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임신'과 반대 개념… “신체 변화 없는 경우도”

숨진 구미 여아의 친모로 밝혀진 석모씨(48)가 ‘임신거부증’을 앓았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임신거부증은 임신부가 심리적인 원인으로 인해 임신 사실을 부정하거나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친모임이 밝혀졌음에도 석모씨는 물론 남편까지 임신·출산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면서 이 같은 추측이 나오고 있다.
◇정확도 99.9999%에도 “낳은 적 없다”
석모씨(48)의 남편 A씨는 최근 방영된 MBC와 SBS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아내의 임신·출산 사실을 재차 부인했다. A씨는 “(아내가)몸에 열이 많아 집에서 민소매를 입고 있는데, 내가 임신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며 “3년 전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A씨는 제작진에게 3년 전 석씨의 사진을 보여주며 “출산했다는 시점의 한 달 반 전 모습인데 만삭이 아니다”며 “집사람은 절대로 출산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수사 과정에서 친모가 아님을 수차례 밝혀온 석씨도 구속 수감 중 편지를 통해 남편에게 임신과 출산 사실을 부인한 것으로 확인된다.
반면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유전자(DNA) 검사를 토대로 석씨가 친모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다. 검사 정확도가 99.9999% 이상에 달하는 만큼, 검사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은 없다는 설명이다. 앞서 경찰은 사건의 중요성을 고려해 유전자 검사를 4차례에 걸쳐 실시하기도 했다.
◇임신 사실 잊었나? 임신거부증 가능성
석씨를 두고 ‘임신거부증’이라는 추측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신거부증이란 임신부가 스트레스, 두려움 등으로 인해 임신 사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상상임신’의 반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 석씨 또한 유전자검사 결과라는 과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임신 사실이 없거나 임신 사실 자체를 잊은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좋은문화병원 문화숙 원장은 “임신을 하게 되면 출산과 육아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는데, 이 같은 두려움이 극한으로 치닫게 될 경우 임신한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임신거부증이 생길 수 있다”며 “부적절한 방어 메커니즘이 아주 강해, 임신한 사실 자체를 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임신거부증이라고 해도 출산 1~2개월 전까지 배가 부르지 않았다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남편 A씨가 보여준 사진 속 석씨는 출산을 1~2개월가량 앞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임신거부증 환자에게 드물게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신거부증일 경우 태아가 몸을 핀 상태로 자랄 수 있는데, 이로 인해 자궁이 둥근 모양이 아닌 세로로 긴 형태를 띠면서 배가 앞으로 나오지 않는 것이다.
석씨가 임신 후 출산 사실을 잊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이 경우 정신과적 질환 여부를 함께 고려해봐야 한다. 문화숙 원장은 “임신하고 출산한 사실을 잊는 경우는 기억 장애와 같은 정신과적 질환이 없는지부터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임신, 출산 자체가 심각한 스트레스였다면 기억 속에서 지워졌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임신거부증, 분만 때까지 임신 사실 모를 수도”
임신거부증을 겪는 환자는 임신을 했음에도 임신 사실을 모르는 것은 물론, 입덧이나 배가 부풀어 오르는 등 임신 후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신체 변화가 생기지 않을 수 있다. 증상이 심하면 출산 직전까지 임신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과거 독일에서 진행된 조사에 따르면 임신 20주 이상 산모 475명 중 1명 꼴로 임신거부증이 나타났고, 오스트리아의 경우 400명 중 1명, 미국의 경우 516명 중 1명 꼴로 발생했다. 또 오스트리아에서 임신거부증 환자 2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는 11명이 분만까지 증상이 지속되는 모습을 보였으며, 7명은 21~26주 사이, 9명은 27~36주 사이에 증상이 소멸됐다. 문화숙 원장은 “과거 젊은 연령, 초산, 낮은 학력, 사회경제적 지위, 약물 오남용, 정신 질환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면, 최근 연구 결과에서는 이 같은 요인보다는 외부 스트레스와 임신에 대한 심리적 갈등이 임신거부증을 유발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