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5-09

 

 시어머니 속옷에 오물이…혹시 치매?

“어머니 속옷에 자꾸 변이 묻는데 혹시 치매인지 변실금인지 검사를 받아 보고 싶어요.”

75세 시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찾은 며느리가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거리낌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할머니는 며느리 옆에서 얼굴이 붉어진 채 눈치만 살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과거 병력을 들어보니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자녀가 몇 명인지 묻자 “8명인데, 모두 집에서 낳았다”며 “그 중 두 번은 난산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진찰을 해보니 출산 시의 열상으로 인해 직장과 질 사이에 있는 괄약근이 끊어져 제 위치에서 이탈한 상태였다. 그야말로 근육은 거의 사라지고 피부만 남은 것.

“치매가 아니라 괄약근 근육 손상으로 인한 변실금입니다.”

진단을 내린 후 그 동안 변을 참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하자 할머니의 하소연이 쏟아져 나왔다. 젊어서는 힘을 주고 화장실로 뛰어가면 별 일이 없었는데, 나이가 드니까 몸이 느려지고 항문에 힘도 없어서 자꾸만 옷에 변을 본다는 것. “무엇보다 며느리 볼 면목이 없어서 빨리 죽어야지 하는 생각뿐”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그 동안의 마음 고생이 느껴져 측은함과 동시에 치료를 미룬 데 대한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할머니는 며칠 뒤 괄약근의 위치를 찾아주는 복원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지금 세탁기에 당당히 속옷을 넣을 수 있게 되었다.

변실금이란 배변을 조절하는 항문 괄약근의 조절기능에 문제가 생겨 힘을 쓰거나 기침을 할 때마다 대변이 조금씩 흘러 나오는 증상이다. 65세 이상 노인들의 약 5% 정도가 증상을 갖고 있으며 치매로 오인되기도 한다.

변실금의 증상은 3단계로 구분된다. 처음에는 방귀를 참기 어렵다가, 나아가 설사를 참지 못하고, 심해지면 굳은 변도 조절하기 어렵다.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대부분 3단계까지 진행된 경우로, 앉았다 일어서기만 해도 대변이 나온다고 호소하곤 한다.

주요 원인은 항문 괄약근의 손상이다. 분만 때 출산을 돕기 위해 회음부를 깊이 절개했거나 치루•치핵 수술 때 괄약근을 많이 잘라내서 제 기능을 못하게 돼 생긴다. 특히 옛날 여성들은 다산으로 인해 항문 괄약근이 약해져 변실금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괄약근은 정상이지만 괄약근을 관장하는 신경이 손상돼 변실금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신경 이상은 당뇨병과 같은 대사성 질환의 후유증으로 생길 수도 있고, 변비가 심해 배변 시 무리하게 힘을 주다가 신경이 늘어나서 나타날 수도 있다.

변실금은 검사를 통해 정확한 원인을 파악한 다음 증상에 따라 치료하게 된다. 가벼운 정도의 변실금은 약물 치료와 배변 훈련의 일종인 바이오피드백 치료를 통해 좋아질 수 있다. 증상이 심한 경우에는 수술로서 치료한다. 괄약근이 변형되거나 느슨해진 경우는 근육을 꿰매거나 느슨해진 부위를 당겨 주는 교정술을 이용한다. 이보다 정도가 심해 괄약근이 끊어진 경우에는 끊어진 근육을 다시 이어서 꿰매 주는 복원술을 시행한다. 치료효과는 매우 좋은 편으로 90% 이상에서 증상이 호전된다. 그러나 괄약근이 수술할 만큼 남아있지 않거나 신경이 손상되었다면 이런 교정술이나 복원술이 불가능하다. 주변 근육이나 인공 근육을 이용한 성형수술을 실시하는데, 치료 효과가 그리 높지 않은 편이다.

변실금이 생기면 악취와 함께 기저귀를 착용하는 불편함, 그로 인한 스트레스 등으로 일상생활조차 마음대로 하기 힘들다. 그러나 변실금 역시 다른 대장항문 질환들처럼 조기에 치료하면 불필요한 마음 고생, 몸 고생을 면할 수 있다. 증상이 나타났을 때 망설이지 말고 병원을 찾는 용기가 필요하겠다.

한솔병원 / 이동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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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로 본 항문이야기

[한솔병원]
이동근 원장

- 현 한솔병원 원장
- 의학박사, 대장항문외과 전문의
-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역임
-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미국 사우스베일로대학 교수

부끄럽다는 이유로 쉬쉬하는 치질과 변비. 환자 사례로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