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이유 없이 시름시름, 나도 혹시 잠수병?

주간조선

통영에 고압산소치료실 갖춘 국내 유일의 잠수병 전문 민간클리닉 문 열어
스쿠버다이빙 인구 늘면서 환자 급증…원인 못찾고 병원 헤매며 이중고
잠수병 환자 연 1000여명 추정 … 다이빙한 뒤 비행기 타면 더 위험

지난 8월 24일 경상남도 통영의 통영세계로병원 고압산소치료실. 10평 남짓한 공간을 절반 정도 메운 길이 1.8m, 폭 1.4m의 쇠로 만든 거대한 원통이 눈에 들어왔다. 원통은 고압 챔버(잠수 재현 장치)라고 불리는 치료기기였다. 챔버 안에는 4명의 잠수병 환자가 환자복을 입고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흡’ 하고 숨을 들이마시고 ‘휘’ 하고 내뱉는 소리가 챔버 밖에서도 들렸다.

챔버 외벽에는 산소의 공급과 내부 압력을 조절하는 밸브가 달려 있었고, 운용기사가 모니터와 작은 원형 창을 통해서 환자의 상황을 점검하고 있었다. 환자들은 눕거나 앉아서 책을 보고 있어 편안해 보였다. 주진수(32) 고압산소치료실장은 “챔버 안의 압력은 물밑으로 60피트(18m) 들어갔을 때와 같다”며 “그 상태에서 20분간 고압의 산소를 마시다가 5분간 마스크를 벗고 챔버 안의 공기를 마시는 식으로 2~5시간 정도 있게 된다”고 말했다.

올해 7월 문을 연 경상남도 통영의 통영세계로병원은 국내 민간병원으로서는 유일하게 잠수병 치료 전문 클리닉을 갖추고 있다. 잠수병은 깊은 물 속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나오면 걸리는 병으로 ‘감압(減壓)병’이라고도 불리며, 증상은 약하면 피곤함을 느끼는 정도지만 심하면 죽음에 이르기도 한다.

잠수병에 걸리면 진해의 해군 해양의료원에서 응급치료를 받을 수 있으나 훈련 중이거나 주말에는 개방을 하지 않아 해녀, 스쿠버다이버, 수중작업자 등 민간인이 이용하기는 불편함이 많았다. 또 전문 의사의 처방 없이 사설 챔버를 만들어 놓고 치료를 하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다.

잠수병 치료에는 바다 밑과 같은 압력을 만들어주는 고압 챔버가 필수적이다. 고압 챔버를 이용해 압력을 가한 뒤 산소와 공기를 이용해서 혈액에 녹아들었던 질소를 서서히 빼내고 깨끗한 산소를 공급해주는 게 치료의 핵심이다. 통영세계로병원에는 4인용 고압 챔버가 설치돼 있다. 고압 챔버는 현재 국내에서 해군과 통영세계로병원 외에 부산 고신대학교병원에 1인용 챔버가 설치돼 있다.


▲ 고압챔버 내에서 치료받는 모습. 환자들이 산소마스크로 고압산소를 마시고 있다.
김희덕(45) 원장은 11년간 해군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며 잠수의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했고 매년 80~90명의 잠수병 환자를 진료한 경험이 있다. 그 경험을 살려 2002년 중령으로 예편한 후에 통영에 고압산소치료실을 갖춘 개인의원을 차리고 일반 환자의 잠수병 치료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소규모 의원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올해는 주변의 투자를 받고 전문의 6명을 영입해서 110 병상 규모의 병원으로 확대했다.

잠수병은 국내에서 연간 1000여명이 걸리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증상이 다양하고 잠수병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아 자신이 병에 걸렸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2003년 여름 부산에서 김씨의 의원을 찾은 20대 여성 A씨의 경우는 가슴 아래를 콕콕 찌르는 느낌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지만 아무리 부산 시내의 병원들을 다녀봐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정신병 치료를 받으라는 의사까지 있었다고 한다. 스쿠버다이빙을 10회 정도 했었다는 그 여성은 김씨의 치료를 받고 “선생님만이 나를 환자로 인정해줬다”며 울먹였다고 한다.

또 작년엔 30대 남성 B씨가 해외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돌아와서는 “피곤해서 못 살겠다”며 김씨를 찾았다. 환자는 3개월간 서울에서 병원을 헤매다녔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신혼여행을 갔다가 현지에서 다이빙 체험을 했다가 잠수병에 걸렸던 것. 그는 고압 챔버에서 3일간 치료를 받고 완치했다. 김씨는 “스쿠버다이빙의 교과서는 서양인의 신체조건에 맞춰 제작돼 있어 한국인은 그대로 따라하더라도 잠수병에 걸릴 수 있다”며 “우리나라 다이버의 경우 잠수병에 대한 교육이 허술하고 신체검사도 대충하는 경향이 있어 외국에 비해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엔 주 5일 근무제가 확산되어 스쿠버다이빙 인구가 10만명 정도로 급증하면서 잠수병도 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잠수병 예방을 위해서는 무리를 하지 않는 게 제일 중요하다.


