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3-14


 화제를 모았던 의학드라마 ‘하얀거탑(MBC-TV)’은 야심만만한 천재 외과의사 장준혁 과장의 담관암 사망으로 지난 11일 끝을 맺었다.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외과의사 봉달희(SBS-TV)’도 등장 인물간 얽히고 설킨 갈등이 조금씩 정리되고, 주인공은 꽤 숙련된 외과의사로 성장하고 있다. 의사에 대한 불신과 오해가 팽배한 상황에서 그들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엿볼 수 있는 의학드라마가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의학기자 입장에서 퍽이나 다행스런 일이다.

두 드라마는 예전 의학드라마와 달리 순전히 외과 의사의 세계만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출세를 위한 비정한 암투(하얀거탑)와 애정 관계(외과의사 봉달희)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그 사이사이 시청자들은 아마도 꺼져가는 생명과 촌각(寸刻)의 사투를 벌이는 외과의사의 세계를 조금은 이해하게 됐고, 그들의 노고(勞苦)와 직업정신에 공감(共感)과 존경을 느꼈을 것이다.

‘봉달희’를 함께 보던 고등학생 딸이 언젠가 “안중근 ‘짱’ 멋있어! 아빠, 의사는 외과 의사가 진짜 의사지?”라고 물었다. 제왕처럼 화려하게 묘사된 외과 의사 권위에 고무됐는지 아내도 “우리도 의사 사위 볼까?”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 드라마가 한껏 미화시킨 외과 의사는 현실에서 그렇게 ‘충분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드라마 속 외과 과장 사무실은 재벌 회장 뺨칠 정도로 호사스럽지만 현실에선 그 3분의 1에도 못 미치며, 책과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손님이 와도 앉을 자리도 없다.

외과 교수 봉급은 같은 나이 대기업 직장인보다 조금 많은 정도여서 장과장처럼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탈 수도 없다. 더군다나 그들은 1년365일 새벽에 출근해서 밤 늦게 퇴근하므로 드라마에서처럼 그렇게 말끔하지 못하다. 딸 가진 부모 입장에서 보면 사윗감으로 그다지 고려하고 싶지 않은 직업이다. 다른 과 의사라면 모를까….

이런 처지를 가장 잘 아는 것이 의대생이다. 그들은 10년쯤 전부터 외과를 기피해 왔다. 최상위 몇몇 대학병원을 제외하면 외과는 항상 미달이며, 어떤 지방대학 병원은 10년 가까이 지망자가 없어 병원 운영에 심각한 지장을 받고 있다.

가혹하리만큼 노동 강도가 센데다, 의료 사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고, 개업해서 돈 벌 가능성도 거의 없으니 머리 좋은 의대생이 ‘당연히’ 기피하는 것이다. “병들었을 때 내 간과 심장을 수술할 의사를 동남아에서 수입해야 할 지 모른다”는 말이 의료계에선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외과 의사는 도전해 볼만한 멋진 직업이고, 그들의 직업정신은 우리 생명과 직결돼 있다. 당연히 최고의 의사들이 도전해야 하며, 도전해서 성취한 자에겐 충분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산다. 드라마를 보고 있자니 도전을 가로막는 현실 구조적인 장벽들과 그 장벽에 막혀 꿈을 접는 젊은 의대생들이 떠 올라 가슴이 답답했다.

/ 임호준 Health 편집장 hjl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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