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4-04

 

“결혼도 못한 아가씨인데, 흉터는 안 돼요”

치질 검사를 받으러 오는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은 혼자 오기가 민망해서 어머니와 함께 내원하곤 한다. 빼어난 미모와 상냥한 말투가 인상적이었던 24세의 스튜어디스 K씨 역시 그런 경우였다.

“평소 아랫배가 나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이상이 없었는데, 한 달 전부터 변에 피가 보여서 치질이 아닌가 걱정스럽다”는 K씨의 설명에 우선 치질검사부터 했다. 검사 결과 치질이 약간 있긴 했지만, 출혈을 유발할 정도는 아니어서 한번 더 내원해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했다. 그러자 같이 온 어머니가 “하루 월차를 내서 겨우 왔으니 오늘 바로 검사를 해달라”고 했다. 대장내시경은 검사 전날 약물을 복용하고 장을 청소해야 하므로 당일 검사가 어렵다고 설명했지만 막무가내였다. 거기에다 승무원답게 생글생글 웃으며 부탁하는 K씨. 결국 두 모녀의 설득에 져서 장세정액을 마시게 하고 5시간 후 수면대장내시경 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 S상 결장의 꼬부라진 부위에서 3cm 크기의 선종성 용종이 발견됐다. 2cm보다 큰 선종은 암세포가 있을 확률이 10~40%에 달한다. 또 크기가 크면 클수록 천공이나 출혈 위험이 크기 때문에 내시경 용종 절제술이 시급한 상태였다. 모녀는 수술예약을 하고 돌아갔지만, 정작 수술날짜에 나타나지 않았다.

몇 달 후 어머니 혼자 병원에 찾아와 대학병원의 아는 선생님에게 수술할 것이라고 진료의뢰서를 받아갔다. 그 뒤 몇 달이 지나자 환자의 아버지가 찾아와 “제발 내시경이나 복강경으로 딸 아이 좀 수술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버지로부터 그간의 일을 들어보니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다시 했는데, 용종의 위치와 크기 때문에 개복수술이 불가피하다고 한 모양이었다. 결혼도 못한 처녀인데 배에 큰 흉터가 생기고, 심한 경우 인공항문까지 달아야 한다는 설명을 듣고는 너무 놀라 다시 필자를 찾아온 것이었다.

다시 찾은 K씨의 용종 부위를 확인해보니 병기가 점막하층까지 침범해 초기대장암으로 발전된 상태였다. 이미 내시경 용종 절제술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복강경 수술은 가능해 보여 다음날 긴급으로 대장암 복강경 수술을 시행했다. 수술은 별다른 문제 없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K씨는 현재 건강하게 통원치료를 받고 있으며, 목욕탕에 가는 것도 배꼽티를 입는 것도 문제없다며 처음에 보았던 이쁜 미소를 지어 보이곤 한다.

대장용종은 성인 10명중 1~2명에게서 발견될 정도로 흔한 질환이다. 용종은 비선종성과 선종성으로 구분되는데, 이 중 선종성 용종은 시간이 지나면 악성 종양, 즉 대장암으로 진행된다. K씨의 경우는 20대로 매우 젊은데다 암에 대한 가족력이 전혀 없는데도 3cm 크기의 선종이 발견된 보기 드문 사례였다. 또한, 일반적으로 선종이 암이 되기까지 5~10년이 걸리는 것과 달리 몇 달 만에 대장암으로 발전된 경우이기도 했다.

선종의 원인은 음주, 흡연, 비만, 운동부족 등으로 알려져 있다. 예전에는 고령에서 주로 발견되었는데 최근에는 서구화된 식생활의 영향으로 K씨처럼 음주나 흡연을 하지 않는 젊은 여성들에게도 종종 발견되고 있다. 대장용종은 자각증상이 거의 없기 때문에 정기적인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예방법이다. 50세 이후엔 5년마다, 직계가족 중 유전성 대장암 환자가 있는 사람은 20~30대부터 2~3년 주기로 검사를 받는 것이 좋다. 그러나, 가족 중 대장암 환자가 없더라도 변비와 설사의 반복, 혈변이나 점액변, 복통, 만성 소화불량, 복부팽만감, 체중과 근력의 갑작스런 감소, 빈혈, 심한 트림과 식곤증 등의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망설이지 말고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대장암의 초기 증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솔병원 / 이동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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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로 본 항문이야기

[한솔병원]
이동근 원장

- 현 한솔병원 원장
- 의학박사, 대장항문외과 전문의
- 조선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역임
- 성균관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 미국 사우스베일로대학 교수

부끄럽다는 이유로 쉬쉬하는 치질과 변비. 환자 사례로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