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몸은 다 컸는데 마음은 초딩인 내 아이, 왜 그럴까?
취재 문은정 기자 | 참고서적 《디지털 세상이 아이를 아프게한다》(북클라우드)
입력 2013/11/26 09:00
몸만 큰 아이, 디지털 페어런팅
영어도 척척, 수학도 척척, 과학도 척척. 요즘 아이들은 모두 천재 유전자를 타고났나 보다. 하나같이 어찌나 똑똑한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런데 어느 날 길 가다 부딪힌 ‘요즘’아이가 방긋 웃으며 한 마디 한다. “아줌마, 눈 없어요?” 이 아이들에게 특별한 교육법이 필요하다.
#1 몸은 다 컸는데, 마음은 덜 자랐다?
“중2가 두려워 북한이 남침을 못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얼마나 심각하면 이런 말을 할까. ‘요즘’ 아이들은 수업시간에 잔다고 나무라는 교사에게 주먹질을 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에게 죄의식 없이 ‘왕따’ 시킨다. 워낙 보편화된 이야기라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런 청소년들을 보며 ‘중2병에 걸렸다’ 한다. 위키백과를 검색하면, 중2병은 ‘중학교 2학년 또래의 사춘기 청소년들이 흔히 겪는 심리적 상태를 빗댄 언어’라 말한다. 또한 ‘사춘기에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반항과 멋부리기 성향’이라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자연스러운’이란 단어가 가시처럼 목에 걸린다. 요즘의 과도한 폭력은 절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말할 수 없다. 부모와 교사의 노력만으로는 겉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교 일에 경찰이 개입하고, 소년범의 형사처분 연령을 낮추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정신적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아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지식을 두 가지로 나눴다. ‘기노스코(Ginosko)’는 머리로만 아는 ‘이론적 지식’을 뜻하고, ‘오이다(Oida)’는 깨달음을 수반하는 ‘경험적 지식’을 뜻한다. 아프리카 초원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아는 것은 기노스코이며, 초원 생활을 통해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은 오이다이다. 기노스코보다 오이다가 더 높은 질의 지식인 것은 굳이 언급할 필요 없다. 하지만 요즘 학교에서 아이들이 학습하는 지식은 오이다가 아닌 기노스코이다. 실전이 아닌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하며, 아무리 지식을 많이 배워도 써먹을 일 없는 공허한 지식인 경우가 허다하다. 이론적 지식은 있지만 경험을 통한 깨달음은 없다. 결국 신체는 성장하지만, 정신은 성장하지 못하는 ‘가짜 성숙’ 현상이 발생한다. 그런 가짜 성숙을 유발하는 요인은 다양하다.
#2 가짜 성숙, 이렇게 살피자
가짜 성숙은 아이마다 나타나는 양상이 다르다. 하지만 대부분 사회성과 정서적 발달이 떨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회성이 떨어지므로 주변 사람들과 갈등이 많고, 정서가 불안정하므로 충동적이고 폭력적이다. 실패해 다시 일어나 달리는 ‘회복 탄력성’도 부족하다. 자기 주도적인 모습은 찾아볼 수 없으며, 자아정체감도 희미하다. 하지만 아이의 정신적 성숙 상태를 체크하는 것은 신체 발달의 유무를 살피는 것보다 몇배 어렵다. 하지만 신체적 성장보다 몇십 배 중요한 일이다.
#Check 1 이야기 완성 과제 MSSB
MSSB(Macarthur Story Stem Battery)는 정서발달 연구의 대가로 칭송받는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로버트 N. 엠데 교수가 개발한 심리발달검사다. 주제를 10~13개 설정한 뒤 인형극 형태로 이야기를 완성한다. 특별히 설정한 상황에서 아이가 어떤 감정을 드러내는지 간접적으로 살필 수 있다. 의도적으로 심리를 불안하게 만들어 아이가 그 상황을 어떻게 타개하는지 살피는 것이므로 갈등 상황에 빠뜨리는 주제가 반복된다. 가짜 성숙한 아이는 검사 시 마주치는 새로운 환경이나 갈등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상생활에서도 비슷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Check 2 아이의 표정을 살펴라
집에서 객관적으로 성숙도를 체크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지만 아이의 표정을 주목하면 어느 정도 파악이 가능하다. 보통 사람은 기쁠 때 웃고, 슬플 때 울고, 화날 때 찡그리는 것이 정상이다. 마음의 거울인 표정이 감정을 담지 못한다면 발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가짜 성숙한 아이들은 표정의 변화가 많지 않고, 대부분 어두운 표정을 짓거나 계속 웃는 경우가 많다.
