만, 폭식증은 BMI 지수만으로 진단을 내리지 않는다. 폭식증은 중증도 진단도 폭식과 보상행동을 얼마나 빈번하게, 심하게 하느냐를 보고 진단한다.
거식증은 일반적으로 BMI 지수가 17 미만일 때로 진단하며, 중증도도 BMI를 기준으로 나눈다. 정상인의 BMI 지수는 BMI 19 이상이다. 거식증 분류 지점인 BMI 17 미만이 되면 뇌와 호르몬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무월경, 월경을 해도 무배란이 되는 등 뇌와 호르몬이 교란되는 증상이 나타난다. BMI 지수가 낮아질수록 신체적·정신적인 문제는 심해진다. 정상인은 전체 생각의 15%만 음식과 관련된 생각을 하는데, BMI 지수가 17미만이 되면 정상적인 사고를 하게 하는 기능이 줄어들고, 음식에 대한 생각의 비중이 급증한다.
BMI 17.5~19가 되면 음식 및 운동, 체중조절 등 보상행동에 대한 생각이 전체 생각의 25%를 차지한다. BMI 지수가 좀 더 낮아져 15~17.5가 되면, 음식과 보상행동에 대한 생각이 60%를 차지해 일상적인 사고가 어렵다. 중증 거식증으로 분류되는 BMI 12 이하가 되면 사고의 95%가 음식과 보상행동, 식사 후 불안감소를 위한 행동으로 바뀐다. 작동기억은 25% 이하로 떨어져 어떤 일에 집중할 수 없고, 제대로 된 결론을 낼 수 없게 된다. 융통성이 없어지고 원칙이나 특정 기억에만 집착하는 등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다.
-중증 거식증·폭식증이라도 치료가 가능한가?
일찍 치료를 시작할수록 수월하게 완치할 수 있다. 그렇지만 치료시기가 늦다고 해서 포기할 필요는 전혀 없다. 더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은 있고, 치료를 하면 틀림없이 더 좋아진다. 섭식장애의 치료법은 다양하다. 방법도 다양하고 급성기와 만성화된 환자의 치료도 다르다.
급성기 치료는 거식증의 경우, 우선 체중·영양을 회복시키고 나서 구토, 보상행동, 특이한 식습관 등 섭식과 관련된 비정상적인 병리 치료와 극단적 신체상 왜곡 등 인지 관련 문제를 치료한다. 내 몸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동반된 우울증이나 강박증도 함께 치료한다. 치료가 잘 진행되면 재발방지를 위한 치료까지 이어진다.
폭식증은 폭식과 굶기가 반복되는 게 특징이라 식욕의 항상성 유지를 위한 치료를 시행한다. 정상적이고 규칙적인 식사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폭식증은 폭식과 굶기를 반복해 얻는 이득이 다른 합병증보다 더 크다고 생각해 이를 계속하는 것이기에,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의 이득이 더 크다는 것을 신체적·정신적으로 인식하게 하는 치료를 한다. 폭식증은 충동조절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아 이런 경우엔 심리를 안정하는 치료부터 하기도 한다.
거식증이나 폭식증이 발병한 지 5년이 넘어가는 만성 섭식장애 환자는 급성기나 경증환자만큼 빠르게 증상이 개선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섭식장애로 인해 생간 합병증과 후유증을 최소화하며 서서히 회복에 가까워질 수 있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치료하면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
-치료법마다 적합한 환자가 있는지?
섭식장애 치료는 인지 행동치료, 역동적 정신치료, 가족치료, 약물치료, 행동수정 프로그램, 정신요법, 집단치료 등 치료법이 다양하고, 환자마다 우선 권고되는 방법이 다르다. 폭식증 환자는 식욕 향상성 회복 등을 위해 인지행동치료를 우선 권유하고, 거식증은 환자의 상황에 따라 입원치료, 가족치료 등을 한다. 극단적으로 체중이 떨어진 거식증 환자는 빠른 체중 증가를 위해 입원치료를 한다. 청소년 거식증 환자는 가족치료가 가장 효과가 좋아 1차 치료로 권유하고, 성인 거식증 환자는 1차 권장 치료는 없으나 지지기반 회복치료를 우선으로 진행하고 있다.
-약이나 수술로 섭식장애를 치료할 수는 없나?
