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통화를 하다보면 어느새 종이 가득 낙서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이때 무심코 끄적인 것이라도 다시 한번 보자. 당신의 마음이 보내는 편지일지 모르니.
바야흐로 힐링의 시대다. 힐링을 위한 노래, 힐링을 위한 음식, 힐링을 위한 여행…. 도대체 ‘힐링’이라는 단어가 붙지 않는 것이 없다. 힐링 열풍과 함께 인기를 얻은 것이 바로 컬러링북이다. ‘어른들을 위한 색칠놀이’라는 컨셉트로 출판계를 강타한 컬러링북은 정교하고 복잡한 패턴의 밑그림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어떤 규칙도 없다. 그저 마음 내키는 대로 색을 칠하면 된다. 컬러링북이 힐링이 되는 이유는 몰입 때문이다.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면 사념이 없어지고 스트레스가 풀린다. 그림을 완성한 후 얻게 되는 성취감은 컬러링북의 또 다른 힐링 포인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컬러링북이 실질적인 스트레스 해소 창구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단순 몰입이 주는 쾌감의 약효가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내 마음을 보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간단하다. 내 마음의 상태를 알고 그에 맞는 약을 스스로 처방하면 된다. 그런데 나이 먹을수록 자신을 알아가는 게 너무 어렵다. 세월과 함께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감정을 어디서부터 풀어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진정한 마음 힐링, 미술치유로 완성하다

글이 아닌 그림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숨겨둔 감정을 꺼내놓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 수 있고 감정 해소 효과도 볼 수 있다.
치유라는 이름 때문인지 미술치유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미술치유는 그렇게 멀지도, 어렵지도 않다. 미술치유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기법 중 하나인 ‘난화’가 그 증거다. 난화란 ‘끄적거리다’는 의미의 영단어 ‘Scribble’을 말한다. 말 그대로 생각 없이 끄적거리면 된다.
자유롭게 그린 이 그림에는 자신의 무의식이 전하는 얘기가 담겨 있다. 그림 속 자신의 얘기를 해석하기 위해 굳이 전문가를 찾아갈 필요도 없다. 대신 미술치유에서 중요한 건 ‘명명화(命名化)’다. 닭이 낳은 노란 알에 ‘달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을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완성되듯, 아무 의미 없이 그린 그림에 제목 붙이는 과정을 통해 그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난화가 의미를 가질 필요는 없다. 이름을 붙이려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다만 자신의 마음이 그림으로 전달한 감정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마음을 정리하기에 충분하다. 자신이 지닌 상황과 감정을 기반으로 무의식이 보낸 편지를 읽어보자. 분명 그 안에는 그동안 몰랐던 ‘나’가 있을 것이다.
제가 직접 미술치유를 받아봤습니다

이 형이상학적인 그림에 어떤 제목을 붙이라는 건지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차근차근 그림을 보니 생각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생각 없이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별과 나비 그리고 배가 그려져 있었다. 배경을 다 칠하지 않았는데도 왠지 고요한 강가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고심 끝에 ‘별이 빛나는 강가’라는 제목을 붙였다.
놀랍게도 제목을 붙이자 그저 색칠한 종이에 불과했던 그림이 다른 의미로 보이기 시작했다. 고요한 느낌은 지금까지 힘들었던 일을 떠오르게 했다. 동시에 ‘내가 이런 고요한 상태를 그리워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 주변을 날아다니는 나비는
평소 동경하던 ‘자유롭게 빛나는 사람’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이렇게 생각하니 그림이 또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됐다. 아무 의미 없던 종이에 어느새 내 마음이 그려져 있었다.
단순히 색만 칠하는 컬러링북이 아니다. 색칠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을 읽을 수 있단다. <아트로 힐링?>의 저자 유희경 윈스티튜트 대표이사를 만나봤다.

책을 펼쳐 보고 좀 놀랐어요.
흔히 컬러링북에서 보던 예쁜 그림이 아니던데요?
그림이 좀 이상하죠? 이게 미술치유에서 사용하는 난화라는 기법이에요. 어떤 모양을 그린 게 아니라 그냥 손이 가는 대로 그린 형식이 없는 패턴이죠. <아트로 힐링?>은 미술치유의 난화 기법과 컬러링북을 결합한 ‘셀프 힐링 키트’랍니다.
미술치유와 컬러링을 결합하게 된 계기가 있나?
미술치유는 병이 있는 사람을 고치는 수술 같은 게 아니에요. 지점토나 종이 같은 매개체를 이용한 미술활동을 통해 마음을 치유하는 거죠.
사람들이 색을 칠하는 간단한 행위를 하면서 스스로 마음을 돌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책을 만들게 됐어요.
이 책에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사람들이 혼자 그걸 분석할 수 있을까요?
그림을 분석한다기보다는 마음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면 훨씬 쉬워요. 그림이 완성되면 제목을 붙여보세요. 아무 의미가 없던 그림에 새로운 의미가 입혀지죠. 마음의 소리에 마이크를 달아주는 거예요. 그리고 그 제목과 그림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는 걸로 충분해요.
유 대표님이 이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이 책의 목적은 혼자서 할 때는 자신을 이해하는 거고, 다른 사람과 함께 할 땐 자신과 타인의 다름을 이해하는 거예요. 정답은 없어요. 누구에게 평가받을 필요도 없죠. 뜻을 찾지 못해도 괜찮아요. 그림을 완성했을 때 감정의 응어리가 조금이라도 풀어졌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