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화사고 이렇게 예방하라
9개월 된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하고 있는 김정희(28·가명)씨. 출산 전부터 있던 무좀이 악화돼 병원을 찾았다. 모유 수유 사실을 의사에게 밝히고 항진균제(이트라코나졸) 주사를 맞았다. 그런데 아이 예방접종을 위해 소아과에 갔다가 그 얘기를 했더니 의사가 한숨만 내쉰다. 이트라코나졸에는 감미료 사카린이 함유돼 있어 임신부와 수유 중인 여성에겐 투여하지 않는 약이라는 것. 소아과 의사는 "약의 부작용이나 금기사항을 확인하지 않고 잘못 처방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젖먹이 아이가 잘못되지 않을까 분통이 터져 약을 잘못 처방한 의사를 고발하고 싶었지만 어디에 고발해야 하는지 몰라 포기해야 했다.
■약화사고 관리 시스템
미국의 경우 약 때문에 부작용이나 사고가 생기면 의사, 약사, 제약사, 환자가 국가기관이나 지역센터에 온라인, 우편, 전화, 팩스로 우선 보고한다. 접수된 데이터는 '국가약화사고예방위원회(NCC MERP)'라는 통계시스템에서 수집·관리되는데 부작용이 미미한 '레벨(level)1'에서 환자 사망을 유발한 '레벨6'까지 등급을 나눠 관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러나 약 자체의 부작용에 대한 신고만 의무화돼 있을 뿐이다. 의사나 약사의 실수로 초래된 약화사고에 대해선 보고체계가 갖추어져 있지 않으며, 이 때문에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의약품의 잘못된 사용에 대한 연구를 거쳐 정부 차원의 약화사고 관리 시스템과 전담센터를 준비 중이다.
식약청 의약품관리팀 신준수 사무관은 "환자가 약 복용 후 부작용이나 이상반응이 생길 때는 처방한 의사, 조제한 약사, 식약청, 보건소 등에 부작용 내용을 꼭 알려달라"고 말했다.
■병원, 약국 부실관리 개선해야
병원과 약국에선 약화사고가 생기기 쉬운 환경 개선이 절실하다. 약화사고는 ▲숙련되지 않은 의사와 약사가 근무할 때 ▲업무 교대시간 때 ▲처방 약 종류가 많거나 처방전이 쌓여 약사가 바쁠 때 ▲조제실 조명이 어둡고 소음이 많을 때 잘 발생한다.
복지부는 의사의 약 처방, 약사의 조제, 환자의 약 복용 중에 일어날 수 있는 약화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각 병원과 약국에 '의약품 사용과오 예방 가이드라인'을 배포해 이런 문제점들을 개선하도록 했다. 또 색깔이나 모양이 비슷한 의약품, 발음이 유사한 약 목록 등을 주의해서 다루고, 의료용 마약류, 항암제, 헤파린(항응고제)은 별도 관리토록 했다.
■의사, 약사에게 귀찮게 물어보세요
그렇다면 환자가 약화사고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미국 CNN 방송은 작년 12월 약화사고 방지를 위해 환자와 가족들이 지켜야 할 행동요령을 소개했다.
먼저 처방전을 이해하기 전까진 진료실을 떠나지 말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의사가 짜증 내더라도 당당하게 물어봐야 한다고 권고했다. 번거롭더라도 처방전에 쓰인 약의 이름과 복용 시기를 정확히 파악하고, 처방전에 적힌 환자 이름과 주민번호도 확인해야 한다는 것.
또 약국에선 처방전만 들이밀지 말고 의사에게 처방 받은 약 이름을 약사와 함께 다시 한번 확인하면 약화사고를 1차적으로 예방할 수 있다고 CNN은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손인자 약제부장은 "병원에서 처방전을 두 장씩 발행하는 이유는 의사뿐만 아니라 환자도 자신이 복용할 약을 알고 꼭 확인하라는 것"이라며 "환자 입장에선 약효와 부작용을 꼼꼼히 확인해야 하고, 건강한 사람이 예방 차원의 약을 먹을 때도 전문가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