신경성 폭식증의 경우, 고용량 세로토닌 계열 항우울제가 미국 FDA 승인을 받은 유일한 치료제다. 현재 심한 폭식장애(Severe Binge Eating Disorder) 성인의 경우, 리즈덱스암페타민 다이메실레이트(제품명 : 뷔반세)가 체중감량 목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범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FDA 승인을 받았다. 이 약이 국내에서 승인되지는 않았다. 비만과 섭식장애가 동반된 경우엔 위 절제술이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반면,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은 안타깝게도 병 자체를 치료하는 약물이 없다. 거식증에 동반된 불안, 강박, 우울 등을 개선하면 거식증 치료가 수월해지기에 이를 치료하기 위한 항정신병 의약품이 사용되고는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항정신병 의약품은 청소년 거식증 환자에게는 사용할 수 없어 어려운 부분이 있다. 미국, 유럽, 호주 등에서는 극단적 거식증환자의 불안을 낮추기 위해 소량의 항정신병 의약품 사용을 보험급여로 사용할 수 있게 허가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사용조차 불가능하다.
거식증은 청소년 시기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고, 청소년 시기에 거식증이 발병하면 성장에 영향을 미쳐, 회복하기 어려운 후유증을 남기기에 적극적인 치료가 중요하다. 그런데 효과적인 약물치료에 한계가 있어 아쉬움이 있다.
-섭식장애를 혼자 치료할 수는 없을까?
섭식장애 초기라면 자가치료 온라인 프로그램, 책 등이 도움된다. 적극적으로 스스로 적용해보고 선택적으로 외부에 도움을 요청해도 된다. 그러나 병이 진행된 상황에서 혼자서 섭식장애를 치료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 치료자의 모니터링과 가이드를 받으며 치료를 하는 게 바람직하다. 섭식장애도 다른 질환과 마찬가지로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치지 않아야 경과가 좋다. 집중치료가 필요한 시기에 혼자서 치료를 시도하다 보면 적절한 치료기회를 놓칠 수 있으니, 병원을 방문해 치료를 받길 권한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아주 위험한 상태가 아니면 섭식장애 환자 자신이 직접 병원을 오는 경우가 드물다. 중증 섭식장애 환자들은 정상적인 사고가 어려워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만일 섭식장애가 있는데도 치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가 있다면, 주변인이 우회적인 방법으로 치료를 권할 필요가 있다.
-섭식장애 환자 주변인은 환자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섭식장애 치료는 환자가 밖으로 나올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어야 환자가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고, 어떻게 해야겠다 결심도 할 수 있다. 만일 섭식장애가 있거나 혹은 섭식장애가 의심되는 주변인이 자꾸 혼자 밥을 먹고 약속을 빈번하게 취소하면, 따뜻하게 접근해야 한다. 치료를 받으라며 몰아붙이기보단 관심과 염려를 표현하면서 그들이 바깥으로 나올 수 있게 도움을 주는 것이 좋다.
-식이장애가 있는, 치료 중인 환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
다른 관점에서 '나'를 볼 수 있길 부탁한다. 자신의 현재 상태를 조금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긍정적인 모습이 보일 것이다.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면 좋겠다. 모든 것에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많은 섭식장애 환자들이 모든 부문에서 다 완벽해지려는 경향이 있는데, 완벽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게 많다. 쉽지 않겠지만 완벽하지 않은 '나'도 받아들일 수 있으면 한다.
또한 치료를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은 섭식장애 치료 환자들이 단기간에 치료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 불안정한 경우가 많은데, 섭식장애 치료는 침착하고 굳건하게 나아가야 한다. 당장 내일 완치하는 게 목표가 아니다. 3개월, 1년 후처럼 멀리 보고 치료를 진행해나가야 한다. 자신에 대한 확신을 가지길 바란다. 나와 나의 미래를 아껴주며 천천히 나아가면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
<김율리 교수>
김율리 교수는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 동 대학원에서 의학박사를 취득했다. 영국 임페리얼 칼리지 런던 정신건강센터 연구원과 2017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진단기준(ICD-11) 개정 실무위원을 지냈다.
현재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세계정신의학회 (WPA) 성격장애분야 임원(Secretary), 인제대학교 섭식장애정신건강연구소장, 모즐리회복센터 소장, 국제섭식장애학회(Academy for Eating Disorders) 종신펠로우, 국제섭식장애저널과 유럽섭식장애리뷰 편집위원을 역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