▲ 김희덕 원장이 고압챔버 작동법을 설명하고 있다.
주말을 이용한 다이빙은 무리를 할 가능성이 높다. 서울에서 금요일 일과를 마치고 비행기를 타고 동해안이나 제주도에 갔다가 토요일·일요일 연속으로 다이빙을 하고는 일요일 저녁에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경우엔 잠수병에 걸릴 확률이 더 높아진다. 잠수병은 기압이 낮아지면서 걸리는 병인데 비행기를 타면 기압이 낮아지기 때문.

또 충분한 휴식이 없는 연속 다이빙도 체내에 녹아든 질소 등이 빠질 시간이 충분하지 않아 위험하다. 김씨는 “다이빙 하는 사람 중에 동해안에 갔다가 대관령을 넘을 때 ‘아찔하다’는 분이 있는데, 300m 이상의 고개를 넘어갈 때 잠수병 증상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식이 아니라 경험에 의존한 다이빙 교육도 주의해야 한다. 특히 인터넷상을 돌아다니는 잘못된 정보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다이빙을 하게 되면 몸 속에 공기가 들어가는 부분(귀·폐·위 등)은 모두 압력의 영향을 받아 수축했다가 팽창하게 되므로 그 부분에 병이 있거나 수술을 받은 경우엔 신경을 써야 한다. 일례로 “나는 콩팥 수술을 받고도 다이빙에 문제가 없었다.

따라서 위 절제 수술을 받았어도 다이빙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글이 최근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위를 잘라낸 경우엔 잠수할 때 작아진 위안의 공기가 부풀면서 구토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또 놀라서 급상승하다가 잠수병에 걸릴 위험도 높다. 따라서 깊이 들어가지 말고 천천히 떠오르는 등 주의를 해야 한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잠수병이 심한 경우는 사지마비가 오거나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신속한 이송이 중요하다. 김씨의 휴대전화 끝 번호는 0365다. 잠수병 치료를 위해 365일 24시간 언제든지 전화를 받겠다는 뜻이다. 미국 해군 교범에 따르면 12시간 이내에 고압 챔버 치료를 하면 효과가 빠르다고 한다. 발병 후 3일 이전에 찾아 오면 1~2번 치료로 회복이 가능하지만 3일이 넘어가면 3~10번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송할 때 비행기를 이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기압의 변화 때문이다. 통영세계로병원에선 되도록 자동차·배를 이용해서 평지를 지나 오도록 당부한다.

고압 챔버를 이용한 치료는 잠수병뿐만 아니라 산소의 공급으로 증세가 호전될 수 있는 각종 질병의 치료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예컨대 당뇨병으로 인해 발가락과 다리에서 괴사(壞死·생체 조직 일부가 죽는 것) 현상이 나타나는 경우에 이를 막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당뇨병에 걸리면 혈액 중에 당이 많아져 말초 혈관까지 영양소와 산소 공급이 안 되므로 발가락 등 끝부분의 조직이 죽어 수술로 절단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고압 챔버 안에서는 산소가 혈액뿐 아니라 조직액에 직접 녹아들어가 영양소를 옮겨주므로 말단 조직이 죽는 것을 막고 되살리는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쉽게 상처가 아물지 않는 경우에도 산소의 공급을 늘려주고 혈액순환을 활발하게 해서 상처를 아물게 한다. 산소를 싫어하는 균(혐기성 세균)에 감염된 경우엔 고압으로 몸에 산소를 흡수시켜 치료하기도 한다. 고압 챔버를 이용한 치료 중에는 잠수병 외에도 ▲연탄가스 중독 ▲화상 ▲당뇨에 의한 합병증 ▲버거씨병 등이 의료보험 청구에서 인정된다.

고압 챔버를 이용한 치료에도 부작용이 있다. 우리 몸에 공기가 들어가는 부분인 귀·폐 등은 압력을 가하면 줄었다가 압력이 풀어지면 팽창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병이 있는 경우에는 이용할 수 없다. 때문에 감기에 걸린 경우에도 고압 챔버에 들어가면 위험할 수 있다.

압력 평형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용할 수 없다. 우리 몸은 외부의 기압이 달라지면 침을 꿀꺽 삼키는 등의 행동을 하면 자동으로 외부와 내부의 압력을 맞춰주는 기능이 있지만 이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또 산소에 민감한 사람은 산소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때문에 일견 잠수병이 고압 챔버만 있으면 간단하게 치료가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전문의사의 진찰과 처방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간조선 1870호 게재분

( 주간조선 기자 banghc@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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