Check 3 또래집단에서의 행동
또래집단에서 아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따라 아이의 성숙도를 살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장난감을 갖고 놀고 싶어 하는 세 아이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 상황에서 성숙한 아이는 또래집단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온갖 묘안을 짜낸다. “서로 한 번씩 갖고 놀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성숙한 아이는 결과적으로 원하는 것도 얻고, 친구와의 관계도 돈독하게 한다.
Check 4 아이의 도덕성과 공감 능력
유아기 아이들은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도덕성을 발달시킬 수 있는 것이 바로 공감 능력이다. 공감능력이 발달한 아이는 놀다가 다툼이 생겨도 상대 친구를 때리지 않는다. 때리면 상대방이 아플 것이라는 것을 인지하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왕따와 폭력 문제 역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아이들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다.
#3 가장 큰 원인은 디지털 기기
그렇다면 아이를 가짜 성숙하게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일단 일반적인 발달 과정을 거스르고 놀이를 멀리하며, 성장 과정 중 부모에게 충분히 공감받지 못한 경우 가짜 성숙한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바로 디지털 기기다. 디지털 기기의 큰 문제는 직접 체험이 아닌 ‘간접 체험’을 하는 것이다. 즉, 오이다가 아닌 기노스코를 학습하게 해 아이의 성숙을 방해한다. 굳이 개구리를 찾지 않아도,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어떻고, 그 모습이 어떤지 학습할 수 있다. 하지만 개구리의 피부와 체온 등 직접 만져 보아야만 느낄 수 있는 직접 경험은 불가능하다. 디지털 기기는 오감 발달 단계를 생략시키고, 개구리 잡기 시합을 할 수 있는 놀이의 기회를 박탈당하며, 생명의 놀라움을 공유하는 감정교류의 기회마저 빼앗아간다. 그리고 이로써 발생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Problem 1 팝콘 브레인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 강한 색채와 소리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 이런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뇌가 팝콘처럼 화면 튀어 오르는 강한 자극에는 반응하지만, 밋밋한 일상 자극에는 무감각해지는 ‘자극 추구형 뇌’로 변한다. 2011년 미국의 공공 과학도서관 학술지 ‘플로스원(PlosOne)’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다. 이런 아이들에게 나뭇가지 등을 가지고 노는 자연놀이 같은 것은 지루할 따름이다. 팝콘 브레인은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기억력을 저하시킨다. 아이들의 학습 능력에도 악영향을 미치는데, 팝콘 브레인의 특성상 내용을 완벽하게 깨우치기보다는 훑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감정을 통제하는 힘도 약한데, 강한 자극이 주어지지 않으면 금세 싫증내고 안절부절 못한다.
Problem 2 ADHD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는 주의 집중력과 연관된 노르에피네 프린과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의 기능이 비정상일 때 발생한다. 특히 디지털 기기는 뇌의 특정 부분만 집중적으로 자극하는데, 이 때문에 뇌의 균형이 깨지기 쉽다. TV나 컴퓨터,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기기는 시각을 담당하는 후두엽, 시각·지각적 통합능력과 관련된 두정엽을 주로 자극한다. 두뇌는 자극받은 신경세포는 유지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지워 버린다. 그래서 디지털 기기에 빠진 아이들은 후두엽과 두정엽은 발달하는 반면, 판단력, 감정조절, 집중력 조절, 기획 능력 등을 책임지는 전두엽이나 변연계의 발달은 더디다. 어른의 경우 이미 신경회로가 완성된 상태이기 때문에 문제가 심각하지 않지만, 한창 신경회로를 형성하는 아이는 경우가 다르다. 디지털 기기에 장시간 노출된 아이에겐 ADHD가 발생하기 쉽다.
Problem 3 생각 못 하는 아이
만 4~6세 일생 중 가장 창의적인 때이다. 자기 중심적 논리를 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 시기에는 배우고 익히는 것이 즐거운 것이라는 긍정적 인식을 심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건 뭐야”, “저건 왜 저렇게 생겼어”라고 물으면 곧바로 답하기보다 스스로 생각해서 답을 찾도록 유도하자. 하지만 이 과정은 사람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디지털 기기는 깊은 생각을 유도하지 않고, 곧바로 답을 알려준다. 아이들은 사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다르게 해석해 보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7세 7세 이전엔 무엇 하나 꾸준히 갖고 놀지 못했지만, 만 7세 이후부터는 집중력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는 대부분 멀티 테스킹을 한다.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면 한 가지 주제에 몰두하지 못하고 집중력을 분산시켜 학습의 질을 떨어뜨린다. 9세 추상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시기다. 추상적 사고력은 독서를 통해 기른다. 독서하면 자기 주관대로 상상하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는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추상적 사고력이 발달하기 힘들다. 청소년기 단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는 것은 뇌 속 해마의 역할이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장기 기억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디지털 기기를 이용한 학습은 즉흥적이고 일회성을 띤다. 자극이 강하므로 흥미를 보이지만, 그것을 기억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