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9-14
추석이 며칠 남지 않은 날 저녁에 동서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서의 친정 아버지께서 목욕탕에서 쓰러지셔서 분당에 있는 모 대학병원의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계신다는 소식이었다. 전화의 용건은 입원이 필요하다는데 입원실이 만원이라 응급실에서 5일 이상 기다려야 입원이 가능할 것 같으니, 평소에 치료 받으러 다니던 서울의 대형 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내가 대학병원에서 오래 근무하고 전공 학회에서 활동한 경력 때문에 같은 분야를 전공하는 대학 교수들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하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입원실 찾기는 그 대학병원의 교수들한테도 어려운 일이라서 “지금은 늦었으니 내일 출근하는 대로 알아보겠다”는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동서는 “쇼크이고 배에 문제가 있는 듯 하다”고 간단히 전했지만, 신장내과 의사인 나는 당뇨병과 당뇨병의 합병증으로 신장기능에 문제가 있는 80세 가까운 노인의 쇼크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고 생명이 위독한 중한 상태는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다음 날 출근하자 마자 동서의 시아버지께서 치료받고 있는 병원의 신장내과 교수들께 전화를 해 보았지만 회진시간이라서 그런지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전화한 동서의 목소리는 다급했고, 환자는 혈압이 겨우 유지될 뿐, 의식이 흐리다고 했다. 교수들에게 문자, 이메일을 보내고, 외래를 보는 후배 교수한테는 간호사에게 부탁해서 쪽지까지 보내 두었다. 다시 연락이 된 동서에게 응급실에서 치료하는 주치의가 누군지, 무슨 과에서 책임을 맡고 있는지 물었으나, 그저 내과라고만 할 뿐 어느 의사에게 무얼 물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허둥댔다. 다행히 응급실에서 환자를 책임지고 있는 응급의학과 수련의와 통화를 하게 되었는데, 환자의 상태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해서 소생할 수 없을 것 같은 걱정이 더 많아졌다. 다행히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기고, 필요한 조치를 다하고 있다는 소식을 동서를 통해서도 듣고, 또 내가 부탁을 했던 두 분 교수들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두 분 교수 모두 환자의 상태에 대해서는 “매우 위중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서 꽤 늦은 저녁인데, 이번에는 시동생이 전화를 했다. “환자는 중환자실에서 응급 혈액투석을 비롯한 필요한 처치를 받고 있는데, 상태는 매우 안 좋다. 아들들이 더 큰 병원으로 모시고 싶어하는데 내 의견은 어떤지” 묻는 전화였다. 내 경험에 의하면 그 정도 상태이면 24시간 혈액투석기가 연결되어 있고, 인공 호흡기, 혈압을 유지하기 위한 정맥주사, 항생제 주사 등 환자 한 사람에게 달려 있는 생명 줄이 4-5개 될 것이고 그 중 어느 하나라도 연결이 잘못되는 경우에는 생명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험하다. 따라서 그 상태에서 환자를 옮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그 밤에 어느 대형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모든 장치를 준비해 놓고 환자를 받아 줄 수 있을까? 시동생에게는 그 병원에 근무하는 권위 있는 교수들에게 부탁을 해 놓았고, 또 제대로 치료하고 있는 것이 맞으니, 위험한 생각을 하지 말고 그 쪽 주치의를 믿고 따르라고 권했다. 안타깝게도 환자는 마지막 전화를 받은 지 4시간 후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환자가 돌아가신 다음날 동서와 다시 전화를 하는데 내가 여기 저기 부탁하고 애써줘서 고맙다고 하는 말 끝에 “형님, 여기서 최선을 다해서 치료한 것 맞겠죠? 뭐 의료 사고나 소홀히 해서 이렇게 허무하게 가신 것은 아니겠죠?” 하는데 “고인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뿐만 아니라, 의료진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소위 말하는 빅5병원에서 치료받아야 만최선을 다하고, 제대로 효도했다고 인정하는 통념을 확인하는 듯해서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의사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은 이 환자를 치료하는 데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여기에 의사와 환자 간의 상호 신뢰가 구축되어야만 의사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최대한 환자에게 쏟아 부을 수 있다. 환자 혹은 의사 표시가 불가능한 환자에서는 보호자가 담당의사를 신뢰하지 않으면 의사는 방어적인 치료를 하게 되고, 이 때 최선을 선택하기 보다는 의사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치료를 선택하게 되어서 치료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의료계의 공룡인 빅5병원이 다른 대형 병원들과 비교하여 시설과 의료기기 등을 더 풍부하게 갖추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병원들의 의료진의 지식이나 경험 그리고 환자를 잘 치료하고자 하는 열정과 사명감이 부족하다는 인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주치의를 신뢰하고 주치의에게 힘을 실어 줄 때 비로서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의료진과 병원을 신뢰하지 않는 환자나 보호자에게는 섭섭하지만, 병원과 의료진에게도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다급한 상황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는 환자나 보호자에게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거나 앞으로의 치료과정을 설명하는 노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환자의 상태가 위중하니 환자 치료가 급선무인 것도 인정하지만, 환자를 믿고 맡기는 신뢰를 사는 일이 앞으로 최선의 치료에 꼭 필요하다. 환자의 보호자에게 누가 담당 교수이고, 누가 환자를 일선에서 돌보는 주치의인지 확실하게 알려주고, 필요할 때 어느 의사에게 의논할 수 있는지 미리 미리 알려 주면 “아직 의사 얼굴도 못 봤어요”, “인턴만 다녀갔어요 (보호자들은 젊은 의사는 누구나 인턴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하면서 우왕좌왕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응급실 주치의부터 병실에 올라가서 담당할 전문의까지 책임지는 의사를 분명하게 밝혀 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환자를 병원에 맡긴 보호자는 믿고 의지할 의료진이 필요하고, 그렇게 필요한 의료진이 스스로 책임지고 치료하겠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치료에 임하면 환자나 보호자는 더욱 믿음직할 것 같다. 누가 주치의 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의료진에게 믿고 맡기라는 것은 허무한 구호에 지나지 않다.
빅 5 병원을 찾고자 하는 심정도 이런 의료진에 대한 신뢰 구축에 실패한 결과로 생각이 든다. 주치의를 모른다는 것은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없다는 것이고,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치료에 대해서도 확신을 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브랜드라도 믿어 보자는 심정은 아닐지? 이만큼 유명하고 큰 병원이면 담당 주치의는 누군지 몰라도 치료를 잘 할 것이라는 의료진에 대한 신뢰가 아니라 병원의 규모와 브랜드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작아도 알찬 병원, 의료진에게 신뢰가 가는 병원이 좋은 병원이라는 인식이 확산될 수 있기를 빈다. 치료는 의료진이 하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담당 주치의와 전문의가 환자에게는 부모님 같이 믿음직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큰집의 부자 부모만 믿음직한 부모가 아니고, 자식을 진정 사랑하고 장래를 위해서 힘쓰는 부모가 믿음직한 부모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병원과 의료진의 역할도 이와 다르지 안다. 작아도 신뢰를 주는 의사가 있는 병원이 많이 생기길 바란다.
박민선원장과 함께 알아보는 활성산소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