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7-17
항문에 보톡스 한 방으로 변비 치료
40세 직장인 L씨는 만성변비 환자로 아무리 힘을 주어도 변이 나오지 않았다. 동네 병원을 찾아가 봤지만 딱히 병명을 찾을 수 없었다.
신경성 변비인 것 같으니 푹 쉬라는 진단만 받았을 뿐이었다. 변비에 좋다는 식이섬유를 섭취하면서 운동도 열심히 했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다. L씨는 ‘혹시 암이 아닐까’하는 의심에 다시 한 번 검사를 받기 위해 필자를 찾았다.
우선 대장내시경 검사를 해보니 앞선 병원의 진단과 마찬가지로 별 이상이 없었다. 변을 보기 위해 힘을 많이 줘서 직장에 약간의 출혈만 보였다. 인공 변을 만들어서 배변 과정을 조사하는 배변조영술 검사를 하자 직장거근이 열리지 않는 ‘직장거근 부조화증’이 관찰됐다. 또 항문괄약근 근전도 검사를 해보니 변을 보려고 힘을 주면 오히려 항문이 닫히는 증상이 나타났다. 우선 직장거근을 이완시키기 위해 바이오 피드백 치료를 15회 진행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보톡스 주사만이 마지막 방법이었다.
“보톡스는 얼굴 주름을 없애는 주사 아닌가요? 이걸 항문에 맞으면 항문이 마비되고 뻣뻣해져서 변을 더 잘 못 보는 거 아닌가요?”
보톡스는 근육을 마비시키는 원리를 이용한다. 언뜻 느끼기에는 근육이 마비돼 딱딱해 질 것 같지만 사실은 유연하게 풀어진다. 의심스러워하는 L씨를 설득해 항문과 항문 괄약근에 보톡스 주사를 맞기로 했다. 주사를 맞고 3일이 지난 뒤 L씨가 변을 봤다며 반가운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굳게 닫혀 있던 직장거근이 드디어 열린 것이다.
직장거근 부조화증은 직장형 변비의 일종으로 직장거근이 단단하게 굳어 배변이 되지 않는 질병이다. 항문에는 배변을 조절하는 기능을 하는 괄약근이 있다. 괄약근은 다시 항문 안쪽의 내항문괄약근과 바깥쪽의 외항문괄약근으로 나눠진다. 내항문괄약근은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불수의근으로 항상 수축된 상태로 닫혀 있다. 반면에 외항문괄약근은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수의근으로 배변 시 항문의 개폐를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외항문괄약근의 상부에서 괄약근을 고정시키고 배변 조절 기능을 돕는 근육이 바로 직장거근(直腸擧筋)이다. 직장거근 부조화증은 이 직장거근이 움직이지 않아서 변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을 일컫는다.
직장거근 부조화증의 일반적인 치료법은 케겔 운동을 통한 바이오 피드백 치료와 약물 치료이다. 이 경우 보통 40~80% 정도에서 치료 효과가 나타난다. 바이오 피드백 치료도 효과가 없으면 비로소 보톡스 주사 요법이 이용된다.
국내에서는 보톡스가 미용 치료에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국외에서는 근육통, 다한증, 소아마비 등 다양한 질병의 치료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대장항문 질환 중에서는 치열과 직장거근 부조화증, 항문 부위의 다한증 치료 등에 많이 쓰이고 있다. 그 효과도 좋은 편으로 치열의 80%, 직장거근 부조화증의 60% 정도에서 증상이 호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솔병원 / 이동근 원장
부끄럽다는 이유로 쉬쉬하는 치질과 변비. 환자 사례로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