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학과

'비만' 진단 받아도 '식욕억제제'는 못 먹는다?

신은진 헬스조선 기자

처방 가능한 BMI 기준 30으로 상향… 환자들 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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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비만, 국내 비만, 비만약 처방 기준이 달라 혼란이 발생하고 있다. /사진설명=게티이미지뱅크


우리나라에서 의료용 마약류인 식욕억제제 오남용은 심각한 문제다. 식약처에 따르면 최근 1년간 133만명이 마약류로 분류되는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다. 안전한 사용 기한인 3개월 이상을 초과해 처방받은 환자도 52만명에 달했다. 정부는 불필요한 식욕억제제 사용을 막기 위해 식욕억제제 안전사용 기준을 체질량지수(BMI) 30kg/㎡ 이상으로 상향 조정했다. 반면, 비만기준은 BMI 25kg/㎡ 상태에서 변경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일까?

◇식욕억제제 기준 BMI 30으로 높였지만, 비만 기준은 'BMI 25'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2월 22일 자로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 기준을 기존 BMI 25kg/㎡ 이상에서 BMI 30kg/㎡ 이상으로 개정했다. 지난 2020년 국정감사에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마약류 식욕억제제 국내 허가사항이 BMI 30kg/㎡ 이상인 것과 달리, 식약처의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 기준' 처방·사용대상은 BMI 25kg/㎡ 이상으로 명시돼 식욕억제제 오남용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 지 반년만이다.

식약처가 식욕억제제 허가사항과 안전사용 기준을 BMI 30 이상으로 통일하면서, 비만환자와 식욕억제제 관리기준이 일원화되는듯했으나 복병이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의 '비만 기준'이다. WHO의 비만 기준은 BMI 30 이상이지만 현재 국가통계 비만기준은 BMI 25 이상이다. 식욕억제제 허가사항과 안전사용이 통일됐지만 정작 비만 기준과는 괴리가 있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합병증 고려한 기준 설정해야 vs 질병위험 인종 차이 크지 않다
실제 비만기준 설정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비만 기준을 현행 BMI 25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국제기준(WHO)에 맞춰 BMI 30 이상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대립한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조정진 교수는 "WHO는 BMI 25~29.9를 '과체중'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비만 1단계로 분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당뇨병 등 질병위험이 커지는 기준이 인종별로 BMI 26~31로 다양하고, 체질량지수 비만 기준이 인종별로 차이가 크지 않음을 고려할 때 우리나라도 비만기준을 국제기준인 BMI 30 이상으로 설정하는 게 적절하다"고 말했다.

조 교수에 따르면 일본검진학회도 2014년부터 BMI 남자 27.7, 여자 26.1까지 정상으로 발표하고 있다. BMI 25~29.9 구간에서 당뇨병 고혈압 등 질병 위험이 증가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같은 현상이기에 '과체중'이라는 위험구간으로 부르지만, 사망률이 더 높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비만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정진 교수는 "국내 비만기준이 BMI 25 이상으로 설정되어 있어 불필요한 식욕억제제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국내 비만기준 BMI 지수를 국제기준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면 사망률도 낮고, 질병 발생위험도 낮은 경도비만 그룹들이 불필요하게 체형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비만기준을 현행 BMI 25로 유지해야 하는 게 맞다는 의견도 있다. 합병증 발병 위험을 고려할 때 비만기준은 BMI 25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양대학교병원 외과 하태경 교수는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년의 비만율 등을 생각한다면 비만기준은 현행 BMI 25를 유지해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WHO의 기준이 BMI 30 이상이긴 하나, 인종에 따라 당뇨, 고혈압, 고지혈증 등 동반질환의 발병률이 현격히 차이가 나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비만 기준을 BMI 25 이상으로 설정하는 게 합리적이다"고 말했다.

대한비만학회에 따르면, BMI가 5 증가할 때마다 사망 위험은 29% 증가한다. 비만 환자와 고도비만 환자의 당뇨병 위험은 각각 2.5배, 4배나 높다. 고혈압 위험도 고도비만에서 최대 2.7배까지 높다.

◇비만기준 BMI 25 유지해도 식욕억제제 처방은 엄격하게
다만, 비만기준을 BMI 25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전문가들도 식욕억제제 처방기준은 BMI 30 이상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마약류인 식욕억제제는 엄격한 기준에 의해 처방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하태경 교수는 "지나치게 비만 기준이 엄격하게 설정되어 있다거나, 복지부와 식약처의 기준이 달라 현장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비만 기준과 비만약 처방기준은 다르다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하 교수는 "만일 비만기준과 처방기준을 BMI 30 이상으로 통일시킨다면 1단계 비만환자의 관리를 놓치게 될 것이고, 25 이상으로 통일한다면 식욕억제제가 오남용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는 현재 비만치료에서도 1단계 비만(BMI 25~29.9)은 식이요법과 운동치료, 행동치료 등을 우선으로 시행하고, 2단계 비만(BMI 30~34.9)부터 식욕억제제를 보조적인 수단으로 처방할 수 있도록 하는 이유와도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