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살 빼려고 불법 거래까지… '식욕억제제' 부작용 알고 있나요?

오상훈 헬스조선 기자

환각, 망상, 자해 등 정신 이상반응 적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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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억제제는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강제로 식욕을 억제하므로 환각, 자해 등 정신병적인 증세를 유발할 수 있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코로나19는 ‘확찐자’라는 말도 만들어냈다. 거리두기로 배달 음식 섭취량은 늘고 운동량은 줄었기 때문이다. ‘운동 없이 살 뺄 수 없나’ 하면 떠오르는 방법이 하나 있다. 식욕억제제다. 먹기만 하면 살이 빠지는 탓에 의사 처방약임에도 불구하고 ‘중고’로 불법 거래도 되고 있다. 실제 유명 중고 거래 어플에서 ‘식욕’이라고 검색하면 식욕억제제를 판매한다고 암시하는 글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식욕억제제는 쉽게 손대면 안 되는 약이다. 수면장애, 어지럼증은 물론 환각, 망상 등과 같은 정신 이상반응까지 유발할 정도로 부작용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시사 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우 양기원 씨는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뒤 길거리에서 차에 뛰어드는 등 이상행동을 보이다 마약 복용 혐의로 입건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식욕을 억제해주는 약이 어떻게 정신병적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걸까?

◇뇌 강제로 흥분시켜 식욕 없애는 식욕억제제

식욕억제제엔 여러 종류가 있다. 인슐린 분비를 촉진해서 포만감을 느끼게 하거나 지방 분해 효소를 억제해 지방이 그대로 배설되게 만드는 것 등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쓰이는 건 일명 나비약이라 불리는 ‘디에타민’이다. 주성분이 ‘펜터민’이여서 효과가 좋다. 실제 37.5mg의 펜터민을 3개월간 복용했던 사람들이 평균 11%의 체중을 감량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펜터민은 교감신경을 흥분시켜 식욕을 통제한다. 시상하부에서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도파민 등과 같은 호르몬을 증가시켜 배고픔을 잊게 만드는 것이다. 펜디메트라진, 디에틸프로피온, 마진돌 등의 성분들도 펜터민과 비슷하게 작용한다. 이러한 성분이 들어간 식욕억제제는 교감신경 항진제로 불린다.

교감신경 항진 성분들은 마약과 비슷하게 작용한다.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강승걸 교수는 “펜터민은 암페타민으로 분류되는데 메스암페타민인 필로폰과 정도만 다를 뿐 비슷하게 작용한다”며 “사람에 따라서 기분이 들뜨거나 또렷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몸이 전투 태세에 돌입하기 때문에 흥분하거나 손이 떨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식욕억제제는 정신병적인 증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교감신경 항진 식욕억제제, 복용 3일 만에 자해로 이어지기도

식욕억제제는 복용 기간이 짧아도 정신 이상반응을 발생시킬 수 있다. 흔하게 발생하는 부작용은 호르몬 불균형으로 인한 입 마름, 변비, 불면증, 어지럼증 등이다. 그러나 환각이나 자해와 같은 정신병적인 증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실제 대한생물정신의학 학회지에 실린 증례 연구를 보면 환청, 환시, 죄책감을 보이며 눈썹 칼로 목과 손목을 자해해 입원했던 28세 여성은 펜터민 식욕억제제를 복용한 지 3일밖에 되지 않았다. 같은 연구에서 펜디메트라진 성분의 식욕억제제를 3개월 동안 하루 105mg씩 복용했던 23세 여성은 부모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임신하지 않았음에도 임신한 것 같다고 호소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식욕억제제를 복용했을 때 정신병적인 증세를 겪을 수 있을까? 맑음정신건강의학과의원 황희성 원장은 “교감신경 항진 식욕억제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신병적 증상을 겪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며 “다만 폐쇄병동에서 일하는 정신과 의사들은 펜터민으로 인한 정신병적 증상을 자주 본다”라고 말했다. 또 “양극성 장애나 조현병 가족력이 있으면 식욕억제제를 먹고 정신질환을 겪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복용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오남용 원인은 과다 처방?

심각한 부작용이 있음에도 식욕억제제는 과도하게 처방되고 있다.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이 식약처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교감신경 항진 식욕억제제는 2019년 약 161만명이 663만건을, 2020년에는 약 160만명이 652만건을 처방받았다. 해당 자료엔 16세 이하 처방 사례도 있었다. 2019년엔 719명이 1938건을, 2020년 528명이 1436건 등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 기준’에 따르면 교감신경 항진 식욕억제제는 16세 이하에겐 처방할 수 없다.

처방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식욕억제제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이유엔 의사들의 과다 처방이 있다. 식약처는 의약품 오남용을 막기 위해 ‘사전알리미’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치료 효과는 있지만 부작용이 심한 졸피뎀, 프로포폴, 교감신경 항진 식욕억제제 등을 처방했을 때 오남용이 의심되면 의사에게 서면으로 알리는 제도다. 지난해 6월 도입된 이후 총 1215명의 의사가 경고받았는데 이중 567명이 기준을 지키지 않고 식욕억제제를 처방했다. 식욕억제제제는 체질량지수(BMI)가 30을 이상이라는 처방 기준이 있다.

그러나 식욕억제제의 효과나 성분에 중독된 환자들이 식욕억제제를 처방받기 위해 의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 다이어트 커뮤니티엔 의사에게 어떻게 말해야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을 수 있는지 후기와 함께 팁 등이 공유되고 있다. 강승걸 교수는 “식욕억제제를 처방받고 다른 사람에게 주거나 판매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며 “이런 현상을 막기 위해선 식욕억제제 오남용에 대한 법적, 제도적인 장치가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안 충분하고 의존 심해졌으면 내원해야

식욕을 억제하는 데 꼭 교감신경 항진제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비교적 안전한 대안들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항전간제인 토피라메이트와 페터민을 섞어 만든 ‘큐시미아’가 있다. 2년간 복용해도 심각한 정신병적인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는 임상 시험 결과도 있어 펜터민 단독 복용보단 안전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포만감을 증가시키는 리라글루티드 성분의 주사제 ‘삭센다’ 역시 효과에 견줘 부작용이 적다. 물론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황희승 원장은 “비교적 안전한 식욕억제제들도 오래 복용하면 졸음, 이상 감각, 기억력 저하, 언어기능 저하 등이 발생할 수 있다”며 “모든 비만 약물은 습관을 고치는 용도로 사용해야지, 약물로만 체중을 빼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만약 식욕억제제를 복용하고 있는데 정신병적인 증세가 의심된다면 하루빨리 내원해야 한다. 강승걸 교수는 “식욕억제제로 인한 우울, 조증, 불면, 망상, 환각 등의 정신증상들과 정신질환이 발생할 수 있다”며 “식욕억제제는 약물 의존성이 높기 때문에 약물남용이나 정신증상이 나타난다면 정신과 진료를 통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