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생명공학 보도, 환자 고려해 신중해야
임호준
입력 2004/06/08 09:39
예를 들어 지난주에도 국내 한 국가 연구기관이 먹기만 하면 저절로 살이 빠지는 비만 치료제를 개발했으며, 쥐에게 실험한 결과 체중 감소 효과가 매우 뛰어났다는 뉴스가 대중의 관심을 집중시켰습니다. 신문과 방송에선 이제 2~3년만 지나면 우리 기술로 개발한 획기적 비만 치료제가 임상에서 사용될 것이라고 ‘섣불리’ 전망했습니다.
그러나 이 물질은 이제 막 동물 실험이 끝났을 뿐입니다. 사람에겐 전혀 효과가 없을 수도 있으며, 설혹 효과가 있다 해도 까다로운 독성 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동물실험에서 효과가 있는 물질이 치료제로 개발될 확률은 1000분의 1 정도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결국 ‘우리도 비만 치료제가 될 수 있는 유력한 후보 물질을 갖게 됐다’ 정도로 보도해야 할 것을 지나치게 의미를 부풀려 보도하는 바람에 연구 당사자에겐 상당한 당혹감을 안겨 줬을 테고, 대중에겐 실체도 불투명한 ‘헛된 믿음’을 안겨줬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만약 이 물질이 비만 치료제가 아니라 항암제나 불치병 치료제였다면 그 파장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1998년 전 세계 언론이 “암을 정복했다”고 대서특필한 미국 주다 포크만 박사의 신생혈관 억제 방식의 항암제가 얼마나 많은 암 환자에게 헛된 희망과 그보다 더 큰 좌절을 안겨줬는지는 언론학자들 사이에 두고두고 연구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21세기는 생명공학의 시대이며, 국내 과학자의 이 분야 연구 성과가 언론을 통해 잇따라 보도된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것을 보도함으로써 ‘배고픈’ 기초 과학도들을 격려하고 성원하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생명공학 분야의 연구 업적을 보도할 땐 그 연구에 사활을 걸고 있는 환자가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언론은 보다 신중하게 보도함으로써 절박한 환자들에게 헛된 믿음과 좌절을 주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 임호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