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7-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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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보다 성공이 두려운 사람도 있다?
가끔 보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누가 봐도 조건도 좋고 성격까지 괜찮은 훈남과 복잡한 집안에 불투명한 미래, 성격까지 만만치 않은 까칠남 사이에서 방황을 합니다. 정답을 찾기 위한 고민은 단 1초도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웬걸, 까칠남을 선택해버립니다.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왜 그랬지?”라며 어찌되면 예정돼 있던 우울한 삶을 토로하며 연민을 자아냅니다.
일을 할 때에도 그렇습니다. 능력을 인정 받아 동기들보다 먼저 승진을 할 기회가 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직전에 어이없는 실수를 하거나 원칙문제를 놓고 상사와 각을 세우다가 물을 먹게 됩니다. 결국 실패를 하고야 말죠. 그리고 “난 역시 안 돼”라고 징징대며 주변의 동정을 구합니다. 사서 하는 자학. ‘왜 저리 사냐’ 싶습니다.
누가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특별한 대의로 똘똘 뭉친 것도 아닌데, 스스로를 순교자, 희생자로 포장하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화려한 금메달리스트보다는 정상 문턱에서 뜻밖의 부상으로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던 2인자의 이미지를 선호합니다.
1등 앞에서 항상 좌절하는 이들. ‘성공 공포증(success phobia)’ 때문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부러움과 질시를 견디는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겁니다. 부러워할 만한 자리에 오르거나, 물건을 갖게 되면 그 상황을 즐기지 못합니다.
자기 노력의 결과거나 행운으로 받아들이고 신나게 그 순간을 즐겨도 모자랄 판에 불특정 다수가 부러워하며 쏘아대는 시선이 따가워서 견디질 못합니다. 질투란 감정이 갖는 포스가 얼마나 강렬한지 잘 알기 때문에 타인의 질투의 대상이 되느니 차라리 포기해버리는 자폭적 선택을 합니다.
이럴 때 합리성이란 자아기제가 의식 차원에서 반대를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개 다른 대승적 이유를 대거나, 무의식적으로 돌이키기 힘든 선택을 해서 기회를 스스로 잃어버립니다. ‘표적’이 되어 미움을 받느니 차라리 포기하고 나서 자기 연민에 푹 빠진 다음 주위의 위로와 동정을 받는 쪽을 택하는 것입니다.
원래 가진 것이 많은 사람보다는 각고의 노력 끝에 고지 바로 앞에 선 사람들에게서 이런 행동을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새 차를 산 후 며칠 만에 접촉사고를 내는 것도 모두 이런 심리의 발로 중 하나입니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본인의 소망이 강렬해질수록 막상 그 선물이 내게 돌아올 때 덤으로 묻어올 질투의 기운은 비현실적으로 강하게 느껴질 겁니다. 때문에 요즘 소심한 자기파괴적 선택과 자기연민의 사이클로 무장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것 같습니다. 좀 견뎌봅시다. 그러다 보면 자기연민파인 당신도 질시의 레이저포에 의연히 대처할 수 있는 내성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물론 내성이 도를 넘으면, 그것 또한 보기 민망한 상황이지만요.
/ 건국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
수 많은 집착 속에서 현대인은 어느 덧 '중독' 증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시대의 중독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