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고 업고 씻길 때 허리디스크·척추관협착증 위험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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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를 돌보는 조부모들의 허리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다./사진=클립아트코리아

요즘 할아버지·할머니들은 예전과 다르다. 자녀를 키우는 데 한 세월을 다 보넀지만, 이제 손주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서울에 사는 김모(64세)씨는 직장에 다니는 딸을 대신해 2년째 손주 두 명을 돌보고 있다. 아침에 손주들을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것으로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 손주들이 집에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밥을 차리고, 집안 청소까지 하면 허리 한 번 펼 새 없이 하루가 간다. 아이 부모가 오기 전에 업고 안고 씻기는 것도 김씨의 일이다. 남는 건 허리통증이다. 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진다. 오래 걷지 못해 중간중간 쉬어 가는 일이 많다. 점차 골반과 다리에 저리는 듯한 증상이 심해졌다. 결국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허리디스크를 진단했다.

◇맞벌이 부부 60% 부모에 아이 맡겨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맞벌이 부부 10쌍 중 6쌍 이상이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있는 상태다. 특히 조부모들의 상당수는 법정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9시간이다.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손주를 보게 되었지만 실제 아이를 돌보다 정작 본인의 건강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바른세상병원 척추클리닉 한재석 원장(신경외과 전문의)은 “시니어맘의 대부분은

60대 이상으로 이미 디스크 퇴행이 진행되어 디스크의 탄력이 떨어져 있고 허리 주변의 근육도 크게 약해져 있다”며 “이 때 갑자기 아이를 드는 행동을 하거나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행동은 허리디스크를 악화시키는 원인”이라고 말했다.

◇아이 체중의 10-15배가 허리에 가중

아이를 달래주기 위한 흔한 행동이 아이를 안아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고령자에게 매우 위험하다. 아이를 안을 때는 아이 체중의 10-15배의 충격이 허리에 가중된다. 또, 아이를 계속 안고 있으면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려 허리가 앞쪽으로 휘어진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김씨처럼 허리디스크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손주를 돌보는 고령자는 가급적 아이를 안거나 무거운 걸 들지 않아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안아야 한다면, 허리힘만을 이용해 아이를 번쩍 드는 것은 피하고, 최대한 몸을 낮게 한 상태로 무릎을 꿇고 앉아 안는 것이 좋다. 또 허리힘이 아닌 온몸을 이용하는 것이 허리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시간이 될 때마다 온몸을 쭉 펴는 가벼운 스트레칭을 해서 근육의 긴장을 이완시키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업을 때 허리 젖혀지면 ‘척추관협착증’ 악화

아이를 돌볼 때 안는 것뿐만 아니라 업는 행동도 많이 한다. 아이를 업어주면 손이 자유롭다는 이유로 일부러 업는 경우가 많다. 허리에 무리가 가는 대표적인 행동이다.
한재석 원장은 “아이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척추에 과도한 하중이 실리면서 미세한 손상이 발생할 수 있다”며 “이런 미세손상이 쌓이면 척추관협착증 위험이 높아진다”고 말했다. 그는 “등 뒤에 아이의 움직임이 심할 경우 허리 부담도 더 커진다”며 “따라서 아이를 업어주기보다는 보행기에 앉히거나 유모차를 이용하고, 피치 못해 업게 되더라도 30분을 넘기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척추관협착증은 뼈 사이 관절 부위 인대가 두꺼워지면서 척추관을 좁게 만들어 신경을 압박하면서 통증이 발생하는데 허리디스크와 증상은 비슷하지만 다른 질환이다. 허리디스크는 앞으로 숙일 때 통증과 저림이 더 심해지지만 척추관협착증은 허리를 앞으로 숙이면 오히려 증상이 완화된다.

한재석 원장은 “노년층의 경우 아이를 돌볼 때 체력소모가 많아 근골격 질환에 더욱 취약하다”며 “방심하고 치료시기를 놓치면 병을 키울 수 있기 때문에 허리통증이 있다면 정확한 검사를 받아보고 본인에게 적합한 치료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특히 초기 척추질환자는 보존적 치료 및 비수술 치료로도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척추질환은 단계에 따라 가능한 수술 없이 치료가 가능하지만, 수술이 불가피하다면 가능한 자신의 뼈, 인대, 근육을 살리는 최소 침습적 치료를 하는 것이 좋다. 특히 최근에는 작은 구멍을 통해 수술이 이뤄지는 척추 내시경으로 허리디스크와 척추관협착증 치료도 이뤄지고 있다. 척추내시경술은 흉터가 작고 회복속도가 빠르며 고령자나 만성질환자도 안심하고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