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3-20
지난 주, 일본 동경에서 열린 '건강박람회'에 다녀 왔습니다. 오는 7월 개최되는 '조선일보건강박람회'를 대비하고, 2003년 기준 264억 달러(한국 10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한 '건강보조식품' 시장도 둘러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짧은 일정이지만 출장 목적을 100% 달성하고 덤으로 건강 관련 출판 시장까지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우리나라 박람회장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마이크를 대고 어떤 제품이 어떤 질병에 특효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모습은 그곳에 없었습니다. 수 많은 관람객이 '질서 있게' 상품에 관해 묻거나 상담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기업 부스가 별다른 인테리어 없이 심플한 것도 의외였습니다. "며칠 쓰려고 수 천만 원씩 들여 인테리어를 할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라고 안내자가 설명했습니다.
시내로 나와 건강식품을 파는 소규모 상점·약국과 전문매장들도 모두 둘러 보았습니다. 첫째, 상품의 종류가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또 성분 별로 세분화돼 있다는 점 둘째, '건강기능식품'이 아니라 '건강보조식품'으로 분류돼 있다는 점 셋째, 효능·효과나 기능성을 제품 용기에 표기하는 것은 물론이고 말로 설명하며 구매를 권유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는 점 등이 흥미를 끌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기적적 효과'를 선전하지도 않는데 소비자들이 어떻게 그 많은 제품 중 자기에게 맞는 것을 골라 구매를 하는지, 그렇게 규제하는데도 어떻게 거대한 시장을 형성할 수 있었는지 궁금해 졌습니다.
여러 곳을 둘러 보고, 여러 사람을 만난 뒤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 사람은 건강보조식품을 건강에 도움을 주는 '식품'으로, 우리나라 사람은 병을 낫게 하는 '약'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제 궁금점을 푸는 실마리가 됐습니다. 예를 들어 건강에 좋은 현미 밥을 먹으면서 당장 고혈압이나 당뇨병이 나을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일본인은 당장의 효과가 아닌 아주 장기적인 효과를 위해 자기 몸에 필요한 '건강보조식품'들을 꾸준히 복용하고 있으며 실제로 도움도 받기 때문에, 시장 자체가 연간 26조원에 달하는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선 그러나 제조사부터 이 제품을 복용하면 얼마나 기가 막힌 효과가 나타나는지를 과대 선전하고 있으며, 그 선전을 보고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는 즉각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건강식품 자체를 불신하게 되고, 그 때문에 시장이 정체 내지 침체 상태에 접어드는 것 같습니다. '건강보조식품'을 '건강기능식품'으로 명칭 변경하고, 특정 기능성을 증명해야 허가를 내 주고 있는 정부도 책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건강보조식품' 시장은 엄청난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21세기형 산업입니다. 당연히 앞선 일본에서 '정석(定石)'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도 '만병통치' '기적적 효과'를 선전하기에 급급한 제조사 관계자들은 일본을 한번도 안 가봤는지 궁금합니다.
/ 임호준 Health 편집장 hjli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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