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질환
거동 불편한 부모님 '요양보험' 신청할까 말까
정시욱 헬스조선 기자
입력 2008/05/27 16:42
노인장기요양보험 망설이는 이유
月 100여만원 요양비 지급하는 '효자보험'… 10만명 신청
서비스 믿음·부담금·복잡한 절차 등 이유로 망설이기도
#1 치매에 걸린 친정어머니(71)를 6년째 수발하고 있는 윤모(49)씨. 주변에선 효녀(孝女)로 소문 나 있다. 하지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속담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힘들고 지쳐 '병 간호를 그만두고 싶다'는 나쁜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던 중 지난달 동사무소 직원이 찾아와 '노인장기요양보험' 신청을 해보라고 했다. 그러면 집으로 방문도우미를 부를 수도 있고, 요양원에 모실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신청하려니 고민이다. 신청만 하면 받을 수 있는지, 돈을 추가로 내라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내 몸 편하겠다고 부모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2 중증 무릎 관절염을 앓고 있는 우점말(71·가명) 할머니와 청력장애에 손가락 관절염이 있는 이중수(73·가명) 할아버지 부부. 거동을 못하는 할머니를 대신해 할아버지가 밥짓기와 빨래 등 집안 일을 해결하지만, 목욕이나 외출은 생각도 못한다. 이웃의 도움으로 이달 2일 노인장기요양보험 신청을 했는데, 건강보험공단 직원이 방문해선 의사소견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했다. 의사소견서 때문에 왕복 1시간이나 걸리는 병원 다녀오기도 쉽지 않은데다, 누가 더 아픈지 등급을 매기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노부부는 조금 불편해도 지금처럼 사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7월 1일부터 우리나라에는 또 하나의 혁명이 일어난다. 오랫동안 자녀의 몫이었던 부모 돌보기가 공공(公共)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7월부터 시행되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은 '효자보험'이라고도 불린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가 되면 한 달에 100여만 원 안팎의 보험료로 노인들이 집에서 방문도우미의 간호를 받거나, 요양원에 입소해 지낼 수 있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의 수발이 가족의 손을 떠나 '공공(정부+지방자치단체+건강보험)'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획기적인 제도이기 때문일까? 시행을 불과 한달 여 앞둔 지금도 정작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적용 대상이 되는 노인이나, 이들의 자녀들 중에서 신청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특히 자식 입장에선 더 망설여진다. 혜택을 받는 것은 좋지만, 병든 부모 간호를 남의 손에 맡기는 것 같은 심리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부모를 노인장기 요양보험 대상자로 만들어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현대판 고려장' 같아 고민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65세 미만도 신청할 수 있어
건강보험공단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신청 접수 현황에 따르면 지난달 15일부터 한달 간 9만9820명이 접수했다. 이중 65세 이상 노인이 97.6%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치매·중풍 등 노인성 질환을 앓는 65세 미만이다.
이런 추세라면 제도 시행 이전인 6월말까지 전체 65세 이상 전체 노인(496만 명)의 5%인 24만여 명이 신청할 것으로 공단은 추정하고 있다. 이중 등급 판정을 거쳐 17만 명의 노인이 처음으로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지금까지 신청한 사람 중 약 30%는 이전에도 요양복지서비스를 받던 기초생활 보장자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7월부터 처음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적용 받는 사람은 12만여 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신청을 망설이고 있는 사람이 6만~7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건강보험공단은 추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크게 4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집으로 방문하는 도우미나 요양시설의 서비스가 과연 믿을 만한 수준인가라는 것이다. 자녀가 돌보는 것만큼 사랑과 정성이 들어가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둘째, 노인장기요양보험은 한달 간 들어가는 노인 돌보기 비용 전액을 보험이 지불해주지 않는다. 즉 가정 방문 도우미든, 요양시설 이용이든 혜택을 입는 본인이나 가족이 15~20%를 부담해야 한다. 만약 100만원 상당의 서비스를 받았으면 재가(在家) 서비스는 15만원, 요양시설에 입소했다면 20만원과 식사재료비, 외출 경비 등을 내야 한다. 이것이 가계에 부담이 된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셋째, 몸이 얼마나 아프고 불편해야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이 되는지 기준이 애매하다. 신청했다가 등급 판정에서 탈락할 것 같아 아예 신청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 종일 누워서 지내거나 외출도 못하는 중증 환자 수준의 노인만 가능할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는 경우가 있다.
넷째, 홍보 부족이다. 얼핏 들어보면 좋은 제도인 것 같지만 자세한 것은 잘 모르겠고, 신청 절차도 까다롭다는 사람들이 많다. 신청서 작성, 의사 소견서 발급, 등급 판정 등의 절차가 어려워 아예 포기하는 노인도 많다.
■건강보험료 4.05% 올려 재원 마련
일반 시민들도 일단 새로운 노인 복지제도의 도입을 환영하면서도, 보험료 인상이란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는 데는 불만을 내비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으로 올해 7월부터 연말까지 소요될 예산은 8402억 원. 이중 약 33%인 3071억 원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으로 충당되지만, 5331억 원은 7월부터 전 국민의 건강보험료를 4.05% 더 올려 마련한다. 건강보험료가 월 6만원이던 사람은 한 달에 2430원, 10만원이면 4050원을 더 내야 한다. 2010년엔 노인 23만 명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예산 1조6911억 원이 마련돼야 한다. 이에 따라 노인장기요양보험 재원 마련을 위한 건강보험료 인상분만 2009년에 4.8%, 2010년 5.3%에 이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