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5-28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에이즈 감염자를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문란하고 사회적으로 지탄받아 마땅한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바로 옆에서 대해보지 않고 정보를 통해 에이즈 감염자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을 사회로부터 동정의 여지가 없는 사람들로 생각하기 쉽다. 특히 감염된 경로가 성적으로 매개되고 동성애자 사이의 감염이 많다는 사실이 일반인들로 하여금 에이즈의 감염이 비윤리적 산물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선진국에서 발생했던 에이즈는 아프리카대륙을 황폐하게 만든 후 현재는 아시아지역에서의 발생 례가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감염인 수가 늘어나 4,500명을 넘어섰고 실제 감염자의 수를 만 명 이상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이제 국내에서건 외국체류경험자건 성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심한 에이즈 감염공포를 가지게 되어 진료실에서 상담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에이즈는 성매개 질병중 요도염과 같이 명백한 증상과 짧은 잠복기의 질환에 대비하여 다양하게 발현되는 잠복기 때문에 충분한 기간 동안 추적검사를 해야 하는 부담이 더욱 신경병적 공포감을 유발하게 된다. 필자는 진단 추적 검사에 대한 설명을 하면서, 불안증에 시달리는 많은 환자들과 공감하며 격려를 전하는데 그 이유는 필자가 그 장기간의 추적검사를 통해 신경병적 불안증세에 관한 한 선배이기 때문이다.
오래전 유럽에서 수술을 받으면서 수혈을 받은 경력의 아프리카 국가의 외교관 한분이 골반부위의 드문 질병으로 비뇨기과를 찾아오셨다. 당시 외국인진료소 비뇨기과 교수를 맡고 있었던 필자는 요로점막과 직장부위의 점막이 누공이 생긴 드문 병으로 진단하고 문헌검색을 해보니 에이즈감염인의 합병증일 수 있었고 검사결과 에이즈 바이러스 양성 환자로 밝혀졌다. 누공에 대한 진단과정에서 진행한 내시경 검사, 도관 유치 등 숱한 진단과정에서 환자의 소변과 분비물에 맨손으로 노출되었던 상황에서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바이러스 농도가 많은 소변을 다루었던 전공의들과 필자는 그 이후 정기적인 검사를 받아야 했다. 3개월에 한번씩 1년 동안 혈액검사를 추적해서 진행하였는데 검사를 알리는 빨간 봉투에 담긴 편지를 받으면 혹시나 하는 맘에 불안 해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처음 환자에게 노출된 재해교직원이라는 딱지를 책상에 놓는 순간 왜 좀 더 철저히 보호장구를 착용하지 않았는지 머리를 쥐어 뜯으며 후회 하였고, 손에 난 상처가 그렇게도 원망스러웠으며, 감염경로를 머리에 그리며 머릿속이 뱅뱅도는 두통 때문에 왼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위로해 보려고 알코올에도 기대보았지만 이 또한 두통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었고, 퇴근해서 가족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 속에 눈물만 흘렀다. 말 수가 적어지는 얼굴 굳은 가장이 되어가고 어린 남매와 스킨십도 죄스러워 맘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급기야 잦은 부부싸움을 만들었다. 빨간 봉투를 받는 입장을 설명하기도 힘들었고 당시만 해도 치료제에 대한 실험적 자료만 보고될 때이니 화창한 날씨가 원망스럽고, 향기로운 꽃이 미워 보이는 하루하루였다.
1년여의 검사기간 동안 빨간봉투의 공포를 잘 이겨내고 긴 터널을 빠져나와 항체 음성이라는 보고를 받고서 아내에게 그동안의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무덤덤히 ‘그런 일이 있었는가?’식의 화답을 들으면서 에이즈공포라는 것이 그 신경병증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 에이즈 극복의 노력이 지속적인 치료법의 발전으로 나타나 불치의 병이라기 보다는 만성적 질환의 하나로 간주하는 시대가 되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 속에서 자포자기와 절망과 같은 정신적 혼돈을 경험하게 되고, 노출에 대한 두려움으로 은둔하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게 감염사실을 숨기고 은둔하는 것 자체가 에이즈의 확산을 크게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예방차원에서도 이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에이즈는 하나의 성매개 전염병으로 의학적으로 조절 가능한 만성감염질환으로 간주되는 시대임을 모두가 인식해야만 일반인들이 에이즈 감염공포에 대한 불안 신경증이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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