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7-19
오늘 외래를 방문한 A씨는 53세 남자다. 키는 약 165cm 정도 되는데 체중은 46Kg으로 야윈 체격이었고, 환자를 진료실로 안내한 외래 조무사는 “환자가 많이 야위고 지나치게 창백해요”라고 전해주었다. A씨는 “지난 수개월 간 지속된 걸을 때 숨이 차는 증상과 손발이 저림을 호소했다. 같은 증상으로 여러 병원을 거쳤으나 심장과 폐에 이상이 없다는 결과만 들었다고 하면서 혹시 말초 혈류 장애가 아닌가 해서 우리 병원을 찾았다”고 했다. 환자는 혈색이 매우 창백했고, 심박동 맥박이 1분에 120번으로 매우 빨랐다. 최근 5개월 동안 약 5키로 그램 정도의 체중 감소가 있었다. 심한 빈혈에 의한 맥박 증가로 생각하고 빈혈 검사를 한 결과 혈색소가 5.0 gr/dL (정상 범위 13.0-15.0 gr/dL)로 정상의 약 1/3 수준이었다. 정기적인 생리 출혈이 있고 출산 등으로 출혈의 기회가 많은 여성과 달리 남성에서는 빈혈이 흔하지 않다. 특히 A시와 같이 심한 빈혈이 있고, 체중 감소가 동반된 경우에는 숨어 있는 암이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A씨는 심장이 뛰고 숨이 차는 증상이 있어서 우리병원을 방문하기 일주일 전에도 개인의원과 대학병원 심장내과에서 진료를 받았으나, 혈액검사는 하지 않고 엑스레이 검사, 폐기능 검사, 심장 초음파 검사, 24시간 심전도 검사 등 특수 검사를 받은 후에 이상이 없다는 결과를 들었다. 빈혈 가능성에 대해서는 들어 보지 못했다고 한다.
우리 병원에 고지혈증을 치료하기 위하여 다니고 있는 40대 여성 B씨는 최근 경추 추간판탈출증 (목디스크)로 진단받고 치료 중이다. 처음 증상이 시작했을 때부터 방사선과 의사, 신경외과 의사, 2 명의 재확의학과 의사 등에게 진찰을 받았다. 말이 진찰이지 실제로 아픈 부위를 만지면서 진찰한 사람은 재활의학과 의사 한 명과 신경외과 의사 한 명이었고, 나머지 의사 두 명은 컴퓨터에 있는 MRI와 CT 감사 결과를 보면서 B씨의 말을 몇 마디 듣더니 처방을 해 주었다. 직접 환부를 만져보는 진찰은 하지 않고 처방을 해 주었다고 섭섭해 했다. 추간판출출증에서 발생하는 통증은 추간판 탈출에 의해서 신경이 눌려서 오는 증상과 추간판 탈출부위 근육이 뭉쳐서 오는 근육통이 대부분 같이 존재한다. 따라서 아픈 부위가 신경의 주행에 다라 아픈 것인지, 근육이 뭉쳐서 더 심해지는 것인지는 환자가 말하는 증상과 손으로 직접 만져 보는 진찰을 통해서 판단해야 한다.
환자를 진찰하는 것은 환자가 진료실 문을 열고 걸어 들어 오는 모습부터, 아픈 부위를 눈으로 확인하는 시진, 아픈 부위를 만져 보는 촉진, 아픈 부위를 들어 보는 청진 등이 포함되고 환자가 설명하는 증상을 경청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 필요한 검사를 시행하고 검사결과가 진찰 소견과 맞는지, 맞으면 어떤 치료를 해야 하는지, 맞지 않는다면 그 다음 단계는 무었인지 결정해야 한다. 최근에 검사 결과만 보아도 무슨 병이 있는 지 척하고 알만큼 진단 검사가 발달했다. 그러나 아무리 검사기법이 발달했다고 해도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과 진찰에서 발견한 것과 검사의 결과가 일치해야 가치가 있다. A씨의 경우 빈혈은 의사가 아닌 간호 조무사가 보기에도 빈혈을 의심할 만큼 창백한 것을 훌륭한 검사를 모두 시행한 전문의가 놓지고 말았다. 통증의 원인이 복합적인 디스크 환자를 치료하는 전문의들이 직접 진찰을 하지 않는다면 통증의 주된 원인을 감별해서 찾아 내기 어려울 것이다.
검사결과에 집착하고 환자를 보지 않는 경향은 검사를 남발하고도 치료는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환자의 호소에 귀 기울여 주고 꼼꼼히 진찰하면 환자는 의사를 신뢰하게 되고, 치료에 대한 신뢰도 높아진다. 반대로 의사가 환자의 호소에 귀 기울이지 않고 검사결과에만 집중하면 환자와 의사 사이의 신뢰가 생길 수 없고, 이 경우 환자는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의견을 구하게 된다. 이는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지고, 의료보험 재정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의학이 순수과학이 아닌 것은 과학적인 결과가 각 환자에서는 다른 임상 증상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의 증상과 진찰 결과 그리고 과학적인 검사 결과를 종합해야 정답이 나오는 오묘한 학문이다. 환자에 집중하고 환자의 말을 경청하는 명의가 많이 나오길 기대하면서, 다시는 A씨나 B씨처럼 환자에 집중하지 않는 의사들에게 섭섭한 환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
박민선원장과 함께 알아보는 활성산소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