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관련 연구가 계속해서 진행·발표되는 가운데, 실제 의료현장에서 대상포진 백신의 활용도가 높아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미국 브라운대·델라웨어대·프로비던스재향군인메디컬센터 공동 연구팀은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전문 요양시설에 입소한 66세 이상 성인 약 50만명(평균 연령 79세)의 의료기록과 메디케어 데이터를 활용해 대상포진 백신 접종자, 비접종자 간 치매 발생 위험을 비교·분석했다. 연구 대상에 포함된 이들 중 8843명(1.73%)이 입소 후 12개월 이내에 최소 1회 이상 재조합 대상포진 백신을 맞았으며, 이 중 약 87%는 퇴원 후에도 백신을 접종했다. 연구 참가자들 모두 연구 시작 시점 이전까지 치매 진단을 받지 않았다.
연구를 진행한 브라운대 공중보건대학원 칼리 헤이즈 박사는 “이번 연구에서는 이전에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받지 않았고 요양시설 입소 등 임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시점에 있는 고령의 취약 성인들을 대상으로 최신 백신의 효과를 살펴봤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 요양 시설 입소 후 대상포진 백신을 한 번이라도 접종한 노인들은 접종하지 않은 노인들에 비해 4년 안에 치매 진단을 받을 위험이 24% 더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상포진 백신 접종자 중 치매 발병 사례는 18.8% 수준이었고, 비접종자는 24.6%였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대상포진 백신의 신경 보호 효과를 예상한 기존 연구들과 유사한 결과를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헤이즈 박사는 “인지 능력은 신체 건강 상태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며 “신체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만들어진 백신이 뇌 건강 유지에도 도움된다는 사실이 주목된다”고 말했다.
다만 연구팀은 이 같은 연구만으로 백신 접종이 치매 발병률을 낮추는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고 부연했다. 연구에 참여한 대상포진 백신 접종자들은 비접종자에 비해 평균 연령이 조금 더 낮고 건강 상태가 좋았는데, 이 같은 요인들 또한 치매 위험을 낮추는 데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이다. 헤이즈 박사는 “백신이 치매 위험을 직접적으로 감소시키는지 최종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임상 시험을 포함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연구는 내과학학술지 ‘내과학회보’에 최근 게재됐다.
한편, 대상포진은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몸 속 신경절에 잠복해 있던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재활성화되면서 발생하는 질환이다. 특히 고령층의 경우 면역력 떨어져 대상포진 발생 위험이 높고, 한 번 걸리면 신경통 등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대상포진 백신의 치매 위험 감소 효과를 확인한 연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의과대학 연구팀은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한 79세 전후 성인과 접종하지 않은 사람을 최대 9년간 추적 관찰한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연구 내용에 따르면, 대상포진 백신 접종자는 비접종자에 비해 7년 이내 치매 진단 확률이 20% 더 낮았다. 백신 접종자들은 9년 이내 치매 전 단계인 ‘경도 인지 장애’를 진단받을 위험 또한 3.1%포인트 더 낮았다. 연구진은 “이 같은 차이가 백신이 질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