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6-12-01

힘겹게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기쁘지 않았습니다. 감격적이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절망감이 밀려들 뿐이었습니다.

오늘 춘천 호반마라톤축제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역시 과욕이었슴다>

오늘 30km를 뛰었습니다. 춘천코스 사전 답사도 하고 LSD 삼아 출전한 대회였습니다. 부원들이나 주변 분들에겐 "3시간30분 안에 들어오면 되지요, 뭐"라고 엄살을 떨었지만 3시간10분 정도에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욕심을 부렸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제 능력이 뒷받쳐주질 않았습니다. 지난 6~7월 좀 더 이를 악물고 훈련하지 않은 게 왜 그리 후회스럽던지...

<20km까지는 좋았는데...>

삼악산은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았더군요. 춘천종합운동장을 출발 2.8km 지점까지 이어지는 오르막은 어렵지 않게 달렸습니다. 시속 10km의 속도로 가볍게 오른 뒤 내리막에서 속도를 내 10km 지점을 58분에 통과했습니다. 나중을 위해 힘을 아끼자는 생각에서 속도를 더 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취재하면서 차를 타고 달렸던, TV 중계로만 봤던 의암호 순환코스의 가장 아름다운 곳을 달리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5km~7.5km 구간입니다.

정면으로 삼악산과 의암호가 보이고, 시원한 그늘이 있어 달리기 좋았습니다. 의암호 건너편으로 저 멀리 앞서 달리는 분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 갔지만, 서둘러 쫓아가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200m 전방에서 3시간 페이스메이커 풍선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따라가면 되겠거니 생각했지요. 급수대가 나타날 때마다 목을 축이고 바나나로 영양 보충하고, 남춘천역 앞 매점에서 산 초코렛도 가끔 씹으면서 여유있는 레이스를 했습니다. 1시간에 10km만 달리자. 마지막 남은 몇 km에서 페이스가 떨어지더라도 3시간10분 OK!

15km 지점에서 나타나는 짧은 거리의 언덕도 걷지 않고 달려서 올랐습니다. 앞서 가던 많은 분들은 걷더군요. 그렇게 17.5km를 지나고 방향을 오른쪽으로 틀어 신매대교를 건넙니다. 춘천마라톤 코스는 서면에서 신매대교를 건너는 대신 직진해 서상대교와 춘천댐을 지나 시내로 들어갑니다. 신매대교는 중간을 질러 30km의 단축코스를 만든겁니다.

20km 지점이 나타납니다. 저 멀리 반환점을 돌아 나를 향해 오는 수많은 앞선 주자들. 저들을 추월하기는 커녕 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 건 그때였습니다.

<마의 23~30km 레이스>

역부족을 느낀 것은 21km 지점에서 초코파이와 음료수로 에너지를 충전한 뒤 다시 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였습니다. 도저히 발걸음이 안 옮겨집니다. 보폭을 줄이고 허리를 쭉 펴서 자세를 취해 보지만, 발걸음은 여전히 무겁기만 합니다. 23km 지점을 지나면서 양쪽 허벅지가 뭉치는 느낌이 왔습니다. 더 달리다간 쥐가 나 아예 멈춰야 할 지 모른다는 생각에 걷는 걸로 바꿨습니다. 속보 흉내를 내 열심히 걸어봤지만 거리가 쉬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가끔 추월하는 분들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이럴 때 골인 하는 장면, 아니면 즐거운 장면 등등을 생각하라는 말이 있지만 안 되던데요. 제 스스로를 향해 마취를 걸어보지만 여전히 달리기는 힘겹습니다.

시계를 보니 3시간10분 골인은 이미 물 건너 갔습니다.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소양대교를 넘어 오른쪽으로 턴. 춘천마라톤 참가자들에게 숱하게 들어왔던 '마의 구간'입니다. 넓은 도로가 끝없이 이어지는 데, 가도 가도 거리가 줄지 않는다는 막판 5km 구간입니다. 아득하게 느껴지더군요.

<시내에서 힘을 내다>

2.5km를 남기고 현실적인 목표로 수정했습니다. 3시간20분. 옛 시외버스 터미널 앞으로 지나면서 다시 달리기 시작합니다. 속도를 내 보지만 제자리 뛰기 하는 것 같습디다. 그래도 걷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으로 힘을 내 봅니다. 춘천경찰서까지 시내 구간이 왜 그리 멀게 느껴지는지, 춘천경찰서 앞을 지나면 곧바로 나타나는 오른쪽의 춘천종합운동장까지 갈 수나 있을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기념품 받아 돌아가는 분들이 눈에 띠었습니다. 몇분 뒤면 나도 저들처럼 메달 들고, 가방 메고 돌아갈 수 있겠다 싶어 죽을 힘을 다했지요. 아슬아슬하게 3시간20분 목표를 이뤘습니다. 3시간19분43초. 흐흐 17초 차이입니다.

<결론은 장난이 아니라는 것>

오늘 날씨가 꽤 더웠다는 걸 핑계로 댄다고 해도 실망스런 레이스입니다. 춘천마라톤 4시간30분 목표는 정말 꿈에 그칠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권은주씨와 통화를 했습니다. "오늘 날씨가 더웠어요. 수고하셨어요." 남은 4주간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봤죠. "2주전까지 30~35km 거리주를 한두번 하고, 편안히 조깅하는 거죠 뭐." 이 순간부터 4주간 아무리 해봐야 능력을 더 끌어올리는 게 한계가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현실적으로 '5시간 이내 완주'를 달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라는 거죠. 오늘 기록과 제 레이스 내용을 놓고 보면 춘천마라톤 당일 5시간 이내에 들어오는 것 자체도 쉽지 않을 지 모르겠습니다. 30km를 3시간19분47초에 달렸으니, 42.195km를 5시간에 들어오려면 12.195km를 1시간38분에 끊어야 합니다. 시속 8km의 속도입니다. 오늘처럼 걷다가 뛰다가 반복하면 이루기 쉽지 않은 페이스입니다.

<4주가 짧지는 않지요?>

그래도 4주가 짧은 기간은 아닐겁니다. 부상해서는 안되겠지만 더 강도를 높여 훈련할 작정입니다. 춘천마라톤에서는 35km 지점 이후에 뛰다가 걷다가를 반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너무 패배적인가???


* 본 기사의 내용은 헬스조선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달려라홍기자

[조선일보]
홍헌표 기자

현 조선일보 기자

인생의 중반에 접어드는 40대 초반. 키 179cm, 체중 92.9㎏의 홍기자가 10월 22일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완주에 도전합니다. 춘마도전을 위한 '홍기자의 몸만들기 10개월 작전'을 여러분께 공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