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6-12

 

대장암을 이겨낸 믿음

오래 전 재일 교포사업가인 K씨가 병원을 찾아 왔다. 이미 다른 병원에서 대장암 진단을 받은 그는 치료를 주저하고 있었다.

“2년 전 심장병으로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일본에서 수술을 받고 간신히 살았습니다. 그 악몽이 사라지기도 전에 대장암이라니요? 이제 그만 살라는 소리 같았습니다.”

K씨는 계속되는 건강 상의 악재 때문에 일본에서의 사업을 접고 잠시 국내에서 쉬던 중이었다. 주변에서는 일본으로 건너가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지만 다시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한국도 이 분야의 의술이 뛰어나다고 들었습니다. 일본 의술만 의술이 아니잖습니까?  특히 선생님께선 개복을 하지 않고도 수술해 주신다고 해서 찾아 왔습니다. 처음엔 차라리 병을 모르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심장병을 이겨냈으니 대장암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완치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K씨는 출혈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암을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정밀검사를 해보니 항문에 있는 내치핵에서 피가 나는 상태였고 항문 위쪽 결장에 3cm 크기의 초기 융모성 대장암이 자라 있었다. 암 조직은 작은 편이었고 다른 곳으로 전이된 흔적도 없었다. 즉, 치핵 덕분에 증상이 나타나기 전의 대장암을 발견한 비교적 운이 좋은 경우였다.

K씨는 두 차례에 걸친 암세포 제거 수술을 받았다. 개복 수술에 대한 환자의 거부감을 고려해 ‘항문을 통한 내시경 수술’을 시행했다. K씨는 지금까지 정기적으로 CEA 수치 검사와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으며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대장질환은 초기 자각증상이 거의 없어서 다른 질환 때문에 병원에 갔다가 발견하는 수가 많다. 반면 항문질환인 치열이나 치핵은 쉽게 알 수 있다. 화장실에서 변을 볼 때 선홍색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면 대부분 치열이거나 내치핵이다. 항문이 찢어지게 아프면 치열, 그다지 통증이 없으면 치핵일 가능성이 높다.

대변에 주기적으로 피가 묻어 나오거나 색이 부분적으로 검다면 직장암을 의심할 수 있다. 직장암은 점액이 섞인 혈변을 보거나 변을 본 뒤에도 개운치 않아 다시 화장실에 가고 싶은 느낌이 강하다.

대장암은 발생 부위에 따라 증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우측 대장암일 경우에는 빈혈과 전신 무력감이 동반되며 오른쪽 아랫배에 통증이 느껴진다. 이는 우측 대장이 소장과 가까운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출혈이 있지만 장을 통과하는 동안 희석돼 변에 섞여 나오지 않으며 빈혈 증상만 나타난다. 대변이 묽어서 장이 막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에 배변습관에 변화가 생기지도 않는다.

이에 비해 좌측 대장암일 경우에는 피가 섞인 대변을 보거나 변비, 설사 등 배변습관에 변화가 생긴다. 좌측 대장까지 이동하면서 딱딱해진 대변이 암세포를 만나 막히면 장폐색이나 변비가 되고, 며칠에 한 번씩 쌓였던 변이 한꺼번에 배출되면 설사를 하게 된다. 항문과 가깝기 때문에 출혈을 눈으로 확인할 수도 있다. 색상은 주로 검은 빛이 도는 경우가 많다.

대장암이 생겼다고 무조건 비관할 일은 아니다. 다른 암에 비해 진행 속도가 매우 느리고 K씨의 경우처럼 초기에 발견하면 개복하지 않고 수술할 수 있으며 완치률도 높기 때문이다. 평소 항문의 병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자세로 조기 진단에 힘쓰고, 병을 발견해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만 가지면 얼마든지 완치가 가능하다.

한솔병원 / 이동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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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로 본 항문이야기

[한솔병원]
이동근 원장

- 현 한솔병원 원장
- 의학박사, 대장항문외과 전문의
-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역임
-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미국 사우스베일로대학 교수

부끄럽다는 이유로 쉬쉬하는 치질과 변비. 환자 사례로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