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4-25

 

“이것 때문에 부부관계는 상상도 못 해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장항문병원을 찾았다는 49세 주부 H씨. 진찰실에 들어와서도 더듬더듬 말을 잇지 못하다가 간신히 말을 떼더니, “질에서 변이 나온다”며 얼굴을 붉혔다.

치질로 고생하던 H씨는 20년 전 아는 사람의 소개로 무면허 돌팔이 의사에게 부식제 주사를 맞았다. 그러나 치질이 낫기는커녕 엉뚱한 증상이 생겼다. 질에서 ‘피이피이~’하며 가스가 새기 시작한 것. 돌팔이 의사에게 치료를 받았다고 창피를 당할까 봐 주위에 말도 못하고 끙끙 참는 동안 증상은 점점 심해져 결국 변까지 새게 되었다. 질에서 변이 새다 보니 20년 동안 질염을 달고 살았고, 자연히 부부관계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이 상태로 20년을 참다니 대단한 인내심이었다.

검사를 해보니 직장과 질 사이에 무려 1cm 크기의 구멍이 나 있었다. 이른바 직장질루였다. 그녀는 2일간 장을 세척한 후 직장점막과 근육 일부를 이용해서 구멍을 막는 전진피판 이동수술을 받고 일주일 후에 퇴원했다. 수술이 잘 되어 무리 없이 완쾌되었고, 지금은 원만한 부부생활과 함께 쾌적한 삶을 되찾았다.

직장질루는 직장과 질에 구멍이 뚫리는 증상으로 여성에게만 나타나는 비교적 드문 질환이다. 배변 시 항문의 압력이 질에 비해 높아서 대변이 상대적으로 압력이 덜한 질 쪽으로 나오는 것인데, 이로 인한 불편함과 고통은 굳이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주된 발병원인은 자연분만 시의 질 내벽 손상. 자연분만 여성의 0.5% 정도, 즉 여성임산부 1,000명 가운데 5명 꼴로 직장질루에 노출될 위험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외에도 염증성 장질환으로 인한 천공, 직장암•전립선암•자궁암 등의 방사선 치료 후유증으로도 발생한다. 또 기구를 사용한 과도한 성행위로 인한 질벽 손상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직장질루의 초기 증상은 직장과 질 사이의 통증과 갑작스러운 하혈을 꼽을 수 있다. 이 시기가 지나면 질에서 가스가 새어 나오게 되고, 이를 방치하면 구멍이 점점 커져 질에서 변까지 나오게 된다.

직장질루는 생긴 위치와 괄약근의 손상 정도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진다. 괄약근의 손상 정도가 적은 초기에는 질이나 직장을 통해 구멍을 메워주는 수술을 하면 된다. 그러나 괄약근의 손상 정도가 심할 경우에는 수술이 성공해도 변실금이 생길 수 있어서 복부에 인공항문을 달아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직장질루가 의심될 때에는 부끄럽다고 병을 숨기기보다는 주저하지 말고 전문병원을 찾아야 하겠다.

한솔병원 / 이동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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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로 본 항문이야기

[한솔병원]
이동근 원장

- 현 한솔병원 원장
- 의학박사, 대장항문외과 전문의
-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역임
-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미국 사우스베일로대학 교수

부끄럽다는 이유로 쉬쉬하는 치질과 변비. 환자 사례로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