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4-27

독일에서 만난 나의 운명, 인공디스크… 한국인 체형에 딱 맞추기까지

인공디스크와의 만남
디스크가 탄생한 나라 독일 베를린. 2000년 9월 이곳에서 ‘제1회 세계척추학회’가 열렸다. 나 역시 이 학회에 초대받아 ‘걸어 다니는 허리디스크 시술’과 ‘튀어나온 디스크를 주사로 분해시키는 치료법’에 대해 발표했는데, 당시 학회 참석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받았다.

발표를 끝내고 내려오자 한 독일 의사가 내게 찾아왔다.
“발표 내용을 인상 깊게 잘 들었습니다. 혹시 인공디스크에는 관심 없으신가요?”

사실 난 그때까지 허리디스크에 다양한 비수술적 치료와 수술을 하면서도 늘 갈증이 있었다. 아무리 주사 치료와 수술적 치료를 시행해도 망가질 대로 망가진 허리 디스크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무릎의 경우 연골이 닳아지면 주사치료를 시도하다 끝내 안 될 경우 인공관절을 삽입할 수 있었다. 이처럼 허리디스크 또한 근원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생각했지만, 당시 국내에서는 ‘유합술’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물론 척추 전문 신경외과 전문의이다 보니 인공디스크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다만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더 컸다. 그런데 독일 의사의 제안으로 인공디스크치환술 장면을 직접 보게 됐고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동시에 ‘아, 이 방법은 분명 환자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리고 이 좋은 걸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카메라로 모든 수술 장면을 담기 시작했다. 다행히 기존에 허리디스크 수술을 해왔던 터라 어느 정도 중점적인 부분만 익히면 되는 상황이었다.

작지만 강한 나라, 작지만 강한 인공디스크 
당시 직항이 없어 베를린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돌아가면 환자를 더 잘 고칠 수 있단 생각에 돌아오는 시간이 짧게만 느껴졌고 돌아오는 내내 인공디스크치환술을 생각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수술에서 어느 포인트가 어떻게 되고 어디서 어떻게 넘어갈지, 일종의 인공디스크치환술 시뮬레이션을 펼쳤다. 당시만 해도 척추까지 도달하는 팀과 디스크를 집어넣는 팀, 두 팀으로 나누는 방식이라 수술 시간이 8~9시간 정도 소요됐는데, 나는 이 시간을 줄이고자 처음부터 한 팀으로 구성하려 했다.

더불어 우리나라 사람 체형에 맞는 인공디스크의 필요성을 느꼈다. 아무래도 인공디스크는 독일에서 처음 개발한 거라 유럽인 체형에 맞는 형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럽인과 우리의 얼굴이 다르듯 척추 모양 역시 다르다. 그들의 척추는 앞이 짧고 옆이 넓은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옆이 작고 앞뒤가 깊다. 이러한 연구 끝에 우리와 같이 아시아인이 사용해야 할 인공디스크는 폭이 조금 작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2008년 5월 이에 맞는 인공디스크를 개발해 특허출원을 진행했다. 평소 의학도 과학의 한 부분이라 믿어왔는데, 이를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후 강남베드로병원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인공디스크 수련센터로도 지정됐다. 아시아인 체형에맞는 인공디스크를 개발했으니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지만, 마치 최적화 인공디스크 의료기술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것 같아 감격스러웠다. 이는 인공디스크 수련센터 본원이 미국에 있어 중국, 인도, 일본,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에 위치한 의사들의 지리적 어려움을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수련은 1년을 4분기로 나눠 매 분기마다 5명에서 10명 정도의 의사들이 방한해 우리 병원에서 일주일 정도 교육을 받는 식으로 진행했다.

심지어 2012년 스탠퍼드대학의 척추수술팀과 기술 제휴 협정을 맺어 우리 병원이 보유한 척추 수술 노하우를 전 세계적으로 공인받기도 했다. 또 나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직접 내 몸에 인공디스크를 삽입하는 등 인공디스크의 안정성과 우수성을 몸소 경험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인공디스크치환술 50례, 100례, 500례, 1000례…, 4000례까지 집도했고 마침내 인공디스크치환술의 ‘마이스터’ 경지에 오를 수 있었다.

의학은 과학이다
직립보행으로 살아가는 숙명을 지닌 순간부터 척추 질병에 시달려 온 인류. 실제로 선사시대 신석기인의 유골에서도 척추결핵을 추정할 수 있는 흔적이 발견된 바 있다. 이러한 척추 질환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심지어 과학이 발달할수록 점차 더 심각해지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의학은 과학이다. 이는 과학에 분명 낡음과 새로움이 있듯이, 의학에도 낡음과 새로움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나는 이토록 멋진 인공디스크를 발견해 국내에 도입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의사로서 막중한 책임감과 새로운 것을 향한 도전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 한다. 허리를 고치는 신경외과 전문의이자, 동시에 인공디스크를 몸속에 보유한 한 사람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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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허리디스크 환자였다

[강남베드로병원]
윤강준 대표원장

- 강남베드로병원 대표원장(신경외과 전문의)
- 미국 예일대학교 신경외과 교환교수
-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미국 윌체 척추연구소 연수
- 세계 인공디스크학회 종신회원
- 근로복지공단 산업재해 보험 자문의사
- 대한장애인아이스하키협회 회장
- 대한오존의학협회 부회장

- 속초고등학교 졸업
- 부산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 박사학위 취득

허리와 다리의 극심한 통증을 몸소 겪었던 신경외과 전문의가 직접 들려주는 척추 건강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