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헬스조선 공동기획- 나의 희망이야기⑮
악성 방광암 극복한 박상호(59)씨
머리 속이 '댕, 댕' 울리는 것 같았다. 그럴 리가 없었다. 뭔가 잘못 된 게 틀림없었다. 몇 초 간 침묵 끝에 나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무슨 말씀이세요 선생님, 저는 술도 안하고 담배도 안 피웁니다. 음식도 몸에 좋은 것만 찾아서 먹어왔고, 고기도 잘 안 먹는단 말입니다."
내 고함소리가 애처로웠던지 의사선생님은 차트를 꺼내고 컴퓨터 화면을 띄워 방광에 생긴 암을 직접 보면서 설명해줬다. 영락 없는 암이었다.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의사선생님은 아무래도 30대 중반부터 한 달에 두 번씩 해오던 염색이 문제가 됐을 거라고 말했다. 눈이 침침하고 찝찝한 기분이 들어도 항상 반듯한 모습으로 보이길 원했던 나였기에 흰머리가 보이면 바로 염색을 하곤 했었다.
어떻게 해야 할 지 참담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병수발을 했던 아내, 아직 커 나갈 길이 아득한 어린 자식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하늘도 정말 무심했다. 내 마음은 점점 깊은 지옥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며칠을 밥도 못 먹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 이런 말씀을 하셨다.
'고생만 한 애들 어미와 아이들이 불쌍하지 않으냐. 나는 비록 먼저 떠났지만 너는 반드시 살아남아서 가족들을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 여태껏 그래왔듯이 훌훌 털고 일어나서 건강을 되찾아야 한다.'
평소 어머니 말씀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하는 나였기에 번쩍 정신이 들었다. 그 다음날 바로 마음을 고쳐 먹고, 수술 날짜를 잡아았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걸린 암은 방광암 중에서도 아주 드문 선종성(腺腫性) 악성종양이어서 수술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도 수술 후 경과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절망과 불안, 초조함 가운데 한 달이 지났고, 드디어 수술대에 누웠다.
죽을 줄만 알았던 내가 다시 눈을 떴다. 그런데 배 주변이 이상했다. 이상하게도 하루 종일 소변이 마렵지 않았다. 간호사 선생님은 방광이 없어졌으니 이제부터는 소변이 마려워서 누는 것이 아니라 배꼽 옆에 달린 소변 주머니로 오줌이 차면 비워야 한다고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줌 주머니를 비우는 것은 무척이나 번거롭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옆에서 누가 요로 호스를 잡아줘야 비워낼 수 있었다.
밤에는 요로 주머니에 특수 기구를 끼고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하지만 살아났다는 기쁨에 이런 고통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시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못 볼 것 같아서, 이 세상의 모든 것들과 이별해야 한다는 두려움에 잠 못 이룬 날들이 있었기에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내겐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수술 후 세 차례에 걸쳐 지옥을 넘나드는 항암치료와 수술 부위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스런 재활치료를 끝내고 다시 일터로도 돌아올 수 있었다. 의사선생님은 수술이 잘 된 것도 기적이고, 이렇게 회복이 빠른 것도 기적이라고 했다. 방광암은 재발이 잘 되는 암인데 3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암이 재발하지 않은 것 역시 기적이라고 했다. 내 행복은 이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터널이 어두울수록 빛은 밝다고 했던가? 좁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온 내게 지금 이 세상 모든 것들이 밝은 연두빛이다.
주치의 코멘트
“진행된 방광암도 포기 마세요”
박상호씨는 방광암 중에서도 2% 미만으로 발생하는 아주 예외적인 형태의 방광암이다. 적극적인 치료를 해도 5년 생존율이 40% 미만으로 알려져 있어 수술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광범위한 방광 절제술과 추가 항암화학 요법까지 시행한 결과 수술 후 3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재발 인자가 전혀 발견되지 않고 건강이 양호하다. 이제까지의 상태로 보아 완치 가능성도 매우 높다. 방광암이 많이 진행된 경우에도 적극적인 수술과 항암 요법으로 완치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