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깐깐한 미식일기] 전복의 비애, 완도의 불안
이지형 헬스조선 취재본부장
입력 2020/08/31 14:12
8월 하순, 완도에 내려가 전복을 먹었다. 회로 먹고, 찜으로 먹고, 죽으로 먹었다. 맛났다. 그리고 슬펐다. 오랫동안 완도 주민인 사촌 누이와 매형이 폭염을 뚫고 남하한 동생 가족을 위해 마련해준 부둣가의 성찬이었다. 전복에 관한 대화는 멀리서 시작했다. 사촌 누이가 운을 뗐다.
완도 어때?
시골이네.
그런데 완도 사람들 부자야. 전복 양식 크게 하는 사람들 많거든.
동망산에 오르면 즐비한 전복 양식장
동망산 정상 완도타워에 오르면 태양광 설비처럼 생긴 사각의 가두리 양식 장비들이 눈에 들어온다. 바다 위에 가지런한 양식장 안에서 전복들이 무럭무럭 커가고 있을 거다. 전복들이 커가는 만큼 완도도 부자가 될 거다. 그런데 사촌 누이는 이내 딴 소리다.
십년 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
왜?
기후 때문에 그렇지. 수온이 올라가서 미역, 다시마 생산이 줄어드니까, 그걸 먹고 사는 전복도 줄고……. 그렇다나봐.
테이블 위, 두툼한 특대 사이즈의 전복들이 가여웠다. 기후 변화가 그렇게 무섭다. 잘 살고 있는 생물들을 그들의 오랜 거주지에서 쫓아낸다. 서해의 조기는 남하하고, 동해의 명태는 사라진다. 고등어도, 오징어도 생존 가능한 온도를 따라 한반도의 근해를 오르내려야 한다.
전복은 남고, 코로나 바이러스는 떠나라
그리고 어쩌면……. 코로나19 바이러스도? 눈에 보이는 것만 생물은 아니니까. 갑자기 출현한 바이러스가 여러 번의 계절을 넘기며 사람들 곁에서 이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도 어쩌면 기후 때문이겠단 생각을, 슬픈 전복을 앞에 두고 했다. 조기처럼, 명태처럼 그리고 전복처럼, 바이러스도 변해버린 자신들의 거주 환경을 못 견뎌 동굴을 탈출해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전복의 건강한 기운 때문일까. 우연찮게도 완도는 여전히 코로나19의 청정 지역이다. 그렇게 천진한 완도의 부둣가 식당, 단출한 식탁을 채운 미역과 다시마와 전복을 보면서, 모쪼록, 이름난 청정 해역의 매력적 생태계가 오래 가기를 바랐다. 싱싱한 전복이 십 년 아니라, 백 년 후에도 완도 앞바다를 지켜주기를, 집 떠나온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내일이라도 발길 돌려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